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운동단체 윤석열 지지, 어떻게 봐야 할까

정용인 기자

행진·사회진보연대 입장에 비판, 재반론 논란 가열

국민의힘 경선 직후 학생운동 단체 ‘행진’이 낸 민주당 심판을 위해서라면 윤석열 지지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입장문 / ‘행진’ 홈페이지 캡처

국민의힘 경선 직후 학생운동 단체 ‘행진’이 낸 민주당 심판을 위해서라면 윤석열 지지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입장문 / ‘행진’ 홈페이지 캡처

“20대 대선에서 좌파의 선택은 정권교체여야 한다.” 국민의힘 경선 직후 한 학생운동단체가 내놓은 ‘입장문’이 논란을 낳고 있다. 조선일보가 낸 “학생운동권 ‘윤석열 지지…진정한 좌파라면 이재명 못 찍어’”라는 제목의 기사는 그 주 주말 내내 포털의 많이 본 뉴스 1위를 기록했다.

주목되는 것은 ‘입장문’을 낸 단체다. 전국학생행진(이하 ‘행진’)이다. 한국 학생운동의 역사에 일면식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행진’이 고만고만한 단체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소위 NL·PD의 양대 축에서 PD계를 계승하는 단체다. 1980년대 후반 이른바 ‘PD파’가 태동한 후 1990년대 흐름은 다시 둘로 나뉘는데, 주류는 대장정-연대회의 노선으로 이어진다. 대장정, 젊은벗, 21세기 등의 단체가 함께 만든 것이 연대회의이고, 그 후신이 전국학생행진이다. 또 다른 흐름은 전학협-청년좌파-사회당을 거쳐 현재의 기본소득당으로 이어진다.

보도는 사실일까. 1987년 이후 현 민주당계열과 연합정치를 주로 시도해온 NL과 달리 전통적으로 PD계열은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즉 한겨레당·민중의당(1988)부터 민주노동당, 현재의 정의당까지 이어지는 진보정당 독자출마론으로 수렴되는 입장을 보였다는 점에서 이번 입장문은 의외의 선택으로 읽힐 수 있다. 입장문의 구체적 주장과 근거는 ‘행진’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문재인 정부 5년을 생각해보라. 한국의 경제, 정치, 군사, 보건위기를 심화하였다.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정부와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 집권기보다 더한 타락을 막아야 한다. 당신이 진정한 좌파라면 정권교체를 위해 윤석열 후보 지지를 감수해야 하는 이유다.”

‘행진’의 주장은 다음의 명제로 집약된다. “포퓰리스트 이재명보다 자유민주주의자 윤석열이 낫다.” 이 단체가 20대 대선에서 좌파의 선택이 정권교체여야 하는 이유는 “민주당은 보수주의에도 미달하는 포퓰리즘 세력이며 사이비 이론으로 국민을 속이고 나라를 망치는 사기꾼 집단”이기 때문이다. 좌파라면 이재명을 ‘사회민주주의자’나 ‘개혁의 적임자’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이 이 단체의 주장이다.

■입장문에 항의 댓글·반박 성명도

‘입장문’에는 과거 ‘행진’의 멤버였거나 지지했다는 인사들의 비판 댓글이 1000여건 달렸다. ‘행진출신’이라는 닉네임을 단 이는 “자신을 향해 꼰대라고 불러도 좋다”라며 “이제는 어디가서 과거에 행진 활동을 했다고 말도 못하겠다”고 글을 남겼다.

다른 운동단체·개인의 연명 비판문도 나오고 있다. 노동해방투쟁연대 청년운동팀·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원회 등 11개 단체 청년활동가 128명은 이튿날 공동선언문에서 “‘행진’의 입장문은 민주당 반대가 국민의힘 지지로 연결되는 자본주의 정치구도의 문법을 고스란히 따르며, 극우 정치인 윤석열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 외에도 자본주의 체제 내 민주주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좌파의 기본 입장도 포기됐다”고 비판하며 “‘행진’의 입장은 좌파의 입장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행진’이 입장을 철회하고, 좌파운동의 심각한 혼란을 야기한 것에 대한 사과가 있기 전까지 ‘행진’과 연대관계를 맺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자연대 학생조직도 11월 7일 낸 반박문에서 “학생행진이 독재정권의 후예이자 한국지배계급의 전통적인 선호정당이고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자주 공격해온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지지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라며 “학생행진이 결국 개혁주의로 전락하는 한계가 있지만 (이재명 후보로 대표되는) 좌파포퓰리즘과 트럼프, 보리스 존슨, 유럽 여러 우익정당의 우파포퓰리즘을 구분하지 않는 것은 오류”라고 비판했다.

논란이 가열되자 ‘행진’은 11월 11일 재차 ‘비판에 대한 우리의 입장문’ 명의의 글을 올렸다.

“윤석열 정부가 구성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유주의 정치의 한계를 극복한다거나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윤석열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민주당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저들보다는 우리가 그대로 낫지 않느냐’며 사회운동에 선택을 줄곧 강요해온 민주당 세력의 진영논리에 갇혀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것이다.”

첫 입장문에 달린 댓글 중 눈에 띄는 부분은 행진과 입장을 공유하는 단체로 사회진보연대, 그리고 윤소영 한신대 교수를 지목하는 글들이다. 과거 학생운동권 출신의 시니어그룹을 형성하는 사회진보연대 고참 활동가들이 뒤에 숨어 학생단체를 앞세워 논쟁을 벌인다는 것이다. 사실일까. 글에서 구체적인 실명으로 지목된 한 인사를 접촉했다. 그는 ‘배후’는 아니지만 생각은 비슷하다고 인정한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지금 대선 국면은 ‘누가 더 좋다’가 아니라 누가 더 나쁘냐를 두고 벌이는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재명이 훨씬 나쁘다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을 정리해 팸플릿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윤석열이 굉장한 사람이라거나 국민의힘이 무언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능하고 부패한 집단이라는 것이 기본적인 인식이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것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것을 놓고 손실을 따지면 오히려 저쪽이 적을 수 있다.”

■“좌파라면 당연 윤석열 지지”

좌파적 시각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과 함께 윤석열 지지의사를 담고 있는 윤소영 한신대 교수의 신간 <재론 문재인 정부 비판>/공감

좌파적 시각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과 함께 윤석열 지지의사를 담고 있는 윤소영 한신대 교수의 신간 <재론 문재인 정부 비판>/공감

사회진보연대의 초대사무국장을 역임한 정종권 ‘레디앙’ 편집장도 “이번 대선에서 1차 기준이 민주당에 대한 비판·심판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 입장문에 전면은 아니고 70% 정도 동의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각에서는 자기가 해왔던 운동을 부정하고 변절한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전대협 출신이 민주당에 가면 변절이 아니고 일부 인사들이 국민의힘으로 가면 변절이다’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으며 둘다 변절”이라며 “그런 면에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민주당으로의 ‘투항’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그런 투항에 대해 관대한 것이 한국시민사회운동의 양면성”이라고 말했다.

윤소영 한신대 교수는 “파평 윤씨인 윤석열과 본관이 같아 내가 지지한다는 이야기가 있는 모양인데 나는 해평 윤씨”라며 “행진이나 사회진보연대가 그런 입장문을 낸 것을 알고 있지만 나나 과천연구실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라고 말했다.

최근 <재론 문재인 정부 비판>이라는 책을 펴낸 윤 교수는 “입장문들을 보면 내가 낸 책들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며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파시즘적 경향이라고까지는 이야기할 수 없는데 이재명 후보에게는 그것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라면 파시즘을 막기 위해 자유주의나 보수주의자와 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운동권이든 좌파 지식인이든 파시스트는 막아야 하니 윤석열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익명을 요청한 한 시민사회 원로는 “(좌파라면 윤석열을 지지해야 한다는 입장은) 관념좌파의 부정적 특징을 끝까지 밀고 간 것”이라며 “과거 그쪽에서 헌신적으로 실천해왔던 사람들 대부분이 떠나고 남은 일부 사람들이 자신들끼리 모여 몇명이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굳이 정색하고 비판하기엔 윤석열 지지를 표명하는 사람들을 하나의 흐름 내지는 세력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기본소득당의 오준호 대선후보는 “사회구성체 논의만 잘하면 정책은 따라서 결판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민주주의의 다변화는 우리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을 포함해 정책을 정교하고 믹스해 사회진보를 이뤄나가야 한다”라며 “그런 것을 무시하고 나오는 논의는 비판을 위한 비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김병권 정의당 정책연구소 소장도 “이재명은 반민주주의자이고 나머지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엄청난 비약”이라며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개혁정치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볼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포스트케인지언이나 생태경제학, 네오슘페터리안, 페미니즘 경제학 등 여러 지적 조합으로 대안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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