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인의 트럼프 사용법

이대근 논설위원

※엇갈린 트럼프 사용법

■ 박 대통령의 트럼프 사용법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자 청와대는 9일 오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미국 대선 결과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향후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다음 날에는 박대통령이 트럼프와 전화통화를 하고, 트럼프의 방한을 요청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트럼프 비상체제를 가동한다고 밝혔다. 박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가 트럼프 리스크에 대처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기사회생하려는 것이다. 박대통령은 트럼프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이런 때 일수록 대통령인 내가 필요하다’ ‘나는 최순실 없이도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퇴진 여론을 잠재우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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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처지인 박대통령의 눈에는 트럼프가 구세주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를 만나려면 내년 상반기까지 기다려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지휘해야 하는데 가능할까?

■ 반대파의 트럼프 사용법

김무성 등 새누리당의 비박근혜계, 야당은 반대로 리더십과 통치의 정당성을 상실한 박대통령이 외교 안보와 같은 중요한 사안에 직접 나서면 더욱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안보 불안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상황에서 국정 장악력을 잃은 대통령이 나서면 더 위험해지기 때문에 하루빨리 물러나고 거국적 중립내각이 책임 있게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수렁에 빠진 박대통령의 손을 잡아 주는 모험을 할까? 트럼프가 언제 물러날지도 모르고, 탄핵을 당할지도 모르는 사람과 만나서 중요한 결정을 하고 싶어할까? 박대통령은 ‘적어도 그 때까지 대통령은 나’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과연 그 때까지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 ‘이대근의 단언컨대’ 팟캐스트 듣기

[이대근의 단언컨대] 한국 정치인의 트럼프 사용법

※한국 대선 주자의 트럼프 사용법 6가지

■ 아웃사이더가 되라

트럼프는 남의 당이었던 공화당에 처들어가 16명 경선 후보자들을 다 물리치고 당을 장악했다. 그리고 그 당을 통해 막강한 민주당과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무너뜨렸다. 양당과 양당의 쟁쟁한 후보자를 모두 깨뜨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아웃사이더, 비주류였기 때문이다.

돈과 인력, 미디어를 장악한 클린턴에 맞서야 했던 트럼프는 선거자금이 클린턴의 절반에 불과했으며 인력도 부족했고 미디어로부터 시종일관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 그것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히 다윗으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기득권의 성에 맞서는 외로운 투사의 이미지, 그게 바로 트럼프였다.

한국의 대선 주자들도 기성 체제와 싸우는 비주류로 나서야 한다. 박근혜 정권으로 대표되는 낡은 보수의 성채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를 시민들을 기대하고 있다. 민주당과 클린턴으로 상징되는 또 다른 기득권을 미국시민들이 외면한 것처럼 한국의 기성 야당도 또 다른 기득권으로 비춰지고 있다. 그러므로 두 개의 기득권 기둥을 무너뜨리겠다고 겁 없이 달려드는 터미네이터, 파괴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인물은 현 정국 상황을 고려하면 야당 안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시민은 야당의 껍질을 깨고 나와서 여당까지 붕괴시키는 통쾌한 장면을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당이든 야당이든 비주류, 아웃사이더를 죽이면 안 된다. 미국의 민주당이 대선에 패배한 한 가지 이유를 고르라면 버니 샌더스라는 아웃사이더를 질식사 시킨 것이다. 친 클린턴 인사들이 당지도부를 장악, 경선 룰을 클린턴에게 유리하게 만들 때 이미 민주당은 지기 시작한 것이다.

■ 일관성을 유지하라

트럼프는 선거 내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실언과 폭로로 지지율이 폭락해도 아랑곳하지 않은 그는 본래의 그 다운 태도를 한 번도 버리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는 샌더스를 닮았다. 샌더스 역시 오직 한 가지 말만 했다. 불평등 해소. 그로서는 40년 동안 반복하던 것이었으므로 선거 때라고 해서 달리 말할 것도 없었다.

[이대근의 단언컨대] 한국 정치인의 트럼프 사용법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반복했다. 미국 시민은 그 말을 듣고 싶어했고 그는 오직 그 말만했다. 그걸 어떻게 할지는 말하지 않았다. 선거 기간 그는 망나니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당내 경선에서 루비오 후보가 트럼프의 손이 작은 점을 지적하자 그는 이렇게 응대했다. “손이 작으면, 그것도 틀림없이 작을 거야라는 뜻이겠지. 내가 장담컨대, 전혀 문제 없어.” 그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나들었지만 대통령에 당선됐다.

■ 자신의 장점, 이점에 집중하라

트럼프는 인종차별, 여성혐오, 소수자 무시의 악덕을 다 드러내면서도 승리했다. 그러나 미국 시민은 오직 미국의 재건이라는 구호 하나에 집중했다. 그의 악덕은 오히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 하나 밖에 없는 그의 단순함을 부각시키는 장식 같은 기능을 했다.

사람들은 하나의 장점, 이점이 뚜렷하면 나머지 허물은 눈감아 준다. 이명박 후보는 결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BBK등 수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시민은 그에게서 ‘경제 살리기’ 하나만 보고, 그를 선택했다. 박근혜 후보 역시 자질 부족이라는 지적이 많았지만, 품위 있는 보수라는 이미지 하나로 승부했다.

이런 실험이 있다. 흰 옷과 검은 옷을 입은 두 팀이 농구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실험 대상자에게 흰 옷 입은 팀이 몇 번의 패스를 하는지 맞춰 보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경기장 한 가운데 곰의 복장을 한 사람이 춤을 추며 누비고 다녔다. 실험 대상자는 패스의 숫자를 정확히 맞췄다. 그러나 곰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아니 그런 사실이 있다고 말해줘도 믿지 않았다. 결국 녹화를 보여주자 실험 대상자는 깜짝 놀랐다.

자신의 약점을 감추는 방법은 자신의 강점, 매력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만일 지금 대선 주자가운데 약점만 보이고 강점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들의 문제는 약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세울 강점, 매력이 없다는 사실에 있다.

■ 분노와 열정을 조직하라

트럼프는 미국인의 분노를 대변했고 분노한 이들의 열정에 불을 당겼다. 미국 시민은 샌더스와 트럼프에게 열광했지만, 클린턴에게 그러지는 않았다. 한국의 대선 주자 가운데 분노를 대변하는 이는 누구이며 열정을 조직하는 뜨거움을 간직한 이는 누구인가?

■ 계급을 대변하라

트럼프 이변을 낳은 미국 대선은 어떻게 보면 전례 없는 선거가 아니라, 매우 익숙한 선거이다. 트럼프는 다수의 불안한 노동자 계급을 효과적이고 스펙터클하게 대변했고 성공했다. 어떤 측면에서 미국의 45대 대선은 계급 선거의 부활이다.

한국 대선에서는 계급이 금기어처럼 되어 있다. 그 점에서는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미국에서 가능했으면 한국에서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미국에는 있는 계급이 한국에는 왜 없겠는가? 이제 청년이 하나의 계급일수 있고, 비정규직, 저소득층도 그렇다. 분명한 표적을 갖고 있어야 한다.

■ 포퓰리스트가 되라

샌더스나 트럼프는 일종의 포퓰리스트였다. 지나친 포퓰리즘은 문제이지만, 대선은 그런 측면이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다. 무책임한 선동 정치는 피해야 하지만, 어느 정도의 포퓰리즘은 필요 악이다. 그것은 대중과 소통하는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대근의 단언컨대] 한국 정치인의 트럼프 사용법

한국의 대선 주자 가운데 대중과의 소통 능력을 보여주는 이는 누구인가? 진지함과 신중함만이 다는 아니다. 대부분 따분한 후보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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