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그토록 보수적인 아일랜드를 바꾸고…‘기후정의’ 앞장서다

장영은

메리 로빈슨

1990년 46세 때 아일랜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된 메리 로빈슨. 임기 막바지에 93%란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연임을 마다하고 퇴임 후에도 사회정의를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1990년 46세 때 아일랜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된 메리 로빈슨. 임기 막바지에 93%란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연임을 마다하고 퇴임 후에도 사회정의를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부끄럽지만 나는 비교적 최근에야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으로 일하는 동안, 유엔이 이미 기후변화 전담 부서를 마련했다는 사실에 안도했을 뿐, 이 문제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내가 이 주제를 가지고 연설을 한 기억이 없다. 그러나 2003년 초에 ‘인권 실현: 윤리적 세계화 계획’이라는 조직을 설립하기 위해 뉴욕으로 근무지를 옮긴 후 사정이 달라졌다. (…) 나는 기후변화가 과학적 관념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 그중에서도 주로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인간이 만든 현상임을 깨달았다.”

1969년,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한 스물다섯 살의 메리 로빈슨은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의 최연소 교수가 되었다. 같은 해 실시된 총선거에서 메리 로빈슨은 아일랜드 상원 의원에 출마하기로 결심한다. “하버드에서 나는 법이 사회 변화의 도구라는 사실을 배웠다. 법은 남용될 수도, 동시에 잘 이용될 수도 있다. 법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법을 잘 이해하고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그는 나이 많은 남자 교수들이 대학을 대표하는 것으로도 부족해, 직능 대표로 상원 의원까지 되는 현실에 반기를 들었다. 의회에 들어가서 아일랜드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었다. 메리 로빈슨은 비판적이면서도 유연한 사고를 유지하며, 능력과 소신을 갖춘 정치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선거운동 기간 동안 밝혔다.

최연소 상원 의원으로 정계 입문
남녀 동등 임금·이혼 합법 등 주장
사회적 비난에도 포기 않고 강행

그는 1969년 최연소 상원 의원이 되었다. 메리 로빈슨은 의회에 들어가자마자 아일랜드 주류 사회와 가톨릭교회를 당황시킨다. 기혼 여성 공직 유지권 획득, 여성과 남성의 동등임금, 연금 제도, 여성 배심원권 획득, 이혼 합법화, 피임과 임신중단 합법화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의회에서 메리 로빈슨의 안건이 묵살되자, 그는 아일랜드 대법원과 유럽 재판소에서 소송 절차를 밟았다. 국회의장 선출이 원칙적으로는 상하 의원 투표로 진행되어야 하지만, 다수당에서 지명된 사람이 의장으로 통과되는 관례에도 메리 로빈슨은 반기를 들었다.

1970년 피임 합법화 법안을 상정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자, 메리 로빈슨에게 협박 편지가 쏟아졌다.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나를 알아보면 무슨 큰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두려웠고, 또 크게 상처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더 강인해졌습니다.” 아일랜드 사회는 완고했지만, 메리 로빈슨은 피임 합법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 여성들은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부터 해방될 권리가 있습니다.” 1985년에 의사의 처방전 없이 피임약을 살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세상은 한발 앞으로 나아갔지만, 메리 로빈슨을 견제하는 세력은 더욱 커졌다. 그는 총선거에서 두 차례 낙선한다. 선거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1987년 법학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막상 정계를 떠나자, 메리 로빈슨의 능력을 예찬하며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총선거 낙선 후 대통령으로 컴백
재임 기간 연평균 9.9% 경제성장
진정성 담은 언어로 국민 움직여
임기 7년 차에 국민 지지율 93%

3년 후인 1990년, 노동당은 메리 로빈슨에게 대통령 선거 출마를 권유한다. 그는 자신이 노동당에 합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수용한다면, 독자 후보로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답했다. 3주 남짓한 선거운동 기간 동안 메리 로빈슨은 전국을 다니며 개방적이고 포용력을 갖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한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브라이언 레니헌이었다. 메리 로빈슨은 브라이언 레니헌을 8만표 차이로 이겼다. 1990년 11월8일, 메리 로빈슨은 결선 투표에서 약 51.9%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메리 로빈슨은 가장 먼저 여성 유권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저의 대통령 당선은 여성 유권자들이 요람 대신 아일랜드 사회의 낡은 체제를 흔들어 갈아치운 결과입니다.” 그리고 아일랜드인들에게 호소했다. “우리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기로 합시다.”

1990년 12월3일 대통령에 취임한 마흔여섯 살의 메리 로빈슨은 아일랜드의 심각한 경제 상황부터 해결하고자 했다. 당시 아일랜드의 국가 부채는 국고의 약 130%, 실업률은 약 17%, 인플레이션은 약 20%에 육박했다. 그때까지 아일랜드의 국정은 내각이 책임지고 있었다. 아일랜드 대통령은 상징적인 지위를 가진 채 정치 현안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메리 로빈슨은 자리만 차지하는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우선 대통령직에 관련된 헌법 조항을 꼼꼼하게 분석했다. 대통령의 활동 제한은 잘못된 헌법 해석 및 관례에 기인한 것이었다.

메리 로빈슨은 정치적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전달했다. 취임사에서 메리 로빈슨은 예이츠의 시를 인용했다. “나는 아일랜드 사람입니다. 오세요, 나와 함께 아일랜드에서 춤을 춥시다.” 또한 그는 대통령궁에 24시간 내내 꺼지지 않는 가스등을 달고 “7000만 해외 동포”에게 “조국 아일랜드는 단 한순간도 해외 동포들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선언하며 에반 볼랜드의 시를 인용했다. “우리의 집과 우리의 마음속에 등불처럼 우리는 떠난 이들을 걸어둔다.” 메리 로빈슨이 구사하는 정치 언어에는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그의 말은 사람들을 움직였다. 메리 로빈슨은 해외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섰다. 취임 첫해에 700여차례 연설을 했다. 아일랜드 경제는 도약을 거듭했다. 메리 로빈슨의 재임 기간 동안 아일랜드는 연평균 9.9%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고, 국민소득 3만달러를 달성했다.

그는 합리적이고 냉철한 현실주의자였다. 타협의 명수였다. 메리 로빈슨은 주저하지 않고 북아일랜드를 방문했다. 아일랜드는 192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아일랜드 북쪽의 여섯 주는 영국령 북아일랜드로 남았다. “아일랜드의 통합은 대다수의 북아일랜드인들이 원할 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통합은 거래가 아닙니다.” 메리 로빈슨은 아일랜드 통합을 당위 명제로 삼아 북아일랜드를 압박할 의사가 조금도 없음을 진솔하게 밝혔다.

또한 메리 로빈슨은 의회 시절부터 매달렸던 법안에 더욱 관심을 쏟았다. 1991년, 여성과 남성의 동등임금법이 통과되었다. 1992년에는 성소수자 운동가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1995년에는 국민투표를 실시해서 이혼 합법화 안건을 공론화시켰다. 1995년, 아일랜드에서 드디어 이혼이 합법화되었다. 메리 로빈슨은 대통령의 임무는 “아일랜드 국민을 대신해서 인도주의적인 역할을” 다하는 데 있다고 믿었다. 자신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안 인간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제도들을 하나라도 더 철폐하고자 애썼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회 발전과 국민 통합을 위해서라도 다양성이 존중받을 수 있는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6년에는 아일랜드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영국을 공식 방문했다. 아일랜드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영국 왕실과 대화하는 것을 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1997년, 대통령직 퇴임을 앞둔 메리 로빈슨은 재임할 의사가 조금도 없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는 임기 7년 차에 지지율 93%를 기록했지만, 한 사람의 장기 집권은 아일랜드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훌륭한 정치인들 특히 뛰어난 여성 정치인들이 도전할 기회를 가로막고 싶지 않았다. 1997년 11월 북아일랜드 출신의 법학자 메리 매컬리스가 아일랜드의 두 번째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대통령 물러나고 유엔 인권위로
기아·난민·성차별 등 해결 노력

인권단체 세워 ‘기후정의’ 관심
“화석연료에 가난한 국가들 고통”
트럼프 기후협약 탈퇴에 맹비난

2007년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등과 함께 국제사회 원로 모임 ‘The Elders’를 발족할 당시 메리 로빈슨(왼쪽에서 두번째).

2007년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등과 함께 국제사회 원로 모임 ‘The Elders’를 발족할 당시 메리 로빈슨(왼쪽에서 두번째).

메리 로빈슨은 내전 피해가 극심했던 소말리아와 르완다 난민구호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2011년 소말리아 방문 당시 모습.

메리 로빈슨은 내전 피해가 극심했던 소말리아와 르완다 난민구호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2011년 소말리아 방문 당시 모습.

한편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메리 로빈슨에게 인권위원회 고등판무관을 맡아줄 것을 요청한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유엔 인권위원회 고등판무관의 직책을 맡게 되면, 저는 베이징 여성회의에서 확인된 바 ‘여성의 권리는 곧 인권이다’라는 입장을 반영할 것입니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유엔 인권위원회 고등판무관으로 활동하며 내란, 기아, 난민, 성차별, 국제협력 등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를 뛰어다녔다.

2003년에 메리 로빈슨은 국제인권단체인 ‘권리 실현(Realizing Rights)’을 설립했다. 그는 아프리카 및 저개발 국가의 불평등 구조를 분석하면서 ‘기후 정의’가 ‘인권’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메리 로빈슨은 “전 세계가 화석연료에 의존한 결과, 이미 고통받고 있는 이 행성에서 수십억 인구가 식량과 물과 거주지를 찾아 헤매게 되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산업 국가들이 화석연료를 이용해 계속해서 경제를 성장시키는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공동체들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크게 고통받고” 있음을 침묵할 수 없었다. 2010년 ‘메리 로빈슨 재단-기후 정의’를 설립한 메리 로빈슨은 강대국과 선진국들의 횡포를 좌시하지 않았다. 2016년 11월, 유엔 연례회의에 참석한 메리 로빈슨은 트럼프 행정부가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하자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파리협약을 이행하지 않는 일종의 불량 국가가 된다면 미국과 미국 국민들에게 비극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 피해를 입히고 있는 화석연료가 경제 전체의 기반인, 역사상 세계 최대 이산화탄소 배출국으로서 미국은 도의적 책임이 있습니다.”

메리 로빈슨은 자신의 삶과 정치적 신념을 기록하는 일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회고록 <우리는 모두 소중하다(Everybody Matters)>(2012)와 <기후 정의>(2019)를 출간했다. 1969년부터 2021년 현재까지 52년째 사회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는 메리 로빈슨의 정치철학이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역시나 그의 책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는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유엔 인권위원회 고등판무관이 되던 날 아일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시인 셰이머스 히니로부터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붙잡으세요. 적절한 때에, 과감하게.” 그의 생애를 이야기한 회고록의 제목 또한 메리 로빈슨의 정치적 신념을 대변한다. “우리는 모두 소중하다.”

2020년에 번역 출간된 메리 로빈슨·케이트리오나 팔머의 <기후 정의-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희망, 회복력 그리고 투쟁>(서민아 옮김, 필로소픽)을 읽고 메리 로빈슨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영은

[여성, 정치를 하다](25)그토록 보수적인 아일랜드를 바꾸고…‘기후정의’ 앞장서다

성균관대학교에서 논문 ‘근대 여성 지식인의 자기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비교문화연계전공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을 엮고,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를 함께 쓰고,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썼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여성들에게 관심이 많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분투해온 여성들의 생애를 복원하고, 그들의 말과 글을 차근차근 모아 널리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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