국회는 10일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열었다. 염색을 하지 않은 채 다소 초췌한 얼굴로 청문회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 후보자는 청문회 내내 한껏 자세를 낮췄다. 청문회를 앞두고 불거진 ‘언론 외압’ 녹취록으로 급격히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듯 이 후보자는 청문회 내내 “통렬히 반성한다” “불찰과 부덕의 소치” “백번 사죄 말씀 올린다”는 강한 어휘를 사용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 후보자는 앞서 인사말에서 “평소 언론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언론을 선택한다면 정부 없는 언론을 선택한다는 언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다”면서 선제적으로 방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병역 의혹과 관련해선 거짓 해명 논란이 일었고, 녹취록에 담긴 내용을 부인하다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발뺌해 논란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①병역기피·위증 논란
인사청문회 초반부터 이완구 후보자의 ‘40여년 전’ 병역면제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지적이 잇따랐다. 이 후보자는 1964년 엑스레이 사진까지 공개하며 ‘부주상골 증후군(평발)’을 증명해보였지만 일부가 사실이 아니라는 추궁을 받으면서 위증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새정치연합 진선미 의원=이 후보자가 직접 전화를 걸어와 ‘1971년 홍성에서 첫 신체검사를 받았으나 시골이라 엑스레이 촬영기기가 없어 현역 판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병적기록표 확인 결과 당시 신검은 서울 둔촌동 육군수도병원에서 받았고, 정상 판정이 나왔다. 1975년 이 후보자는 행정고시를 통과해 군청 사무관으로 일할 때 다시 고향인 홍성 홍주국민학교에서 4급 판정을 받았다. 시골에선 얼마나 두려운 권력을 가졌겠나. 거짓 해명을 한 이 후보자를 위증죄로 고발해야 한다.
이 후보자는 펄쩍 뛰며 준비해 온 64년·75년·2009년 찍은 자신의 발 엑스레이 사진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진 의원 질문에 대한 해명은 내놓지 않았다.
이 후보자=50년 전 제가 다리가 불편해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그것이 빛바랜 이 엑스레이 사진이다. 신검 절차를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제 다리에 문제가 있어서 60세가 넘어서도 고생하는 입장을 이해해달라.
새정치연합 홍종학 의원=질문의 핵심은 1971년 신검 당시에 대해 거짓말을 한 것이지 않는가.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발목에 있는 뼈가 붙지 않아서 다른 뼈 하나가 더 생기는 증상으로 평발 변형을 불러올 수 있다. 이게 부주상골이라는 병이다. 후보자 병역에 대해서 떳떳하신 거 맞죠?
이 후보자=만기제대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제 몸이 좋지 않았지만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②언론관
10일 청문회장 밖에서 이완구 후보자의 ‘녹취록’이 추가로 공개되면서 이 후보자의 권위적 언론관이 핵심 쟁점이 됐다. 해당 내용을 두고 발언 사실을 부인하던 이 후보자는 위증 논란까지 더해졌다.
야당 청문위원들은 오전 청문회에서 협박과 회유로 언론사를 통제하려 한 이 후보자의 언론관 규명을 위해 새정치민주연합 김경협 의원이 입수한 이 후보자의 사석 대화 녹취록을 공개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여당은 음성파일이 취재윤리에 어긋난다며 반대했다.
야당 의원들은 녹취록 중 기자들을 교수로 만들어줬다는 부분이 있다고 물었다. 이 후보자는 “그런 얘기 했을 리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녹음파일을 재생하겠다며 추궁이 이어지자 그는 “당시 대단히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얘기했다”며 오락가락 답변을 했다.
야당 의원들은 논란 끝에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녹취록을 공개했다. 다음은 녹취록 내용이다.
“대변인하고도 지금까지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지금도 너희 선배들 나랑 형제처럼 산다. … 내 친구도 대학 만든 놈들 있으니까. 교수도 만들어주고 총장도 만들어주고….”
“김영란법 이거요. 김영란법에 기자들이 초비상이거든. 안되겠어. 통과시켜야지. 진짜로 이번에 내가 지금 막고 있잖아. 여러분들도 한번 보지도 못한 친척들 때문에 검경에 붙잡혀가서 당신 말이야 시골에 있는 친척이 밥 먹었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항변을 해봐. 당해봐. 내가 이번에 통과시켜 버려야겠어.”
야당 의원들은 이 후보자를 위증 혐의로 고발하는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③부동산 투기
이완구 후보자는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투기 의혹에 대해 “집 한 채 있는 사람이 무슨 투기를 하겠나”라고 말했다. 애초 후보자 장인의 소유였다가 차남에게 증여된 경기 성남 분당구 토지에 대해서도 ‘투기가 아니다’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은 “후보자는 경찰 출신 중 최고의 재테크 전문가인 것 같다”며 “(후보자가 매입한 아파트는) 당시 최고의 투기꾼들이 옮겨다니는 아파트, 강남에서 최고로 가격이 오른 곳”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자가 구입했던 아파트 6채는 1978년·1980년 신반포2차, 1988년 신반포3차, 1993년 압구정현대, 2003년 타워팰리스·도곡동 대림아크로빌 등이다.
이 후보자는 “40년 전 아버님이 강남에 30평 아파트를 사주셨다”면서 “40년 결혼생활 하며 6번 이사했다. 조금씩 근검절약해서 옮겼다”고 답했다.
여당 의원은 타워팰리스 매매 과정에서 제기된 투기 의혹을 해명할 수 있도록 이 후보자를 배려했다.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타워팰리스로) 1억9600여만원의 양도차익을 냈다. 그러나 가격이 더 뛸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역구에서 이미지를 위해 이사를 갔다는 건가”라고 물었다.
이 후보자는 “지역구 의원으로서 지역신문에 났을 때 지역구민들 의견이나 입장을 고려해 거기서 살 수가 없었다”고 답했다.
④다른 의혹들
이 후보자는 1990년대 초반 처남이 교학부장으로 있던 경기대에 조교수로 채용돼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해 “경기대는 당시 유일하게 교정학과가 있는 4년제 대학”이라며 “미시간주립대에서 ‘크리미널 저스티스(형사행정학)’를 전공해 교정직 공무원 3명과 함께 채용된 것”이라고 말했다.
우송대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강의 회당 1000만원에 이르는 급여를 받았다는 ‘황제 특강’ 의혹에는 “(강의 이외에도) 석좌교수를 하면서 중국·일본 지방자치단체의 학생을 유치하는 데 기여했다. 7~8명 외국인 교수를 채용하는 역할도 했다”고 했다.
‘총리 역할’을 묻는 질문에는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청문회를 통과하면 대통령께 진언을 드려 정부 내 소통은 물론, 정부와 여당, 청와대와 야당 관계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책임총리는 법률적 용어가 아니다”라면서도 “정치적 의미로 국무위원 해임·제청권을 정확히 행사하고 대통령을 보좌해 국정을 잘 수행하는 것이 바로 책임총리”라고 답했다.
이 후보자는 본인의 건강 문제에 대해 “2012년 혈액암에 걸려 유서까지 써놓으면서 병마와 싸웠다”며 “병마에 시달리며 (경청하는 쪽으로) 인생관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