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시민항쟁

분노 녹여낸 굿판·자유발언…이념·세대 넘어 ‘퇴진’ 한목소리

김원진·노도현 기자

주말 ‘2차 범국민행동’…충돌 없이 평화적 마무리

절제된 분노, 축제 같은 분위기…집회 후 자발적 청소도

<b>남녀노소 ‘한마음’</b> 지난 5일 저녁 열린 2차 국민행동 촛불집회에는 전국에서 남녀노소가 함께했다. 울산 남구 롯데백화점 앞에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복장의 참가자가 눈길을 끌었다.

남녀노소 ‘한마음’ 지난 5일 저녁 열린 2차 국민행동 촛불집회에는 전국에서 남녀노소가 함께했다. 울산 남구 롯데백화점 앞에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복장의 참가자가 눈길을 끌었다.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러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나왔다.

이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같은 이유로 광장을 찾았다. 연인들은 주말 데이트를, 직장인들은 휴식을 반납하고 가족과 함께 광장으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지난 5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차 범국민행동’ 주말 촛불집회에는 이념·세대·지역·성별을 불문하고 주최 측 추산 20만명(경찰 추산 4만5000명)이 모였다.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대규모 집회와 행진이 이어졌지만 경찰과의 충돌은 없었다.

오히려 랩 공연과 굿판 등을 벌이며 축제 분위기 속에서 절제된 분노를 표출했다. 시민들은 집회가 끝난 뒤 쓰레기를 치우는 성숙한 시민의식도 보여줬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부모를 따라 나온 아이들이 촛불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부모를 따라 나온 아이들이 촛불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고등학생도, 할머니도, 연인도 광장으로

이날 촛불집회 사회자였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조병옥 사무총장은 “박 대통령이 유일하게 지킨 공약 한 가지는 국민대통합”이라고 말했다. 평소에는 정치적 견해가 다른 국민들이 이번만은 똑같이 분노해 손잡고 광장에 나왔다는 의미다. 그만큼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촛불을 들었다.

교복을 입은 중·고교 학생들이 어느 때보다 눈에 띄었다. 중고생연대, 전국중고등학교총학생회연합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강원 홍천에서는 고등학생 6명이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같이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인천 해송고등학교 학생들은 한복을 차려입고 나왔다. 다음주 수능시험을 앞둔 경기 부곡중앙고등학교 3학년 양명렬군(18)은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손주뻘 되는 학생들만큼이나 중·장년층의 집회 참여 열기도 뜨거웠다. 강원 인제에서 약초를 기르는 70대도, 전남 곡성에서 아들을 보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60대도 광장으로 나와 촛불을 켰다. 성치 않은 양쪽 무릎에도 양문섭씨(82)는 홀로 광화문광장을 찾아 힘을 보탰다. 70대 이상 장년층은 집회가 길어지자 광화문광장 화단에 모여앉아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가족 단위 집회 참여자도 많았다. 김양옥씨(70)는 딸·사위와 함께 거리로 나왔다. 30~40대 부부들은 두툼한 패딩·목도리로 무장한 자녀들과 함께 촛불을 들었다.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일부 시민들은 반려견의 목에 ‘하야하라’고 쓰인 종이 피켓을 걸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중·고생들이 모여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중·고생들이 모여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절제된 분노…“박근혜 퇴진” 구호 속 축제 분위기

박 대통령과 청와대를 향한 분노를 품고 20만 시민들이 광장에 모였지만 경찰과의 충돌은 없었다. 시민들은 “평화시위 합시다” “경찰에게 욕하지 맙시다”며 서로를 독려했다. 7시간 넘게 이어진 집회 분위기는 축제에 가까웠다.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촛불집회 1부에서는 래퍼들이 창작한 시국풍자 랩이 울려퍼졌다. 무대 위에 오른 래퍼 제리케이는 ‘HA-YA-HEY’(하야해)를, 래퍼 디템포는 ‘우주의 기운’을 공연했다. 행진 중에는 시민들이 1~2분씩 번갈아가며 지휘차량에 올라 “너희는 고립됐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자유롭게 외쳤다.

학원강사 손창연씨(50)는 확성기를 들고 “박근혜는 퇴진하라”고 외친 뒤 ‘훌라훌라’를 덧붙였다. 군사독재 시절에 불렸던 ‘훌라송’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훌라송을 모르는 청년들도 훌라훌라를 따라하며 웃었다.

전기초와 형형색색의 야광봉도 불티나게 팔렸다. 배터리로 촛불을 밝히는 전기초는 실제 양초 모양과 똑 닮아 눈길을 끌었다. 많은 시민들은 이를 종이컵에 끼우고 촛불행렬에 합류했다.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인근에서 집회 참여자에게 핫팩을 무료로 나눠준 시민도 있었다. 회사원 김환종씨(33)는 회사동료·지인들과 함께 핫팩 4000여개를 들고나왔다.

공식 집회가 끝난 뒤 열린 자유발언에서도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다.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시민들이 발언자로 나섰다.

공식 집회 종료 후에도 1만여명의 시민들이 남아 자유발언을 경청했다. 광장 한 귀퉁이에서는 일부 시민들이 꽹과리와 장구를 치며 즉석 굿판을 벌이기도 했다.


Today`s HOT
합동 군사 훈련 위한 대만 공군 미라지 전투기 이탈리아에서 열린 배들의 경쟁 스타십 우주선의 성공적 이륙,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다. 두르가 푸자 축제를 기념하는 방글라데시 신도들
사형 반대 캠페인 동참 촉구 시위 방글라데시 두르가 푸자 축제를 기념하는 신도들
네팔의 다샤인 축제에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낮은 주택 임대료 요구 시위를 벌이는 스페인 시민들
허리케인 밀턴, 플로리다 주를 강타하다. 2024 노벨문학상 첫 한국 작가 한강 레바논에서 대피하는 터키 국민들 반려견과 고양이에게 무료 백신을 제공하는 수의사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