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은 없고 남과 여만 있다

노도현 기자
성평등은 없고 남과 여만 있다

“페미니즘을 선거와 집권 연장에 유리하게 해선 안 된다”
(윤석열, 8월2일 국민의힘 초선 의원 모임서 발언)

“민주당은 각종 페미니즘 정책으로 남자들을 역차별했다”
(이재명, 11월8일 당 중앙선거대책위 회의서 커뮤니티글 공유)

‘반페미니즘’ 부추기는 게시물 공유, 성폭력에 대한 무고죄 신설, 여성가족부 명칭 변경·기능 조정….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최근 젠더·성평등 관련 발언·행보들이다. 사회통합 비전을 제시해야 할 대선 후보들이 오히려 성별 갈라치기에 앞장서는 퇴행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30대 남성 표심 잡기에 혈안이 되면서 성평등 사회를 위한 정책들은 보여주지 못하고 노동시장 내부의 양극화, 성 불평등 등 구조적 문제에 대해선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반페미’ 부추기는 정치권

대선 후보 이재명·윤석열
반페미니즘 게시물 공유에
성폭력 무고죄 공약까지
성별 갈라치기 퇴행적 행보

이 후보는 지난 10일 ‘홍카단’(홍준표 국민의힘 의원 지지자)이라고 밝힌 작성자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쓴 ‘이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며 “한 번 함께 읽어 보시지요”라고 썼다. 지난 8일에는 딴지일보 게시판에 올라온 ‘2030 남자들이 펨코에 모여서 홍(준표 의원)을 지지한 이유’라는 글을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공유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페미니즘 정책으로 남성을 역차별했다’는 내용이었다.

윤 후보는 성폭력특별법에 무고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공약했다. 거짓으로 성폭력 피해를 주장해 ‘억울한 가해자’가 되는 이가 많다는 일부 남성 중심 커뮤니티의 인식을 수용한 것이다. 실제 성폭력 범죄에서 무고율은 미미하다. 2019년 대검찰청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연구 결과, 2017~2018년 검찰의 성폭력 사건 처리 인원수 7만1740명(중복 인원 제외) 중 무고로 기소된 비율은 0.78%, 이 중 유죄 인정 비율은 0.42%였다. 윤 후보는 지난 8월엔 “페미니즘도 건강한 페미니즘이어야지”라고 했다.

두 후보 모두 여가부 명칭을 성평등가족부 또는 양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기능을 조정하겠다고 했다. 그 이유로 이 후보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도 옳지 않다”고 했다. 윤 후보는 “여가부가 양성평등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홍보 등으로 실망감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사회학자 오찬호씨는 “이들의 메시지 자체가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역차별이 실재하는 논리인 것처럼 포장하는 신호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밀려나는 진짜 문제들

2030 남성 표심 잡기 혈안
‘젠더 갈등’ 프레임 씌우고
성평등 정책들은 뒷전으로

청년 남성들이 느끼는 박탈감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기성세대 남성들이 누린 가부장적 지위가 지금의 청년 남성들에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 오히려 제대로 된 일자리 하나 구하기 어려운 무한경쟁 속에 살고 있다는 점, 또래 여성들이 요구하는 성평등 사회로의 변화 부담이 자신에게 돌아간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여성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과 일부 언론은 ‘젠더 갈등’ 프레임을 씌워 남녀 갈등이 청년 문제의 근원인 것처럼 인식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로 인해 정작 시급히 해결해야 할 노동시장 내부의 양극화 문제와 성 불평등은 증발해버린다. 비정규직 문제, 고용시장의 성차별, 성별 임금 격차, 차별금지법 등은 논의에서 밀려난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반페미니즘 정서가 강한 커뮤니티 이야기를 2030 청년 남성 전체를 대표하는 양 인정해주는 것은 정치가 대화나 상호협상보다 갈등을 심화시킨다는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페미니즘이나 젠더정치가 구조나 권력의 문제라는 점에서, 이대남을 바라보지 말고 구조와 권력을 봐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고위 인사들의 성범죄, 여성혐오 범죄가 끊이지 않았고 고용시장에서의 격차도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권명아 교수는 “정부와 정치권이 주요 정책기조나 선거전략을 실시간 데이터에 의존해 결정하면서 타깃이 20대이면 20대를, 40대이면 40대를 좇는다”며 “그 사람들의 욕망이 우리 사회와 어떻게 관련돼 있는가, 어떤 가치를 표방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권수현 대표는 “결국 노동 안에서의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고 더 나은 일자리를 만들고, 체제전환까지 가능한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며 “청년들이 직접 의사결정이나 정치경제적 주체가 되도록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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