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후보자 이완구(65)의 국회 인사청문회와 인준 절차로 온나라가 시끄럽다. 인사청문회 날짜를 잡아주길 기다리고 있는 대법관 후보자 박상옥(59)도 쉽게 갈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런 장면에 익숙하다. 인사청문제도가 15년가량 지나면서 시스템이 정착됐기 때문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요절복통’할 상황을 너무나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지난 2년여 동안 인사 과정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하늘의 별처럼 많다. ‘보수진영의 인재(?)를 모두 집어삼키는 블랙홀’이라고 불릴 정도로 박근혜 정부는 수많은 사람들을 역사의 뒤안길로 묻어버렸다.
>>시작은 대통령 취임도 하기 전인 2013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화여대 교수로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대북정책 골격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만든 일등공신 최대석(59)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통일·국방 분과 인수위원에 임명된다. 그러나 그는 임명 엿새 만인 1월12일 자진 사퇴했다. 사퇴 이유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뚜렷하지 않다. 이른바 ‘최대석 미스터리’다. 무단 대북접촉설, 국가정보원의 인수위 업무보고 당시 갈등설 등 숱한 추측을 낳았지만 확인된 것은 없다. 기자들은 통일부 장관 후보로까지 거론되다 돌연 사퇴한 이유라도 물어보려 서울 청담동 자택을 찾아갔지만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얼마나 다급하게 잠적했는지 청담동 빌라 현관문을 잠그지도 못하고 집을 비워둔 채 ‘행방불명’됐다. 수십차례 연락을 시도해도 연결되지 않던 그의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온 통화연결음은 가수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향긋한 5월의 꽃향기가 /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 눈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그는 과연 2015년 5월에는 돌아올 수 있을까.
▲ 김용준 총리 지명자, 아들 병역·투기 의혹 닷새 후 사퇴
‘최대석 미스터리’‘엿새 만에 사퇴’ 이유 3년 넘도록 오리무중
▲ 대통령 워싱턴 순방 중 성추행 파문 윤창중, 아직 공소시효 남아
헌재소장 낙마 이동흡, 최근 변호사 등록 재신청 다시 명예회복 노려
▲ 대통령이 발굴했다는 ‘모래밭 진주’ 윤진숙, 1년 못 버티고 해임
‘별 그대’ 김명수‘폭탄주’ 정성근, 험난했던 2기 출범
2013년 1월21~22일 열린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이동흡(64)의 인사청문회는 그 이후 벌어질 ‘인사 참사’의 ‘예고편’이었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동의를 요청한 ‘후보’로 규정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엄연히 박 대통령 당선 후 여당에서 밀었던 후보다. 이동흡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신종 의혹 보따리’를 무더기로 풀어놓았다. 헌법재판관 시절 지급받은 ‘특정업무경비’를 초단기 예치에도 이자가 붙는 MMF(머니마켓펀드) 계좌에 넣어두고 생명보험료, 경조사비, 자녀 해외송금 등 사적으로 전용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대기업 협찬 논란도 불거졌다. 해명도 ‘역대급(역대 최상급)’이었다. 헌법재판관 시절 해외출장에 부인을 동반해서 다녔는데 이동흡은 “헌재는 예산사정이 열악해 부인이 비서관 역할을 했다”고 했다. 승용차 홀짝제 시행 당시 관용차를 한 대 더 지급받아 썼다는 비판에는 “다른 재판관들은 서울에 사는데 나는 분당에 살았다”고 해명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던 새누리당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국회 인준 표결 절차는 진행되지 못했고 그는 결국 자진 사퇴했다. 판사 출신인 그는 인사청문회로 인해 변호사 개업 길도 막혔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변호사 등록 신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월 말 변호사 등록 신청을 다시 내고 명예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그해 1월에만 3번째였다.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총리 지명자가 자진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1월24일 총리 지명자를 발표하기 위해 인수위에 직접 나타났다. 폭발물 탐지견까지 동원돼 인수위 브리핑 현장을 샅샅이 훑었다. 기자들은 가방을 열어보이고 보안대를 통과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친 뒤 발표를 기다렸다. 결과는 모두의 ‘깜놀(깜짝 놀람)’이었다. 소아마비로 거동이 불편해 대통령 당선인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인수위원장 김용준(77)이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눈에 불을 켜고 ‘첫 총리’를 찾아 헤매던 기자들은 허탈했다. 언론사 모두가 대통령 당선인에게 물을 먹었다(낙종을 이르는 표현). 허탈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닷새 후인 29일 김용준은 두 아들 병역 문제와 부동산 투기 등 의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퇴했다. 이후 새 총리 지명자를 찾느라 시간은 허비됐고 연쇄적으로 조각(組閣) 일정에 차질을 빚었다. 새 정부 인사 열차는 ‘대참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2013년 2월25일 박근혜 정부의 닻이 올랐다. 하지만 3월 한 달간 인사검증 ‘링’에 올라선 후보들이 줄줄이 무대에서 내려왔다. 부동산 투기, 병역 회피, 논문 표절 등 ‘기본 3종 세트’를 넘어 무기중개 로비스트 근무, 역외 탈세, 성접대 의혹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의혹이 불거졌다. 국방장관으로 부름 받은 김병관(67)은 내정 직후 언론사 카메라에 찍힌 ‘휴대전화 고리’로 친박(親朴) 인증샷을 남길 때만 해도 호기로웠다. ‘박정희·육영수 사진’이 앞뒤로 박혀 있는 휴대전화 장식이었다. 육사 28기 졸업성적 1등인 그는 퇴역 후 2년간 무기중개업체인 유비엠텍에서 고문으로 일하며 2억원의 보수를 받은 사실, 자원개발 특혜 의혹을 받던 KMDC 주식 보유 사실 은폐, 실패한 부동산 투기 사실 등 ‘의혹 7종 세트’를 선보였다. 손자병법에 통달했다는 그의 낙마로 짐을 꾸리던 이명박 정부 국방장관 김관진은 그대로 유임됐다. 육사 동기생인 김관진은 이후 국가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겨 청와대에 짐을 풀었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 김종훈(55)은 이중국적 논란, 미국 중앙정보국(CIA) 연루 의혹, 강남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사퇴를 발표하고 이튿날 미국으로 출국했다. 중소기업청장에 내정된 황철주(66)는 ‘주식백지신탁제도’를 뒤늦게 알고 주식 매각에 부담을 느껴 자진 사퇴했다. 법무부 차관 김학의(59)는 고위층 별장 성접대 의혹에 휘말려 취임 6일 만에 사퇴했다. 이 사건은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지금까지도 송사가 진행 중이다. 공정거래위원장에 내정된 한만수(57)는 공정하지 못해 낙마했다. 지하경제 양성화 공약과 정면 배치되는 해외 비자금 계좌 운용과 세금 탈루 의혹 때문에 물러났다.
‘인사 참사’로 위태롭긴 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정부조직 개편까지 마치며 가까스로 출범했다. 박 대통령이 이후 국정지지율 하락 기미가 보일 때마다 적절하게 활용했던 ‘순방외교’와 ‘한복 패션쇼’는 첫 방문국인 미국에서부터 순조롭게 시작됐다. 2013년 5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모든 걸 한방에 날려버리는 ‘핵폭탄급’ 사건이 벌어진다.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59)이 미국에 청와대 일행을 남겨두고 혼자서 급거 귀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그는 동시에 경질됐다. 청와대 사무실에 있던 개인사물도 정리하지 못하고 쫓겨났다. 나중에 택배로 짐을 받았다. 인수위 대변인으로서 인선 발표 당시 테이프 붙인 봉투를 뜯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내가 인수위의 단독 기자”라며 기자들을 통제하던 기행(奇行)의 종착역은 초라했다.
윤창중은 주미 한국대사관이 현지에서 채용한 20대 여성 인턴의 엉덩이를 허락 없이 만진 혐의, 즉 성추행으로 워싱턴 경찰에 입건됐다. 그는 ‘grab(움켜잡다)’이라는 영단어를 중학 수준의 어휘로 일상화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청와대의 매정한 강제 출국과 경질에 열받은 그는 청와대와 가까운 장소를 빌려 단독 기자회견을 열었다. “허리를 ‘툭’ 쳤을 뿐”이라며 무고함을 역설했다. 상관이던 청와대 홍보수석 이남기를 물고 늘어지며 ‘진실게임’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이남기도 교체됐다.
그 와중에 경기 김포에 있는 윤창중의 아파트 앞을 찾지 않은 언론사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어떤 기자도 두문불출한 그를 인터뷰하지는 못했다. 커튼을 치는 모습 등 간간이 카메라에 실루엣이 담기긴 했다. 근황을 꾸준히 추적한 한 월간지는 지난해 2월 서울아산병원에서 신장암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슈의 폭발력이 얼마나 컸던지 ‘갑질 논란’으로 비난 여론이 크게 일었던 남양유업 사건도 묻혔다. 남양유업 임원진의 대국민 사과 당시 기자회견장 현수막 글귀를 “윤창중 대변인 감사합니다”로 슬쩍 바꿔치기한 패러디물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구글 검색창에 ‘윤창중’을 입력하면 ‘윤창중 근황’이 자동완성될 정도로 뉴스가치는 여전한 인물이다. 미국에서 성추행 관련 경범죄로 분류된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2016년 5월이다.
유독 웃음을 참지 못했던 해양수산부 장관 윤진숙(60)도 사라진 인물이다. 여성 대통령 시대에 2명을 넘지 않았던 여성 국무위원, 그 가운데에도 단연 눈길을 끌었던 윤진숙이었다. 그는 정·관계 주류 질서에서 완전히 이질적인 사람이었다. 해수부 산하 연구기관 연구원으로 일해온 터였다. 박 대통령이 ‘모래밭에서 발굴한 진주’라고 했다는 말도 있었지만 뚜렷한 발탁 배경은 알려지지 않았다. 더구나 새 정부에서 부활한 해수부는 장관 인사청문회 준비에 미흡했다. 청문회장에서 ‘근엄하신’ 국회의원들 질의에 ‘피식피식’ 웃기 일쑤였다. 여당 의원들도 강하게 질책했지만 그래도 ‘풋’ 하고 웃어넘길 뿐이었다. 결국 1년이 채 못돼 물러났다. 2014년 1월 여수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 현장에 나타난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본인은 “감기 때문”이라며 항변했지만 사람들은 기름 냄새 때문에 코를 막은 것으로 여겼다. “보상 문제는 원유사와 보험회사가 해야 할 일”이라는 등 주무 장관답지 못한 발언들이 결정타가 됐다. 2월 자진 사퇴도 아닌 ‘해임’을 당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장관에서 잘린 지 2개월 만에 4·16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후임 장관 이주영은 139일 동안 집에 들어가기는커녕 정부청사에도 출근하지 못하고 팽목항을 지켜야 했다.
세월호 참사는 내각에도 큰 상흔을 남겼다. 2014년 5~6월 총리에 지명된 인물들이 2연속 낙마했다. ‘국민검사’로 추앙받던 전직 대법관 안대희(60)는 변호사 시절 5개월 사이 16억원이라는 고액 수임료를 받은 것과 전관예우 논란 끝에 사회환원 약속까지 하고서도 결국 물러났다. 이어 지명된 전 중앙일보 주필 문창극(67)은 국회에 인사청문요청서를 보내지도 못했다. 교회 강연에서 “일제 식민은 하나님의 뜻”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 지는 것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등의 발언이 드러나면서 ‘역사관’이 문제가 됐다. 매일 퇴근길에 기자들을 상대로 직접 ‘스탠딩 강의’에 가까운 해명을 내놨지만 그 과정에서 총리 지명자로서의 ‘밑천’은 바닥을 드러냈다.
총리는 못 바꿨지만 최경환·황우여 ‘친박’ 투톱 부총리가 등장하면서 ‘2기 내각’이 출범했다. 하지만 이를 만드는 과정이던 2014년 7월 개각도 순탄치 않았다. 부총리 겸임이 예고된 상황에서 교육부 장관에 내정된 김명수(67)는 당시 인기리에 방영 중이던 드라마 제목을 딴 ‘별에서 온 그대’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제자 논문 가로채기 등 각종 의혹도 문제였지만 공직 자질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방어를 해주려던 여당 의원들조차 “너무 긴장해서” “30초만 숨 쉴 시간을 달라” “귀가 안 들려서” 등의 발언을 들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의혹이 문제가 아니라 태도가 문제였다. 같은 시기 낙마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정성근(60)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스타일은 정반대였다. 인사청문회를 ‘통과의례’로 쉽게 봤던 것일까, 아니면 직원들의 ‘악마의 꼬임’에 빠진 것일까. 청문회 당일 저녁 폭탄주를 들이켜다 결국 폭탄을 맞았다. 정성근은 이미 음주운전 전과가 2차례 드러났고 단속 경찰관에게 “나 기자인데”라고 하는 동영상까지 돌았었다. 술이 또 인생을 망친 것이다. 다른 흉흉한 소문도 나돌면서 결국 자진 사퇴했다. 시일이 지난 후 정성근은 “입에 담기조차 싫은 내용(의 의혹이 있다)”으로 사퇴를 종용했던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와 야당 상임위 간사 김태년 의원을 고소하는 등 ‘뒤끝’을 보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숱한 인물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보건복지부 장관 진영(65)은 엉뚱하게 ‘65세 이상 기초연금 20만원 모두 지급’이라는 대선 공약 파기 책임을 지고 국회로 돌아왔다. ‘선별 지급’으로 바꾸면서 무엇을 기준으로 할지를 두고 청와대와 의견 충돌이 있었다는 것만 알려져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진룡(59)은 해외에서 ‘면직’ 통보를 받았다. “나쁜 사람이라더라”며 실·국장 인사에까지 개입하려 한 박 대통령에게 맞섰다는 이유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임기 첫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허태열(70)은 대통령의 첫 여름휴가 기간 청와대를 지키고 있다가 “짐을 싸라”는 통보를 받았다. 검찰총장 채동욱(56)은 명목은 ‘혼외자 의혹’, 실상은 ‘성역을 건드린 죄’로 사라졌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을 철저히 수사한 게 화근이었다. 최근 나온 서울고법의 2심 판결로 ‘진가’는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그는 소재불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