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영 정의당 의원 “다원화를 위한 공론장, 사실상 파산 상태”

김서영 기자
정의당 장혜영 의원 / 권호욱 선임기자

정의당 장혜영 의원 / 권호욱 선임기자

한국사회가 내부에서부터 다양해지고 있다. 이주민이 직장 동료가 되고 결혼이주여성이 부녀회장으로 선출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는 더 흔해질 일이다. 올해도 다문화 가정의 학생이 늘었다는 뉴스는 그다지 놀랍지 않다. 폐쇄적이었던 한국은 다문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정치는 이 같은 변화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다양성 존중에 기반을 둔 차별금지법을 21대 국회에서 가장 먼저 발의하고 소수자 이슈에도 목소리를 내오고 있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을 만나 다문화 사회에 관한 고민과 제안을 들었다.

장혜영 의원은 지난 8월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내 ‘다문화’가 아닌 ‘다원화’ 내지는 ‘다양성’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다문화란 용어가 이주민의 동화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우리 안의 다양성을 뭉개고 ‘다문화’와 ‘일반’이란 거친 이분법으로 나눠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장 의원은 “다양성에서 예외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지금 바로 한국사회의 다양성을 의제화할 정치적 공론장을 만들지 않으면 다음 세대가 그 빚을 물려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가 그럴듯한 명분이라면, 공동체 감각을 오랜 세월 지탱해온 단일민족과 순혈주의가 빠져나간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는 현실적인 고민이다. 장혜영 의원은 그 빈 자리에 ‘공동의 정체성 경험’을 넣자고 제안했다. 낯선 타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통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가진 존재’라는 인식, 이를 바탕으로 확립해 나가게 될 시민성이 그가 생각하는 다양성 사회의 핵심 열쇠다. 이 시민성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정치가 풀어야 할 숙제다.

-한국 정치가 마주한 과제를 무엇으로 꼽나.

“산업화, 민주화 다음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다원화라고 본다. 예전에 한국 정치의 과제를 차별, 불평등, 기후위기와의 싸움을 꼽은 적이 있는데 이 세가지를 다원화가 다 묶는다. 다문화라는 단어보다는 다양성, 다원화가 문제의식을 담을 수 있다.”

-역대 총선 공약을 살펴보면 다문화 관련 공약이 많지 않다. 정치인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굉장히 과소대표됐다. 하지만 주체가 아닌 현상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다문화 정책의 수혜자는 누구인가’라고 하면 보통 다문화가정의 당사자라고 생각한다. 반면 ‘사회 다양성 문제를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로 보면 여기서 예외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문화 인구를 조망하고 이들의 과소대표성을 지적하는 건 필요하지만 그것이 마치 특정 정체성을 가진 몇몇 이들만의 이야기가 된다면 정치적으로 힘을 얻기 어렵다.”

-다문화주의를 표방하는 정책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중요한 것은 차별이지, 다문화 소속인지 아닌지의 문제는 아니다. 다문화 정책보다는 차별금지 정책, 다양성을 권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다문화 인구를 어떻게 할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다양성이란 현실 속에 이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문제를 조명해야 한다. 한국사회는 이제 단일민족이 아닐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점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 / 권호욱 선임기자

정의당 장혜영 의원 / 권호욱 선임기자

-다문화가정이 많은 지역에선 역차별 이야기도 나온다.

“변화된 사회를 이미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점을 교육하는 것에 실패한 현상이다. 한국 특징 중 하나가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AA)에 반감이 굉장히 크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일정 집단을 우대하는 정책으로만 알지 그들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정착하면 새로운 동력이 된다는 걸 인식하지 못해 그렇다. 정치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 형성하는 관점 자체가 없다.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비전이 일관되게 실종된 상태다. 몇몇 소수자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운명에 관련된 문제라는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는 정치인이 훨씬 많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정치인이 더 많이 나오면 어떨까.

“엄청 도움이 될 것이다. 롤모델이 될 수도 있고, 인식의 차이나 차별문제에서 개선을 이룰 수도 있다. 가장 좋은 건 정치의 영역에 와서 목소리를 내고 이를 통해 실제로 뭔가가 바뀌는 걸 경험하는 선순환이다.”

-최근 아프간 난민을 수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가 많은 공격을 받기도 했다. 큰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에도 소신을 밝히는 이유는.

“공익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양당 기득권 정치의 퇴행이 다원화 문제에 있어 정치가 할 역할을 방기할 뿐만 아니라 섞여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퇴행이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치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변화한 사회에서 새롭게 마주한 도전을 의제화하고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 다양한 방법을 보여주는 것으로 정당의 특색을 나타내야 한다.

프로그램 개발에선 이를 ‘기술부채’라고 한다. 대충 구동하게만 만들어놓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나중에는 분명히 누군가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빚처럼 쌓인다는 개념이다. 공론장에도 비슷한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해놔야 하는 차별에 대한 공적 토론,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다원화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사회적 토론이 있다. 이러한 공적 논의를 미룬 부채가 쌓일 것이다. 공론장이 사실상 파산 상태다. 다음 세대의 정치가 더 큰 부담을 지게 된다. 이 부채를 탕감해줘야 한다.”

-이번 아프간 조력자 수용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굉장히 고무적이다. 딜레마는 있다. ‘보통 난민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가 특별히 수용해야 하는 사람들’이란 정체성을 부여한 점에 대해 양가적이다. (‘특별기여자’란 정부의 표현에 대해) ‘난민’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휘발성을 피해가고 싶은 정부의 고육지책이라고 평가한다. 난민문제를 에둘러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들을 환대하는 분위기가 생긴다면 그 가치는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장을 만들어놓고, 동화되는 걸 보여주면서 무지에 의한 혐오나 배척을 낮춰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기서 생기는 긍정적인 온기가 얼어붙어 있던 난민문제로 올 수 있도록 이다음 논의를 누군가는 정치에서 열어가야 한다. 공적 논의가 발화될 수 있는 공간을 더 멀리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원화를 둘러싼 반발과는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문제를 단순화할수록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오히려 문제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것이 새로운 논의로 나아가는 아주 좁은, 하지만 유일한 길이다. 예를 들어 ‘난민 수용에 찬성하냐, 반대하냐’로 접근하면 해결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20년간 아프간 문제에 개입했다. 우리 정부를 도와 일한 사람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로는 토론할 수 있다. 문제의 구체성에 천착해 공적 논의를 촉발해낸다면 조금씩 나아가게 될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다양한(다문화) 배경을 가진 유권자를 의식해본 적이 있나.

“지역구 의원이 아니긴 해도 늘 의식한다. 이 문제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미래는 정해져 있다. 이미 다원화된 시대에 살고 있고 앞으로 점점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에 고통스럽게 적응할 것인가, 그래도 살 만하게 적응할 것인가의 문제다. 변화하는 세상에 체념하고 적응하는 것과 도전하는 것 모두 두렵다면, 후자를 택하자는 것이다. 사회구성원들이 좀더 편하게 적응했으면 좋겠다.”

-한국사회에서는 차별을 차별로 인정하지 않는, 외면하는 태도가 보인다. 변화의 가능성을 믿나.

“국민은 다면적이고 입체적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두려움도 많지만 굉장히 용감한 속성도 있다. 불안감을 표시하는 국면이 있을 때 적응이 필요한 건 적응하게끔 루트를 만들어주면 흡수가 잘되기도 한다. 어떻게 지혜롭게 그 경로를 찾아낼 것인가의 문제다. 여기(정치)에 있으면 차별과 혐오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면서 아주 구체적으로 절망하게 되는데, 어쨌든 이 일은 그다음으로 나아가는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변화의 가능성은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본다.”

-다원화란 과제를 앞둔 정치의 역할과 의무는 무엇일까.

“그 어느 때보다 시민의 감각이 깨어나는 계기가 선거다. 곧 대선인 만큼 어떤 비전을 던지느냐가 중요하다. 다원화·다양성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섬세한 비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가려면 ‘공동의 정체성 경험’이 필요하다. 그게 무엇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발명’은 필요하다. 나는 그것이 ‘시민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시민성이라고 해도 좋다. 우리가 ‘공통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지고, 그런 것이 정치권을 통해 발현될 수 있어야 한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 다원화와 다양성이 숨 쉬는 사회란 자긍심을 느끼는 공통의 경험이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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