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촛불 든 이유
60대 이상 대거 동참…청소년들 “공부보다 나라가 바뀌는 게 먼저”
가족 손 잡고 나온 시민 “이런 나라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없잖아요”
지난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에서는 주최 측 추산으로 20만명 시민들이 참여했다. 경향신문은 촛불을 든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기록했다.
■“미안해서…”
김양옥씨(70) = “딸이랑 사위가 가자고 하길래 나왔어요. 이번이 처음이에요. 나와 보니까 사람도 많고 진작 나올 걸 그랬나 싶어요. 딸이 그렇게 (박근혜 대통령) 뽑지 말라고 했는데, 미안한 심정이에요, 그냥. 미안해. 그래서 이렇게 나왔으니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론 투표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선근씨(67) = “속았어요. 저도 그렇고 국민 모두가 박근혜에게 속았어요.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면 국민들이 이해하고 용서해줄 수도 있는데 계속 핑계만 대니까… 국민을 바보로 알아요. 실은 자기가 바보면서. 그러니까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하라는 대로 막 하죠.”
양문섭씨(82) = “국민한테 농단을 하고 있는 실질적인 박근혜가 몸통 아닌가요. 지금 박근혜 욕 안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박근혜 찍었다는 노인네들도 다 욕해요 지금. 대통령이 됐으면 친했어도 어지간하면 서로 발을 딱 끊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일을 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야 되는데 끊지 못하고 같이 농단을 해버렸으니 자기가 제 발등을 깨고 나라를 망친 거 아닌가요.”
■“좌절하고 분노해서”
임성주군(17·고등학생) = “공부도 중요하죠. 그런데 우리가 이 나라에서 공부해 대학을 다니고 일을 해야 하는데 애초 나라가 ‘개판’이면 공부하는 것도 소용없잖아요. 공부보다 나라가 바뀌는 게 먼저가 아닌가 생각해요.”
김현우씨(27·취업준비생) = “또 어영부영하다 아무 일 없이 끝날 거 같아서 나왔어요. 취업준비생으로서 (최순실씨의 딸인) 정유라씨를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좌절감이 들어요. 열심히 해도 그런 사람들만 좋은 직장,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제가 열심히 사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들죠.”
박준호씨(30·대학원생) = “지금까지 큰일 있을 때마다 촛불집회를 했잖아요. 그때는 제가 굳이 여기까지 나오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은 안 나오면 정말 안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처음 나왔는데 나오길 잘한 것 같아요. 진짜 상식적인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최수현씨(25·회사원) = “남자친구한테 같이 가자고 꼬셨어요. 2년 사귀면서 싸울까봐 평소에도 정치 얘기는 잘 안 했는데 이번엔 안 할 수가 없었어요. 남자친구는 좀 보수적인 편이고, 저는 진보적인 편이라 정치 얘기하면 잘 안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사태는 둘 다 답답해서 얘기가 잘됐어요. 날이 별로 안 추웠는데 더 추울 때 나와서 같이 고생해보는 것도 추억이니까 또 나올 거예요.”
김원웅씨(70·농민) = “아무리 봐도 잘못된 것 같아서 벼르고 벼르다 나왔어요. 대국민담화에서 국민이 맡겨준 책임을 다하고 국정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는데, 박근혜를 그대로 놔두고 현안이 해결되겠어요?”
■“자식과 미래를 생각해서…”
정지숙씨(37·주부) = “요즘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퇴보하고 있잖아요. 자꾸 시민들이 무관심하면 더 퇴보하겠다 싶어서 힘은 없지만 조금이라도 보태고 싶어 나왔습니다. 아이들한테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정말 좋은 나라 만드는 길이 되는 것 아닐까요.”
박영기씨(52·회사원) = “자식들에게 우리나라를 이렇게 물려줄 수 없고, 아이들도 앞으로 나와 자기 스스로 시국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에서 함께 나오게 됐습니다. 딸도 학교에서 친구들이 다 나라 걱정하고 있다고 말해요.”
제임스(22·미국인·연세대 교환학생) = “만약 제가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그냥 흥밋거리 기사로 읽고 넘겼을지 몰라요. 하지만 한국에 살면서 본 바로는 한국인들이 정치적으로 매우 심각한 위기상황을 겪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요. 대통령이 개인적 친분으로 어떤 비리에 연루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속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라 미안하지만 이런 역사적 현장에 함께할 수 있어 기뻐요. 한국 시민들 정말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