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시민항쟁

“광화문 캠핑촌은 시국 토론장, 장기 입주도 환영합니다”

허진무 기자

박근혜 퇴진 시민항쟁 ‘촛불 캠프’ 1박2일 체험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현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인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설치한 텐트 옆에 ‘입주신청 받습니다’라는 팻말이 놓여 있다.<br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현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인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설치한 텐트 옆에 ‘입주신청 받습니다’라는 팻말이 놓여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지난 6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인근에서 꽹과리 소리가 울렸다. 삼삼오오 몰려든 시민들은 풍물패의 사물놀이 장단에 맞춰 박수를 치고 때로는 “잘한다”는 추임새를 넣었다. 풍물패가 몸을 흔들며 광장을 뛰어다니기 시작하자 시민 30여명도 뒤를 따랐다.

이곳은 예술인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텐트 32동을 차린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이다. 기자는 이날 캠핑촌에 ‘입주신청’을 하고 예술인들과 함께 1박2일을 지냈다. 예술인들은 ‘퇴진’ 깃발 옆에 탁자를 놓고 입주신청을 받았다. 텐트 곳곳에 “대통령의 비대통령화가 비정상이 정상화하는 지름길입니다” “이러려고 텐트 쳤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등 박 대통령의 ‘어록’을 풍자한 글들이 보였다.

청와대가 지난해 5월 진보적 문화예술인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문화체육관광부에 내려보낸 사실이 지난달 밝혀졌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인들은 지난 4일 시국선언 후 광화문광장에 텐트를 설치하려 했으나 경찰의 제지로 실패했다. 예술인들은 광장에서 밤을 새우고 이튿날인 5일 기습적으로 텐트를 설치해 ‘캠핑촌’을 만들었다.

기자가 입주한 6일은 송경동 시인(49), 노순택 사진가(45), 이윤엽 판화가(48)를 비롯한 예술가들과 해고노동자·활동가·시민 등 10명이 함께 밤을 보냈다. 캠핑촌 운영위원장을 맡은 송경동 시인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국가를 사유화하는 상황에서 집 안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며 “텐트를 친 것은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송 시인은 “하루 숙박도 가능하다. 시민들은 어서 입주신청을 해달라”고 했다.

캠핑촌에는 쌍용자동차, 기륭전자, 한남운수,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텐트도 보였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김정욱씨(55)는 “저도 오랫동안 투쟁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연대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며 “지금 시국에 함께 연대해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쌀쌀한 날씨 탓에 세종대로 한복판 캠핑은 쉽지 않았다. 광화문광장은 취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컵라면이나 즉석밥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세면과 용변도 고민거리다. 광화문역 공중화장실을 닫는 밤에는 근처 24시간 카페나 음식점의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침낭 안에 핫팩을 넣고 잠을 청하지만 새벽이 되면 온도가 10도까지 떨어진다. 무엇보다 언제 철거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잠을 설친다. 이날도 오후 10시20분쯤 텐트 2동을 더 설치하려는 것을 막는 경찰과 승강이가 벌어졌다.

고된 캠핑 생활에 힘이 되는 것은 시민의 응원이다. 캠핑촌을 지나는 시민들이 김밥, 빵, 커피, 도시락, 컵라면 등을 가져다줬다. 이날 입주자들은 점심과 저녁을 시민들이 전달한 도토리묵과 삼계탕으로 해결했다. 신유아 문화연대 활동가(46)는 “하여튼 먹거리가 떨어질 일은 없다”면서 “시민의 응원이 큰 힘이 된다”며 웃었다.

밤이 깊어지자 캠핑촌 입주자 10여명은 둥글게 모여 앉았다. 예술인들은 치킨과 빵을 나눠 먹으며 시국에 대한 토론을 했다. 노순택 사진가는 “예술은 사회가 벽에 막혀 있고 돌파구를 찾지 못할 때 균열을 내는 역할을 한다”며 “장르는 다를지라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친구들과 무언가 몸짓을 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윤엽 판화가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 내가 더 튼튼해지고 단단해진다”며 “작업실에서 기사를 읽으면 마음이 불편하지만 투쟁현장에 있으면 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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