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쿠데타 주역…6·29선언으로 ‘승부수’ 직선 대통령에

박영환·유정인 기자

군인·정치인으로서 삶

<b>1990년 YS·JP와 “3당 합당” 발표</b> 노태우 전 대통령(가운데)이 1990년 1월22일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왼쪽),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청와대에서 3당 합당(민주자유당)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1990년 YS·JP와 “3당 합당” 발표 노태우 전 대통령(가운데)이 1990년 1월22일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왼쪽),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청와대에서 3당 합당(민주자유당)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두환과 ‘육사 정규 1기생’
12·12사태·언론통폐합 주도
1987년 직선제 열망 들끓자
떠밀리듯 ‘6·29선언’ 발표
‘보통사람의 시대’ 앞세워
분열된 DJ·YS 꺾고 대권

마지막 군인 대통령 노태우(盧泰愚). 그는 군사 정부에서 민간 정부로, 산업화 시대에서 민주화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 시대의 대통령이었다.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인 6·29선언, 북방외교, 남북대화는 업적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12·12쿠데타, 거액의 비자금 은닉 등 그림자가 너무 커 공은 과에 묻혀버렸다. 국민들은 그를 전두환과 함께 쿠데타의 주역으로 여긴다. 퇴임 후 이뤄진 역사적 단죄는 그의 시대적 위치와 한계를 보여준다.

노 전 대통령은 1932년 12월4일 대구 동구 신용동 596번지, 팔공산 기슭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공업학교(현 대구공고) 전기과에 입학, 경북고등학교에 편입했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는 그보다 한 살 위였지만 대구공립공업학교에는 두 학년 아래로 입학했다.

1951년 육군사관학교 정규과정 1기생으로 들어갔다. 육사에서 전두환, 김복동, 박병하 등을 만났고, ‘하나회’의 모태가 된 ‘오성(伍星) 그룹’을 결성했다. 이 시절 김복동의 여동생 김옥숙을 만나 1959년 결혼했다. 1981년 대장으로 군을 떠나기까지 30년 동안 그는 군인정치 시대의 현장에 있었다. 서울대학교 ROTC 교관으로 있던 1961년 5월16일 새벽 박정희 소장의 쿠데타 소식을 듣고 육사 졸업생들을 모아 ‘혁명’ 지지를 선언했다. 9사단장으로 있던 1979년 10월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박정희 대통령 살해 사건이 터졌다. 그는 보안사령관이자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과 함께 군대를 동원했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했다. 12·12사태였다. 1980년 8월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보안사령관을 물려받아 언론통폐합을 주도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85년 제12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 대표위원에 취임하면서 사실상 당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민정당 대통령 후보였던 1987년 6·10민주항쟁이 터지면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첫 번째 조항으로 하는 특별선언을 6월29일 발표한다. 역사적인 6·29선언이다. 직선제로 치러진 1987년 대선에서 의외의 승리를 거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계가 분열한 게 원인이었다.

1988년 4·26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지면서 초반부터 5공 청문회가 정국을 달궜다. 탈출 카드는 3당 합당이었다. 그는 1990년 2월 민주당 김영삼 총재와 공화당 김종필 총재를 규합해 216석의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을 탄생시켰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헝가리와의 수교를 시작으로 1990년 소련, 1992년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 1991년 12월13일 남북 총리가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1992년 1월20일엔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노 전 대통령은 1993년 2월25일 퇴임, 서울 연희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비자금 은닉과 12·12쿠데타에 대한 단죄가 이뤄지면서 전두환과 함께 감옥에 가는 전직 대통령이 됐다. 1995년 10월9일 당시 박계동 민주당 의원의 폭로로 거액의 비자금 은닉이 밝혀졌다. 검찰은 11월1일 4100억원의 비자금을 밝혀내고 그를 서울 구치소에 수감했다. 12·12쿠데타와 5·18민주화운동 무력 진압에 대한 진상규명 목소리도 커졌다. 그는 그해 “광주사태는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발언했다가 “발언을 용서해달라”고 사과했다. 결국 5·18특별법이 제정되고 검찰은 그해 12월3일 전두환과 노 전 대통령 등 신군부의 핵심인사 11명을 군형법상 반란수괴죄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 수사에서 비자금의 91%에 달하는 2397억원을 추징당했지만 미납이 230억원에 달했다. 동생 재우씨와 옛 사돈인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이 2013년 9월 각각 추징금 150억원과 80억원을 대납하면서 16년 만에 추징금을 완납했다.

2000년대에 들면서 소뇌 위축증을 앓으며 건강이 악화됐다. 올해 4월에도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다. 결국 그는 지병이 악화하면서 89세를 일기로 이날 숨을 거뒀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