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사무총장이 ‘의문사 재조사’ 지시한 다그 함마르셸드는 누구?

손봉석 기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6일(현지시간) 1961년 항공기 추락사고로 숨진 다그 함마르셸드 2대 유엔 사무총장의 의문사 사건에 대해 전면 재조사를 요청했다.

사망 당시 56세였던 스웨덴 외무장관 출신 다그 함마르셸드는 1953년에 사무총장에 취임해 국제 분쟁과 제3세계 갈등 해결에 나섰다. 초기 유엔의 지위를 격상시켜 ‘역대 8명의 유엔 사무총장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그 함마르셸드는 1905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웁살라 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1933년에는 경제학 논문 ‘The Spread of the Business Cycle’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재정부, 스웨덴국립은행 이사회 의장 등 경제 관련 요직을 거쳐 1947년부터는 외무부 업무를 다루며 외무부 차관을 역임, 본격적으로 국제관계 업무를 맡았다. 1951년 제6차 유엔총회에서 스웨덴 대표단의 부단장으로 유엔에 입성한 다그 함마르셸드는 사임한 트리그베 리에의 뒤를 이어 1953년 제2대 사무총장으로 선출됐다.

다그 함마르셸드가 사무총장에 선출된 것은 강대국들의 선호가 반영된 결과였지만 ‘조용한 행정가’일 것이라는 강대국들 예상을 깨고 유엔정신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사무총장직을 수행했다.

다그 함마르셸드는 1955년엔 비회원국이던 중국을 개인 자격으로 찾아가 그곳에 억류된 6·25전쟁 참전 미군 11명을 구해내는 성과를 거뒀다. 1956년에 발생한 수에즈운하사태와 헝가리사태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다그 함마르셸드는 국제사회 분쟁에 대해 언론들이 “다그에게 맡겨라(Let it to Dag)”라고 촉구할 정도로 신임을 얻었다. 냉전 한복판에서 사무총장직을 수행했음에도 그는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추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다그 함마르셸드는 1961년 9월 아프리카 콩고 내전 해결을 위해 무장단체 지도부와 만나기 위해 잠비아 북부 상공을 비행하다 비행기가 잠비아 느돌라 공항 인근에 추락해 사망했다. 유엔은 당시 세 차례에 걸쳐 조사를 벌였지만, 끝내 추락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

노벨위원회는 생존자에게만 시상한다는 관례를 깨고 다그 함마르셸드에게 1961년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자신의 취임식에서 헝가리사태 때 다그 함마르셸드에게 보내는 긴급 유엔지원 청원서를 초등학교 대표로 뽑혀 낭독한 적이 있다고 소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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