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책, 지지도와 판매량은 별개읽음

김태훈 기자

출판계선 팬덤에 좌우되는 ‘번외경기’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선거가 가까워지면 출판·서점업계도 술렁인다. 정치인들이 책을 내고, 또 그 책이 팔리는 시기가 선거철에 집중돼서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8개월가량 앞둔 시점에서 유력 대권주자들의 이름을 단 책들이 연이어 쏟아져나오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다. 하지만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출판계에서 정치인 관련 서적 출간은 ‘번외경기’에 가깝다. 일반적인 책들과 비교할 때 판매량과 수익구조 면에서 구별되는 독특한 면모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20대 대선을 향한 주자들의 경쟁이 본격화되는 현시점에서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여론조사 지지도와 책 판매량이 꼭 비례하지만은 않는다는 점이다. 차기 대권주자로 이름이 가장 많이 거론되는 후보 11명(박용진·안철수·유승민·윤석열·이낙연·이재명·정세균·추미애·최재형·홍준표·황교안)과 관련된 시판도서 판매순위를 보면 지지율에서는 상위권에 들지 못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책 <추미애의 깃발>이 1위에 올라 있다. 교보문고가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올해 상반기(2021년 1월 1일~7월 5일) 동안 판매된 이들 정치인 11명 관련 서적 판매순위를 집계한 자료를 보면 추 전 장관에 이어 이낙연 전 총리의 <이낙연의 약속>, 윤석열 전 검찰총장 관련 서적 <구수한 윤석열>이 2·3위에 올랐다.

다만 현재 가장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주자들에 관한 책들은 보다 여러권 나왔다는 점에서 여론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 전 총장 관련 책이 상위 20위 안에 6권 포함돼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이재명 경기도지사 관련 책은 4권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 두 주자에 관한 책들은 모두 본인이 쓴 책이 아니다. 정세균 전 총리, 황교안 전 총리, 박용진 의원, 홍준표 의원 관련 책은 각각 2권씩 순위에 올랐다. 추 전 장관과 이 전 총리는 본인이 쓴 책이 각각 1권씩 순위에 포함됐다.

판매량 많지 않고 순위 간 차이도 근소

교보문고는 각각의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대권주자 관련 도서는 전반적으로 판매량이 많지 않으며, 각 순위 간의 차이도 근소하다”고 밝혔다. 각 정치인이 지닌 이름값 때문에 책을 내면 주목을 받기는 하지만 주목도가 곧바로 판매량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셈이다. 대표적으로 추 전 장관의 책은 출판일이 지난 7월 1일로 최근에 발간돼 가장 판매기간이 짧았음에도 다른 주자들을 모두 제치고 상반기 전체 판매순위에서 1위에 오를 정도였다.

올 상반기 판매순위를 더 들여다보면 책을 쓴 저자가 정치인 본인일 경우 대체로 판매량도 높게 나타나는 추세를 볼 수 있었다. 1위와 2위를 차지한 추 전 장관과 이 전 총리 외에도 판매순위로 각각 6·7·10위에 오른 황 전 총리의 <초일류 정상국가>, 정 전 총리의 <수상록>, 박 의원의 <박용진의 정치혁명>이 판매순위에서는 선전했다. 대권주자가 아니라 순위 집계에서는 빠졌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쓴 <조국의 시간>이 올해 나온 정치인 관련 책 가운데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인 개인에 대한 대중적 지지도보다는 핵심 지지층이 얼마나 결집돼 있는지를 반영한다는 시각도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정치인 관련 책은 지지도가 높다고 해서 구매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며 “팬덤이 형성돼 있을 경우 이들이 출간 직후 구매에 나서 판매량이 높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지지율 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직접 자신의 정책방향과 국정운영 청사진을 제시한 책들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이들 역시 가장 파급력이 높아지는 시점에 맞춰 기획 중인 책을 낼 것이라고 보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지난 18대 대선을 앞두고 나왔던 <문재인의 운명>이나

<안철수의 생각> 등의 책이 당시 후보 개인의 삶과 지향하는 가치를 제시하며 사회적으로도 화제를 모은 바 있기 때문이다.

규모 있는 출판사는 대체로 출간 기피

최근 <조국의 시간>과 <추미애의 깃발>을 펴낸 한길사와 과거 이재명 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유승민 전 의원의 책을 낸 김영사 등 일부를 제외하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출판사에서는 정치인 관련 서적을 잘 펴내지 않는 점도 이 분야 출판시장의 특징이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가장 큰 이유를 따지자면 전반적으로 정치인이 쓴 책은 사서 보는 독자층이 한정돼 있어 판매량이 많지 않은 점을 꼽을 수 있다”며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들이 내는 책들도 대부분 크게 지명도가 높지 않은 군소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권주자와 달리 주로 현역 국회의원들이 다가오는 총선을 앞두고 경쟁적으로 펴내는 책들은 정치인 관련 서적이면서도 성격이 사뭇 다르다. 특히 총선을 앞둔 시기 의원회관 게시판은 각 의원실에서 붙인 출판기념회 포스터로 도배될 정도다. 현역 의원의 출판기념회는 합법의 테두리 안에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후원금 모금을 위한 일종의 편법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점차 높아졌다. 이에 따라 ‘북콘서트’라는 이름으로 포장을 바꿔 행사를 열지만 실상 내용물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눈도장을 찍으려는 피감기관장이나 기업 대관업무 관계자, 지방의원 등의 인사들이 줄 서서 기다려가며 책을 사가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해당 의원이 손에 쥐는 ‘판매액’은 판매량이나 인세와는 사실상 무관하다. 출판기념회에서 책을 팔고 받은 돈은 ‘후원금’이나 ‘정치자금’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책을 사지도 않으면서 두툼한 돈봉투가 오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일선 출판사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실제 책 판매량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출간 부수도 1쇄 1000~2000부 정도만 찍고, 출판사로서도 일반적으로 판매액의 일부를 인세로 지급하는 방식과 달리, 의원 측으로부터 출간에 필요한 비용과 출판사에게 돌아갈 몫을 합쳐 일정액을 받은 뒤 요구에 따라 출간을 대행하는 방식에 가깝다. 이 비용에는 집필 과정에서 대필작가에게 외주를 주는 비용도 포함된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선거일 90일 전까지만 출판기념회를 열 수 있다는 선거법 조항을 제외하면 국회의원 출판기념회에 대한 제약이 거의 없다”며 “헌법에 보장된 출판의 자유를 침해할 순 없으니 출간·판매를 금지하긴 어렵더라도 판매수익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얘기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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