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공약 언박싱, 어떤 미래를 선택하시겠습니까-민주당편(3)

현금공약, 로드맵이 필요하다

구재이 한국납세자권리연구소장·세무사
(왼쪽부터)정세균, 이낙연, 추미애, 김두관, 이재명,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8월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에서 열린 대선 후보자 토론회를 앞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왼쪽부터)정세균, 이낙연, 추미애, 김두관, 이재명,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8월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에서 열린 대선 후보자 토론회를 앞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20대 대선을 위한 여야의 경선레이스가 본격화되면서 대선후보들의 공약이 공개되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어젠다였던 적폐청산의 깃발이 내려온 대신 이번 대선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스스로 버틸 수 없게 힘겨워진 국민의 삶과 사업 현장을 국가가 어떻게 지켜줄 것인가를 묻고 있다.

‘현금공약’의 진화

전국민재난지원금과 손실보상 등 국가지원이 낯설지 않다 보니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들의 ‘현금공약’은 어느 때보다 대담해졌다. 코로나19 방역과 경제난 속에서 소득이나 재산과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매월 생계비를 준다는 ‘기본소득’ 공약은 아직 어느 나라도 실현되지 않은 ‘비현실적 정치방식’임에도 어느새 대한민국 주류정책으로 부상했다. 이를 주창한 이재명 후보는 유력한 차기 국가지도자로 성장했다.

기본소득 공약에 가려졌지만 다른 대선 경선 후보의 현금공약도 적지 않다. 이낙연 후보는 ‘아동수당’을 18세까지 확대하는 ‘신복지체제’를 도입하고 제대 청년에게 사회출발자금으로 30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세균 후보도 20년 적립형으로 1인당 1억원씩 20년 적립형 ‘미래씨앗통장’을 공약했다. 김두관 후보는 20세 청년에게 6000만원의 ‘국민기본자산제’를, 박용진 후보는 연 수익 7% 이상을 보장하는 ‘국민행복적립계좌’를 약속했다.

어떤 명목으로든 ‘현금공약’은 이번 대선의 대세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현금공약이 처음은 아니다. 소득이나 재산을 묻지 않고 주기적으로 생활비를 주겠다는 현금공약 원조는 의외로 지난 18대 대선 때 박근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후보다. 박 후보는 노인계층의 60% 수준에 10만원에도 못 미치던 기초노령연금을 강화해 모든 노인계층에게 1인당 2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놓았다. 이 현금공약은 급속한 고령화로 노인인구가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을 넘어선 상황을 고려한 선거전략이었다. 이 공약 덕분에 박근혜 후보는 자신이 의도한 대로 60세 이상 유권자의 80%에 가까운 몰표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박근혜표 기초연금 공약은 금세 ‘가짜공약’으로 드러났다. 당시 연 4조원의 예산이 소요되던 기초노령연금을 박근혜 공약에 맞춰 ‘보편적 기초연금’으로 지급하려면 추가로 연 7조원 이상 추가재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증세도 없이 국민연금에서 충당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기초연금을 모든 노인계층에 지급하는 것을 포기하고 과거처럼 70%로 회귀했다. 그마저도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국민연금수급자는 제외되다 보니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라는 불명예를 현재까지 씻어내지 못하게 된 원인을 제공했다. 박근혜 후보는 그럴듯한 현금공약으로 대통령은 됐지만, 재원 마련 방안이나 증세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실패함으로써 국민을 상대로 ‘혜택’은커녕 ‘사기’를 친 꼴이 됐다.

이재명표 기본소득 공약의 한계

지난 7월 22일 이재명 후보는 기본소득 공약을 발표했다. 당선되면 임기개시 후 다음 연도부터 전 국민 1인당 연 25만원을 지급하기 시작해 임기 내 연 100만원까지 늘려 보편적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와 별도로 19세부터 29세까지 약 700만 청년에게는 1인당 연 100만원을 추가 지급하겠다고 했다.

이번 발표는 국민 모두에게 매월 적정생계비를 기본소득으로 지급해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그간 주장에 비하면 대폭 ‘현실화’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은 ‘누구나 지급’이라는 보편성만을 충족했을 뿐 주기성이나 충분성 등 필수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한계를 가진다. 무엇보다 경제, 사회, 복지, 국토개발 등 수많은 국정과제는 따로 제쳐두고라도 ‘반쪽짜리’ 기본소득 실험에만 연 20조원에서 59조원까지 새 재정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제가 시행되면 국민의 삶이 어떻게 보호되는지, 매년 추가재정이 필요한 기초연금 등 기존 복지체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원 마련방안의 현실 가능성이다. 제시된 재원방안을 먼저 검토해보자.

기본소득 공약의 재원은 재정구조 개혁, 예산 절감, 예산 우선순위 조정, 물가상승률 이상의 자연증가분 예산, 세원관리 강화 등으로 25조원, 연간 60조원에 달하는 조세감면분 순차 축소로 25조원, 그리고 ‘기본소득 국토보유세’ 50조원과 ‘기본소득 탄소세’ 30조~64조원 등 ‘교정과세’로 충당한다고 한다.

우선 재정개혁과 비과세감면 축소방안은 이 상태로는 실현 불가능하다.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현금공약이라야 여야 다른 후보들도 다 낸 기초연금을 10만원씩 높이는 방안을 제시한 게 전부지만 문재인 정부가 공약이행을 위해 조달할 재원 규모는 178조원이나 됐고, 세출 절감으로 95조원, 세입확충으로 83조원을 조달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60조원이 넘는 세출구조조정과 11조원이 넘는 비과세감면 축소방안은 거의 손도 대지 못했다.

‘세출구조조정’이 쉽게 가능하다면 예산이 더 늘어날 이유가 없고, ‘비과세감면 축소’가 쉽게 가능했다면 일몰제와 최저한세를 시행하고 조세지출예산제까지 도입하고도 축소는커녕 매년 3조~5조원씩 더 증가할 이유가 없다. ‘증세 없는 복지’를 주창한 박근혜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재원방안으로 삼았다가 세수를 늘리지도 못하면서 세정(稅政)에서 가까운 소상공인과 서민만 잡았다.

국토보유세나 탄소세 신설해 기본소득의 주된 재원으로 삼겠다는 것도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국민 85%는 내는 세금보다 더 많은 돈을 기본소득으로 받는다’면서 세금을 신설해도 조세저항 없이 국민 대다수가 동의할 것이라는 인식은 안이하다. 근로자의 37%가 소득세를 한푼도 안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제항목 하나 줄이기 힘들고, 종합부동산세는 전체 국민의 2%만 부담하지만, 어느 세목보다 조세저항이 크다. 1인당 연 100만원 정도의 기본소득을 줄 테니 ‘소득’과 무관한 보유세나 환경세를 새로 만들어 연간 100조원 추가세금을 걷겠다면 전 국민이 동의할까? 가능하다 해도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고 탄소배출을 규제하기 위한 ‘교정과세’를 기본소득의 항구적 재원으로 삼는 건 부적절하다. 행여 이런 이유로 신세입법이라도 좌초된다면 기본소득은 물 건너갈 수 있기에 우려가 적지 않다.

보다 바람직한 재원 마련 방안은

공약이나 정책을 내놓으면서 이를 실현할 재원방안을 제시하는 일은 중요하다. 특히 기본소득이나 복지수당 확대 같은 현금공약은 더욱 그렇다. 박근혜 ‘보편적 기초연금’ 공약처럼 재원방안이 현실성이 없거나 사회적 합의에 실패하면 핵심적인 현금공약을 내놓고 집권한 정부의 실패는 불 보듯 뻔하다.

재원방안으로 제시되는 세출 구조 조정과 비과세감면 축소는 보수와 진보 공통의 방안이었다. 여기에 진보는 세율 인상이나 신세 신설까지 나아가고, 보수는 증세 없는 세정강화를 앵무새처럼 되뇌었지만, 현금공약 재원으로는 어림없었다. 현금공약은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다 한번 시행하면 예산이 없다고 정권이 바뀌었다고 중단하기도 어렵다. 그러기에 현금공약은 사전에 필요성과 효과성을 더 면밀히 따지고 현실 가능한 재원방안을 반드시 강구하고 공약해야 한다.

우선 파격적인 현금공약 재원으로 새 세금을 신설하는 것을 상수로 두는 것은 위험하다. 세금명칭에 ‘기본소득’ 명칭까지 붙여가며 대규모 신세를 창설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대신 국민에게 익숙하면서 형평성이 부족한 종합부동산세 등 기존 세제를 정상화하거나 강화하는 방안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기본소득의 성질에 맞는 목적세를 검토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주택과세에 매몰돼 있었지만, 종부세의 핵심은 토지과세인 점을 재삼 인식하고 토지에 대한 과세를 획기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주택분과 달리 토지분은 이명박 정부가 형해화시킨 이후 지금까지 과세강화는 물론 원상회복조차 시키지 않았다. 토지에 대한 종부세 면제범위와 세율을 실효성 있게 조정하고 별도합산과 분리과세 등 불합리한 과세분류를 대폭 재편해 원칙적으로 모두 과세대상으로 삼는 경우 최소 10조원 이상의 세입이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신세 신설이나 헌법을 고치지 않고도 국토보유세나 지대개혁의 목표는 물론 실질적 토지공개념 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4차 산업혁명기의 심각한 양극화를 해소하고 사회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복지체계 구축을 위해서라면 소득에 대한 부가세(surtax)로 ‘사회연대세’를 목적세로 두고 재원으로 삼는 방안이 기본소득 재원으로 적합하다. 상위 5~10%의 고소득 자산가와 초과이익이 집중되는 재벌 대기업과 플랫폼 기업의 소득과 자본이득 등에 10~20% 수준의 부가세를 더하면 연 50조원 이상의 세입도 가능하다. 이런 경우 우리나라의 소득세 부담이 OECD 평균에 비해 5% 이상 낮은 소득과세를 교정하는 효과도 볼 수 있게 된다. 고질적인 농어촌과 교육부문 환경 개선을 위해 농특세나 교육세 같은 목적세로 성공적인 재원조달을 하고 있는 것처럼 양극화 해소와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서는 사회연대세가 제격이다. 탄소세는 탄소저감과 필요한 산업재편 지원에만 허용될 미래재원이지 성질상 기본소득에 붙일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명실공히 한국을 ‘선진국’으로 진입시켰다. 다음 정부에게는 중부담 중복지를 기반으로 경제·사회 및 복지체제를 새롭게 구축하고 포스트코로나와 4차 산업혁명기 국민보호를 위한 보편적 사회보호체계를 완성할 역사적 책무가 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월 16일 서울 강남구 한 소극장에서 전국 청년 100명과 화상으로 연결해 ‘공정한 나라를 말하다’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월 16일 서울 강남구 한 소극장에서 전국 청년 100명과 화상으로 연결해 ‘공정한 나라를 말하다’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조세·재정개혁 전략로드맵

차기 정부는 우선 경제·사회 대전환기에 필요한 국가재정정책의 이념과 방향성을 새롭게 하고 당면한 ‘복지-조세부담률-국가채무’라는 재정 트릴레마(trilemma)를 돌파할 재정확충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20%로 OECD 평균에 5%포인트나 못 미치는 낮은 조세부담률을 과세형평성을 중심으로 매년 1%씩 상향하고 재정의 효율화가 달성될 수 있도록 매년 1%포인트씩 예산을 없애는 지출구조조정 로드맵을 시작하자.

다음으로 재정당국 혁신이 필요하다. 19대 대선, 문재인 후보의 공약에 독특한 것이 하나 들어 있다. 국민 의견을 토대로 조세·재정을 포괄적으로 개혁하도록 ‘조세·재정개혁 과제에 대한 특별기구’를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재정개혁의 어려움을 알기에 사회적 합의기구를 두어 돌파하고자 힘들게 재정개혁특위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기재부의 막강한 권한은 특위를 무력화시켰고, 집권 내내 예산과 재정은 물론 모든 행정부처와 정책을 좌지우지했다. 한마디로 고삐 풀린 기재부의 나라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분리돼 그나마 견제와 균형을 이뤘지만 보수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실세 기재부 장관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이 집중되다 보니 문재인 정부 내내 공약과 정책은 용두사미가 되는 일이 잦아졌다. 차기 정부에서 재정개혁을 하고자 한다면 재정당국의 조직과 기능을 일신해야 한다.

현금공약은 국가 재정에 대한 고민과 함께 기대도 안겨준다. 분명한 것은 민주당 대선후보들이 공약하는 기본소득, 아동수당, 사회출발자금 등 현금성 복지지출의 확대는 관성에 젖어 지지부진했던 재정개혁의 전환점이 될 것이란 점이다. 지난 수십 년간 재정당국은 ‘후진국형 복지지출-낮은 국가채무비율’ 위에서 ‘재정건전성’ 도그마를 주창해왔다. 그러나 선진국에 들어선 오늘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선진국형 복지지출과 적정한 국가채무비율을 유지할 수 있는 재정전략이다. 더 이상 재정당국이 재정의 역할을 회피하거나 마이너스 세법개정안을 내는 것이 용납돼서는 안 된다. 차기 정권은 선진국 복지체제 전략과 함께 조세와 재정개혁의 전략을 수립하고 리더십을 발휘해야만 한다.

기본소득 등 현금공약을 놓고 무분별한 포퓰리즘으로 매도만 할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현금 복지지출은 오랫동안 저부담·저복지 사회시스템 아래에서 소홀하게 취급됐다. 그러나 선진국 진입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그동안 억눌렸던 복지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분출시키는 계기가 됐고, 과거로 회귀할 순 없는 일이다. 국민과 함께 후진국형 조세와 재정체계를 바로세우고 국민의 요구에 필요한 재원을 과세형평성을 확보하면서 달성하는 일은 선진국이 된 후 첫 정부인 차기 정부에 맡겨진 숙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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