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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안티 페미니즘’이 대선 정국을 휩쓸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성폭력 무고죄 처벌 강화를 ‘청년 공약’으로 내놓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민주당이 페미니즘과 거리를 둬야한다”는 취지의 글을 ‘경청할만한 의견’으로 소개했다. 2030 남성 표심을 잡겠다는 전략적 판단이다. 그 사이 청년 여성들의 목소리는 소외되고 있다.

2018년 8월 여성단체 ‘페미당당’ 등이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에 참가한 여성이 경구용 임신중단약인 ‘미프진’을 먹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2018년 8월 여성단체 ‘페미당당’ 등이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에 참가한 여성이 경구용 임신중단약인 ‘미프진’을 먹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구호 넘어 공약에도 반영되는 ‘반페미니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1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홍카단이 이 후보님께 드리는 편지’ 제목의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공유하며 “한 번 함께 읽어보시지요”라고 적었다. 글쓴이는 “민주당 내에서 부동산과 페미니즘 두 가지만큼은 입 밖에도 꺼내선 안 되는 볼드모트 같은 존재가 되어 아무도 비판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이틀 전인 8일에도 중앙선대위 관계자들에게 ‘2030 남자들이 펨코에 모여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을 지지한 이유’라는 글을 공유했다.

이 후보가 공유한 글들은 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노력을 ‘남성 역차별’로 규정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사회에 실존하는 성차별을 부정하고,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의 원인을 페미니즘으로 돌린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백래시’이기도 하다. 논란이 이어지자 이 후보는 “제가 동의해서는 아니고,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으니 최소한 외면은 말고 직면하자는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8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성평등 공약을 발표한 후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8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성평등 공약을 발표한 후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청년 세대는 엄혹한 경쟁 때문에 진실 여부를 떠나서 ‘성평등 정책에 의해 여성이 우대받고 우리는 홀대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겨나게 됐다. 우리가 평등을 지향해야 하지만 좀 더 섬세해져야 한다. 여성의 입장에서도 인간으로서 평등하게 대접받으면 되지 ‘여성이니까 우대’ 이걸 바라지는 않는 것 같다.” (이재명 11월10일 관훈클럽 토론회)

국민의힘은 ‘안티 페미니즘’ 공약에 더 적극적이다. 6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할당제 폐지’ 등을 내세운 이준석 대표가 당선되는 등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2030 남성 유권자를 지지 기반으로 다진 탓이다. 윤 후보는 최근 ‘청년정책’에 성폭력특별법에 ‘무고’ 조항 신설 등 여성계의 비판을 받는 공약들을 포함시켰다. 윤 후보는 “건강하지 못한 페미니즘” 발언으로도 논란을 자초했다.


“저출산 문제는 결국 이게 여러 가지 원인을, 얼마 전 무슨 글 보니까 페미니즘이라는게 너무 정치적으로 악용돼서 남녀간 건전한 교제도 막 정서적으로 막는 역할 많이 한다는 얘기도 있고….” (윤석열 8월2일 국민의힘 초선모임)


11월 9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오른쪽부터)와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제56회 전국여성대회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11월 9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오른쪽부터)와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제56회 전국여성대회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안티 페미니즘은 단순한 구호를 넘어 실제 공약으로도 반영되고 있다. 이 후보는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여가부 폐지론이 일었던 지난 7월 “폐지는 옳지 않고 확대 재편이 맞다”고 말한 것과 온도차가 느껴진다. 여가부 기능 확대 재편에서 기능 조정으로 톤이 조절된 것이다. 윤 후보는 아예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양성평등가족부를 신설하겠다고 했다. “여가부가 양성평등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홍보 등으로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 줬다”는 이유다.

여성계의 비판이 이어지자 두 후보는 앞다투어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위한 ‘실질적 양성평등’을 이룩하려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 폐지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성별 임금 격차 해소, 성폭력 피해자 지원 강화 등 여성 인권을 보장하는 정책이 ‘남성 역차별’이라며 축소를 요구하고 있다. 돌봄 공백 해소 예산, 긴급 보육 서비스 확대 등 대안으로 내놓은 ‘여성 공약’ 대부분도 여성의 역할을 출산과 육아로 한정한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다.

정치적 효능감에서도 배제되는 여성들



두 후보가 안티 페미니즘을 앞세우는 이유는 ‘청년 세대’가 내년 3월 대선의 최대 승부처로 떠오르면서다. 청년층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쏠리지 않는 세대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고)의 11월 첫째주 정당 지지도 조사를 보면 20대의 무당층(41%)는 전체 무당층(23%)보다 18%포인트 높았다.

안티페미니즘이 휩쓰는 대선, 음소거된 여성들의 목소리[플랫]

이 과정에서 젠더 이슈에 민감한 2030 남성 유권자 일부가 핵심 정치 집단으로 떠올랐다. 4·7 재보선에서 국민의힘에 힘을 몰아주며 오세훈 서울시장을 당선시키고,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에서 남녀 할당제 폐지 등을 내세운 이준석 대표를 ‘0선의 30대 대표’를 만든 것이 대표적 사례다. 홍 의원은 국민의힘 경선 도중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수사는 과도했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놨다가 남초 커뮤니티에서 비판받고 바로 입장을 바꾸었다. 이 세대 남성들은 ‘남초’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여론을 이끌면서 ‘정치적 효능감’을 맛보는 경험을 수차례 쌓아갔다.

반면 2030세대 ‘정치적 효능감’ 경험에서 여성들은 배제돼 있다. 이 세대 여성들은 2016년 서울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이후 젠더 이슈에 목소리를 응집하며 여론 주도 집단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텔레그램 ‘n번방’ 사태와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등을 거치면서 반성폭력 제도 개선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들의 응집력은 거대 양당 중 한 쪽을 뚜렷하게 지지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4·7 서울시장 보선에서도 20대(18~29세) 여성의 15.1%는 소수정당·무소속 후보를 지지하며 거대 양당을 떠난 제3의 선택을 했다.

전문가들은 거대 양당에서 여성 문제에 적극 화답하고 이들을 정치세력으로 호명하는 움직임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20대 여성들의 문제를 공감하며 이들을 정치 세력으로 불러내는 정치인이 누가 있었나”라면서 “이들이 제기한 성폭력 문제 등에 화답해 평등한 젠더 정치를 말하는 광장을 만들고, 여성을 이끌어내고, 여성과 남성이 대화하게 한 정치인이 없었다”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han.kr
유정인 기자 jeongin@khan.kr
조문희 기자 moony@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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