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0시21분 서울대병원서

김진우 기자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했다. 향년 88세.

김 전 대통령은 이날 0시21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고 이 병원 관계자가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일 몸에서 열이 나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으며, 21일 오후 상태가 악화돼 중환자실로 옮겼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국 현대정치를 이끌어왔던 김대중·김영삼의 ‘양김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의 삶은 한국 현대정치사의 영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박정희 정권 시절 민주화 투사의 길을 걸었지만, ‘3당 합당’으로 권위주의 세력과 손을 잡았고, 군정을 종식시키고 ‘문민시대’를 열었지만,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면서 쓸쓸히 퇴임해야 했다.

1927년 12월20일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에서 김홍조와 박부연의 외아들로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장목소학교, 통영중학교,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 최연소로 당선돼 제 5·6·7·8·9·10·13·14대 국회의원까지 9선 의원을 지냈다.

김 전 대통령은 야당 당수 세 차례, 야당 원내총무 다섯 차례를 역임하며 평생의 민주화 동지이자 정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군사정권에 맞섰다. 양김이 이끈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민주화 세력의 양대 산맥으로 정치사의 한 획을 그었다.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채 통일민주당 후보로 독자출마한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에게 패해 2위로 낙선했다. 하지만 민주정의당ㆍ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에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합류했다. 1992년 대선에서 필생의 라이벌 김대중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돼 ‘군정 종식’을 이뤄내며 ‘문민시대’를 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최초의 문민 대통령으로 하나회 숙청, 금융·부동산 실명제 도입, 지방자치제 도입 등 개혁작업을 주도했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임기 말기 아들인 김현철씨가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됐고, 1997년 12월 국가 부도 사태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은 라이벌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고 쓸쓸히 상도동으로 돌아갔다.

‘대도무문’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김 전 대통령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 등 무수한 말들과 에피소드를 남겼다. 평생 거르지 않다시피한 새벽 조깅과 영문이니셜 애칭 ‘YS’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손명순 여사와 아들 현철 씨가 있다.

김현철씨 페이스북 갈무리

김현철씨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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