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유권자 "국회가 우리 인권 2024년으로 유예"…국회 앞 차별금지법 농성 중

김윤나영 기자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씨가 23일 국회 앞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농성장’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씨가 23일 국회 앞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농성장’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천막 농성장이 있다. 여러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회원들이 지난 8일부터 16일째 돌아가면서 이 천막을 지키고 있다. 무지갯빛 테두리로 꾸며진 비닐 천막에는 ‘2021 연내 제정, 국회는 차별금지법 제정하라’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20대 인권활동가 두 명이 23일 영하의 날씨 속에 천막에서 밤을 보냈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인 이심지씨(28)와 고운씨(활동명·29)이다. 고운씨는 “국회가 법 제정 의지가 없는 것 같아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나왔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날 국회 정문 앞에서 ‘나중에를 끝내자, 차별금지법이 먼저다’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했다.

국회에는 장혜영 정의당, 권인숙·박주민·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평등법)안이 계류 중이다. 각 법안은 성별, 장애, 병력, 나이, 피부색, 종교,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등을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10일 차별금지법안의 심사기한을 21대 국회 종료일인 2024년 5월로 미뤘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최근 입법 신중론을 내비치면서 국회 논의도 흐지부지됐다. 이씨는 “대선을 앞두고 법안을 폐기하기는 눈치가 보이니 2024년으로 미룬 것”이라고 비판했다. 은평구민 500여명은 은평갑을 지역구로 둔 박주민 의원에게 항의서한까지 보냈다.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농성장 바로 옆에는 보수 기독교계가 주도하는 차별금지법 반대 농성장도 있다. 누군가 ‘우리 아이 동성애자 만들지 마세요’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고운씨는 “부끄럼 없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슬프다”고 말했다. 두 사람을 이날 오전 국회 앞 농성장에서 만났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인 이심지씨가 23일 국회 정문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인 이심지씨가 23일 국회 정문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 농성에 나선 이유는.

“인권활동가이다 보니 자연스레 인권에 관한 관심이 커졌다. 서울인권영화제는 누구나 차별 없이 영화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슬로건을 걸고 활동하는 인권단체다. 국회가 법 제정을 미루는 것 자체가 제정 의지가 없다는 뜻인 것 같아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큰일나겠다는 생각에 나왔다. 나도 시민이자 유권자인데, 우리의 미래가 정치권의 손에 달린 게 속상하다.”

- 국회 법사위가 차별금지법안 심사시한을 2024년으로 미뤘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허상의 유권자를 의식하고 미뤘다. 법안을 처리하기 싫다는 속이 너무 투명하게 보여서 당혹스러웠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과 이번에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한 박주민 의원은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는데, 내가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 싶더라. 정권교체는 기본이고 그 이후에 더 나아가야 했는데, 중요한 인권 현안들이 현 정부에서 해결되지 않았다. 2014년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됐다가 철회된 이후로 학생인권조례가 줄줄이 폐기되거나 후퇴했다.”

-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차별금지법 신중론을 폈다.

“‘필요하지만 나중에’라는 건 결국 지금 필요 없다는 얘기다. 이 후보가 그런 말을 한다고 퀴어 축제가 더럽다는 말을 일삼는 혐오세력들이나 보수 개신교도가 표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보다는 혐오와 차별로 상처 입고 피해 겪었던 이들을 끌어안고 같이 가야 한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 대한 20대 여성 지지율이 15%라는 여론조사를 봤다. 정의당이 소수자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유일한 원내 정당이기 때문 아닐까.”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차별금지법으로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성별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많은 장애인과 청소년이 여전히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이들에 대한 임금 격차나 차별은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더 나은 일자리가 생길 것이다.”

- 각 대선 후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소수자 혐오세력만 유권자가 아니다. 혐오를 양산하고 갈등을 조장해서 표를 얻으려 하지 말았으면 한다. 선거 공학적으로 생각해도 성 소수자와 그들의 인권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표가 꽤 많다.”

[관련기사]은평구민 500명 “박주민 정치는 어디를 보고있나” 차별금지법 논의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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