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사망

‘보통 사람의 시대’ 선언했지만···'보통사람'과 거리 먼 가족사

유정인·박순봉 기자

노태우 전 대통령은 ‘보통 사람의 시대’를 선언했지만, 자녀들의 삶은 ‘보통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들 재헌씨(56)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범죄자의 아들로 여러 번 광주를 찾아 사과했다. 대통령의 아들인 동시에 범죄자의 아들로서 살아간 셈이다. 개인사도 평범하지 않았다. 재헌씨와 딸 소영씨(60) 모두 노 전 대통령 재임기에 청와대에서 재계 자녀와 결혼식을 올렸다. 권력과 재력을 모두 손에 쥐었지만 영원하진 않았다.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아버지 인생 굴곡에 따라 자녀들의 인생그래프도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가 2019년 8월 23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윤상원 열사 묘소 앞에서 무릎 꿇고 있다.  연합뉴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가 2019년 8월 23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윤상원 열사 묘소 앞에서 무릎 꿇고 있다. 연합뉴스

■아버지를 대신한 재헌씨의 사과

재헌씨는 2019년부터 올해까지 5차례 광주를 찾아 아버지의 과오를 대신 사과했다. 2019년 8월23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고 처음 사과했다. 방명록에는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리며 광주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재헌씨는 아버지의 뜻이라고 말하며 “아버지에게 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같은 해 12월5일 다시 광주 오월어머니집을 찾아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재헌씨는 지난해 5월29일 다시 5·18민주묘지를 찾아 노 전 대통령 이름의 조화를 헌화했다. 조화에는 “13대 대통령 노태우 5·18 민주영령을 추모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리본이 달려 있었다. 지난 4월21일에도 5·18민주묘지를 찾았고, 5월25일에는 광주 동구의 한 소극장을 찾아 5·18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연극 ‘애꾸눈 광대-어느 봄날의 약속’을 관람했다.

다만 재헌씨의 사과에도 오월단체는 진정성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나타낸다. 여전히 노 전 대통령의 2011년 회고록에 ‘5·18의 진범은 유언비어’라는 문구를 수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통’일 수 없었던 자녀들의 삶

딸 소영씨는 노 전 대통령 임기 첫 해인 1988년 9월 선경그룹(현 SK그룹) 후계자인 최태원 현 SK그룹 회장과 결혼했다. 청와대에서는 당시 두 사람이 미국 시카고 대학 유학 중 만나 교제해오다 결혼했다고 설명했지만, ‘집안간의 만남’이란 평가를 받았다. 선경그룹이 대통령 사돈기업이 된 후 제2이동통신사업자에 선정돼 특혜라는 지적이 나오자, 선경은 사업권을 반납하는 방식으로 이통사업 진출을 포기했다.

소영씨 부부의 삶은 순조롭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 퇴임 직후부터 둘은 숱한 송사에 휘말렸다. 1993년에는 미국 법원에서 미화 19만달러를 1만달러 이하로 쪼개 몰래 가져 온 혐의로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돈을 몰수당했다. 1995년 비자금 사건이 터지자 이 미화가 비자금의 일부라는 의혹이 일었다. 소영씨는 검찰조사에서 “아빠가 생활비와 용돈으로 쓰라고 준 돈이었다”면서 친척들이 준 축의금이라는 앞선 증언을 번복했다. 최 회장은 SK 그룹에 대한 횡령 혐의 등으로 두 차례 수감되며 현재까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소영씨는 최 회장과 이혼 소송중이다.

소영씨와 최 회장의 딸 민정씨는 군생활을 해 주목받기도 했다. 2014년 11월 해군 소위로 인관해 군생활을 하다가 2017년 11월 중위로 전역했다. 이듬해 한 투자회사를 거쳐 2019년 SK하이닉스에 입사해 현재도 근무하고 있다.

재헌씨도 노 전 대통령 임기중이었던 1990년 동방유량(현 신동방그룹) 신명수 전 회장의 맏딸 정화씨와 결혼했다. 당시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결혼식은 강영훈 국무총리가 주례를 맡고, 박준규 국회의장과 이일규 대법원장도 참석했다. 3부 요인이 다 모인 호화 잔치였다.

동방유량은 1992년 동방페레그린증권을 설립해 숙원사업인 증권업에 진출했다. 하지만 설립 요건을 갖추지 못했었기 때문에 줄곧 특혜 시비에 시달렸다.

노 전 대통령 퇴임 후부터는 비자금 사건으로 한 데 묶여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이 사돈 기업을 통해 비자금을 은닉해 관리했단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결국 신 전 회장은 1996년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빌딩을 사고 주가를 조작해 수백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IMF 이후 자금난을 못 견딘 그룹은 워크아웃을 거쳐 2004년 CJ그룹에 매각됐다.

노 전 대통령이 비자금 사건에서 받은 추징금 2397억원을 완납하기까지 신 전 회장에 맡긴 비자금을 둘러싸고 수사와 진정, 법원 판결이 반복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아들의 결혼 전 ‘아들 부부를 위해 맡아 관리해달라’며 신 전 회장에게 654억원을 건냈다고 주장하면서 이 돈으로 남은 추징금 230억원을 내겠다고 검찰에 진정했다. 결국 신 전 회장은 2013년 9월 추징금 230억 중 80억원을 대납하며 ‘추징금 악연’을 표면적으로 털었다. 그보다 4개월 빨리 정화씨와 재헌씨 부부는 수년간의 이혼 소송끝에 23년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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