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게이트’ 군불 때는 보수···코로나 이후 ‘혐오 정서’에 편승

허남설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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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영이 이른바 ‘차이나 게이트’ 군불을 때고 있다. 중국인 혹은 국내 거주 중국인 유학생, 이주동포(조선족)들이 청와대 국민청원과 네이버·다음 등 포털사이트에서 게시글·댓글 작성, 공감수 조작 등을 활용해 대규모 여론 조작을 시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미래통합당 일부 의원들이 이 같은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차이나 게이트’ 의혹 제기는 지난 1일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하면서 들끓기 시작했다. 시발점은 극우성향 ‘일간베스트 저장소’ 등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지난 2월 말 게시된 ‘나는 조선족이다. 진실을 말하고 싶다.’란 글이라고 알려졌다.

이 글 작성자는 “조선족이 한국의 모든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면서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모두 우리 같은 조선족이 이 일을 담당했다. 네이버의 베스트 댓글과 여성 위주의 카페에 올라오는 댓글 모두 우리 손을 거친다”고 주장했다. 하루 뒤인 지난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중국의 조직적 여론 조작 및 국권침탈행위를 엄중하게 수사하십시오’란 청원이 게시됐다.

통합당은 몇몇 인터넷 언론에서 보도한 이 의혹을 확대재생산하는 데 나섰다. 통합당 미디어특별위원회는 4일 ‘관계당국은 신속히 차이나 게이트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디어특위는 한 인터넷 언론에서 ‘여론 공작용’ 닉네임으로 지목한 ‘nowpresent이과출신한자모름’, ‘프로수족냉증러_소땡’, ‘옥수수겨털차’ 등을 인용하며 “인터넷 진흥원과 경찰청 등 관계 기관에 조직적 여론 조작의 실체를 신속하게 밝힐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이른바 ‘차이나 게이트 방지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온라인 게시글, 댓글에 접속 장소를 기준으로 한 국가명을 표시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통합당 이언주 의원이 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사를 촉구할 예정이다.

‘차이나 게이트’ 의혹 제기는 ‘선거 개입 가능성’으로 나아간다. 통합당 미디어특위는 ‘드루킹 사건’을 들어 “만약 해외의 특정 집단이 조직적으로 한국 사회의 여론 형성을 조작하고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의 민주적 정치체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통합당 간사인 김성태 의원은 2일 성명에서 “이런 상황에서 선거를 치르게 된다면 반드시 부정 선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5일 논설위원의 칼럼에서 “대만과 캄보디아, 뉴질랜드 선거까지 손을 뻗친 중국이 턱밑의 한국에 대해선 손놓고 있다고 믿기는 참으로 어렵다”고 했다. 문화일보의 지난 4일 외부필자 칼럼도 “‘이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날 선거에서 중국인 여론조작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았고, 오는 4·15 총선에서도 중국인들을 개입시키려고 하는구나’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중국발 여론 조작 시도’ 의혹에 대해 지역별 청와대 홈페이지 방문 기록을 공개하며 반박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2일 “2월 한 달 동안 청와대 홈페이지를 방문한 기록을 보면 지역별로 분류한 결과 96.9%가 국내였고, 미국이 0.9%, 베트남이 0.6%, 일본이 0.3%였고, 중국은 0.06%”라며 “2019년 1년을 토탈(전체)로 했을 때도 중국에서의 접속 비중은 월평균 0.1%”라고 밝혔다.

네이버 데이터랩에서 제공하는 ‘뉴스댓글통계-국가별 분포’를 봐도 중국발 댓글 비율은 미미하다. 지난 2월부터 지난 4일까지 중국발 댓글 비율을 보면 0.35~0.59% 안에서 맴돈다. 중국 거주 교민들이 국내 포털사이트에 접속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중국의 ‘조직적 여론조작 공작’이라기엔 턱없이 미약한 수치다.

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대림중앙시장에서 진행된 외국인 밀집지역 내 식품판매업소 등 지도·점검 및 홍보에서 한 식료품 판매업자가 서울시 관계자가 배부한 관련 전단지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대림중앙시장에서 진행된 외국인 밀집지역 내 식품판매업소 등 지도·점검 및 홍보에서 한 식료품 판매업자가 서울시 관계자가 배부한 관련 전단지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통계상으로 중국 개입의 근거가 박약함에도 불구하고, 화살은 여전히 국내 거주 중국인 유학생, 조선족에게 향한다. 앞선 동아일보 칼럼은 “(일간베스트 저장소에 올라온) 조선족 글의 필자는 댓글부대 대다수가 한국에 유학 중인 대학생들이라고 썼다. 중국서 접속한 기록이 미미하다는 사실은 중국의 개입을 부정하는 합리적 근거가 되기 어렵다는 얘기”라며 외신을 인용해 “지구촌 곳곳의 중국 교포와 유학생들을 동원해 중국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건 기본”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내 중국인, 조선족이 조직적으로 여론 공작을 편다는 ‘차이나 게이트’ 의혹 제기를 뒷받침할만한 근거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대만 등 해외 사례와 일부 특정 온라인 사용자가 쓴 댓글 정도만 거론될 뿐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심화된 ‘반중국’, ‘반조선족’ 혐오 정서에 편승하고 정부에 덧씌운 ‘친중 프레임’을 심화하려는 의도가 짙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 외국적동포팀장을 지낸 곽재석 한국이주동포정책개발연구원 원장은 “‘차이나 게이트’ 의혹 제기는 근거가 되는 관련 데이터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허무맹랑한 생각”이라며 “중국이 국내 조선족 등에게 공공연하게 댓글 공작을 지원한다면, 사건의 실체가 쉽게 드러나고 양국 관계가 단절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갈 게 뻔하다”고 지적했다.

곽 원장은 “국내 조선족에 대한 반감이나 ‘안티차이나(반중국)’ 정서를 다룬 뉴스에 개인적으로 댓글을 쓰는 경우는 많다”며 “‘외국인 근로자에게는 최저임금을 줄 필요가 없다’는 등 주장도 나오는 정치권에 대한 국내 조선족의 일부 곱지 않은 시선은 우리가 감수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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