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6 정상회담

‘냉온탕 정세’ 속 전격 남북정상회담···‘도보다리 밀담’ 이상의 대외 메시지될 듯

손제민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두번째 정상회담은 토요일인 26일 오후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전세계가 생중계 화면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진 4월27일 첫 만남 때와 달리 이번에는 철저히 비공개리에 회담이 이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면서 한반도 정세가 냉온탕을 오간 직후 이뤄진 이번 회담은 그 전격적 성사 자체가 주변국들에 보낸 메시지로 여겨진다.

두 정상의 만남은 이날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이뤄졌지만 청와대가 오후 7시50분 언론에 이 사실을 공개하기 전까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정부 내에서도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일부 인사들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 서훈 원장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만 회담에 배석해 이른바 ‘서훈-김영철 라인’이 회담 추진 과정에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회담을 몇시간 앞둔 이날 정오 쯤 대통령 경호처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주변지역 경비를 맡기 시작하며 유엔사를 관할하는 주한미군은 남북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워낙 전격적인 만남이어서 한국 정부가 미국 등 주변국과 이번 회담 추진 계획을 사전에 협의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청와대는 두 정상이 이날 회담에서 4·27 판문점 선언의 이행과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했다는 사실 외에는 회담 성사 배경과 논의 내용을 일체 밝히지 않고 있다.

한달만에 다시 이뤄진 남북 정상간 만남은 전날 문 대통령이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 소집 긴급회의에서 “지금의 소통방식으로는 민감하고 어려운 외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정상 간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힌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문 대통령의 이 말은 북·미 정상 간의 직접 소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그 이후 정작 첫 소통은 남북 정상 간의 만남이 됐다.

남북 정상의 이날 만남은 4월27일 판문점 도보다리 위에서 30분 가량 이어진, 배석자 없는 단독 회담 이상의 대외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4일 김 위원장에게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한 뒤 주도권은 미국이 가져간 듯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광폭 행보에 북한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예정대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향으로 재고려해 달라고 제안하는 등 ‘낮은 자세’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만에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예정대로 치를 수도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맥스썬더 한·미 연합군사훈련 기간동안 북한으로부터 외면 받은데 이어 한·미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에 당혹스러워 하며 중재 역할이 빛을 잃는 것 아닌가 하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전격적인 두번째 남북정상회담으로 문 대통령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다시 한번 부각됐다. 무엇보다 한국이 북한을 가장 잘 움직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에게 보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 뜻에 호락호락 끌려가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여준 셈이 됐다. 미국 정부는 남북이 사전 협의 없이 만난 것에 긴장할 수밖에 없으며, 논의 내용에 대해서도 궁금해 할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의 만남 경위와 대화 내용은 양측 합의에 따라 27일 오전 10시 발표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양측 합의 내용을 발표하기에 앞서 한·미 간의 소통을 거쳐 내용을 공유하는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논의 내용을 문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설명할 예정이라는 점을 미뤄볼 때 회담 결과가 나쁘지 않았으리라는 예상을 해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통해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예정대로 정상회담을 개최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구축 문제를 놓고 통 크게 논의할 수 있도록 하는데 주력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으로부터 북·미 정상회담 개최 의사를 재차 확인 받았다는 점을 공식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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