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의원들이 ‘테러방지법’ 입법 저지를 위해 23일 저녁부터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나선 더민주 김광진 의원은 5시간이 넘게 홀로 연설을 했고, 국민의당 문병호 의원에 이어 3번째 주자로 나선 더민주 은수미 의원은 24일 새벽 2시30분부터 이날 낮 12시48분까지 연단을 지키면서 국내 최장시간 필리버스터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에 앞서 정의화 국회의장은 23일 국회법 85조2항(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때 직권상정을 할 수 있도록 함)을 근거로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이 발의한 테러방지법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했습니다. 테러방지법은 지난 15년간 국정원의 과도한 권한 행사와 인권침해 등 악용 우려 때문에 국회문턱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개성공단 폐쇄 등 한반도 위기상황을 내세운 정부·여당의 강경 드라이브로 입법화 직전입니다.
도대체 테러방지법이 뭐길래 야당은 ‘목숨을 걸고’ 막으려 하고,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전력을 다해’ 만들려 하는 것일까요. 정리해봤습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테러방지법)’ 제정안은 15년 전 최초로 법안이 제출된 국가정보원 숙원사업입니다. 대테러 활동에서 국정원의 정보수집 권한을 대폭 확대하고, 범정부 차원의 테러 대응기구를 설치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핵심 쟁점은 정보수집권을 어느 기관에 주느냐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안전처를 주장했지만, 새누리당은 국정원을 고수했습니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댓글 작성’에 더 힘을 쏟았던 바로 그 국정원 말입니다.
▶국정원에 영장 없이 계좌 등 정보수집권…‘사찰 합법화’ 우려
테러방지법 제정에 가장 힘을 쏟고 있는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가진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테러, 사이버 공격, 생물무기 같은 새로운 위협들은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발생할 수가 있고 한 번 발생하면 국가적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날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회를 찾아 테러방지법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습니다.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북한의 추가도발에 대비해 테러방지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정작 국방부는 이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은 테러방지법이 없어 북한의 도발을 막지 못했던 것일까요.
▶한민구, 북한 사태와 테러방지법 "그 법 잘 모르지만.." "직접 연관은 없지만.."
“테러방지법은 테러방지 효과는 의심되면서도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훼손할 우려가 크다. 우선 테러에 대한 개념부터 모호하고 포괄적이다. 이 법은 ‘국가의 권한 행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사람을 상해하여 생명에 대한 위험을 발생하게 하는 행위’도 테러 행위로 규정한다. 정부가 집회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점을 감안하면 정상적인 집회 과정에서 우발적 충돌로 부상당하는 일이 발생했을 때 이 법이 악용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경향신문 사설입니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어떨까요. ‘테러방지법’과 유사한 ‘대테러법’ 또는 ‘반테러법’이 있는 나라는 많습니다. 주로 주로 대형 테러를 겪은 국가나 독재지도자가 있는 국가, 권위주의가 강한 국가라고 합니다. 미국, 프랑스, 중국, 스페인, 이집트, 캐나다 등이 관련법을 제정했습니다.
한국 정부와 여당이 제정하려는 ‘테러방지법’은 외국의 ‘반테러법’과 많이 다르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고려대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여당이 통과시키려고 하는 테러방지법은 외국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우리나라 테러방지법의 문제는, 첫째 대외 정보 수사기관인 국정원에 대테러수사권한을 준다는 것이고, 둘째 대테러수사에 대한 인권보호 규제들을 위험한 수준으로 완화한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테러방지법’, 이래도 만들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