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노무현 역전의 길, 이재명이 갈까…보수 후보 최초 재역전 길 윤석열이 갈까

   

이재명·윤석열의 ‘남은 길’

김대중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미국 ABC에서 방영했던 <Eight Is Enough>라는 드라마는 8남매를 둔 중산층 가족의 삶을 다룬 시트콤이다. 한국에서는 <아들과 딸들>이라는 제목으로 일요일 오전에 방영됐던 기억이 있다. “Eight Is Enough”(8년이면 됐다)는 4년 중임 미국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원하는 야당 슬로건으로 쓰인다.

이 드라마에서 딕 밴 패튼이 맡은 아버지는 칼럼니스트다. 드라마 말미에 내레이션 칼럼을 들으며 칼럼니스트가 꽤 근사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신문에 글 쓰는’ 동경은 그때부터 자리 잡았다. 신문 읽고 신문에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신문이 ‘죽어가는’ 현실이 슬프다.

윤동주는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썼다. ‘죽어가는’ 모국어로 꾹꾹 눌러쓰는 시인의 아픈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대선이 있던 2017년부터 5년간 경향신문에 칼럼을 썼다. 다시 대선이 돌아왔다. <박성민의 정치 인사이드> ‘시즌 1’이 2020년 총선 때까지였으니 ‘시즌 2’는 대선 때까지가 좋을 듯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1987년 이후 8번째 대선이다. 7번의 대선에서 보수 정당은 네 번, 민주당은 세 번 승리했다. 노태우·김영삼·이명박·박근혜 네 명의 보수 후보는 단 한 번도 우위를 내주지 않고 이겼다. 반면 민주당 김대중·노무현은 역전승이다. 1997년 김대중은 두 아들 병역 의혹으로 이회창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역전했다. 대선 넉 달 전이었다. 2002년 노무현은 후보 등록 직전 정몽준과의 단일화로 역전했다.

새해 초 모든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이재명이 역전에 성공했다. 초박빙인 조사도 있었고, 두 자릿수까지 격차가 벌어진 조사도 있었다. 이재명도 김대중·노무현처럼 재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승리할까, 아니면 윤석열이 재역전하는 최초의 보수 후보가 될까. 도덕성을 뺀 지지율·호감도·국정능력 등 모든 지표가 이재명 쪽으로 기울고 있으나 아직 승자를 예측할 단계는 아니다.

이재명 후보도 “골든크로스라기보다는 데드크로스로 판단된다”며 낙관을 경계했다. 지지율 상승에 대해 “아주 미세하게 개선되는 추세”라며 “상대 후보 지지가 떨어지면서 발생한 현상이지 (자신의 지지가) 확고하게 개선됐다고 보이지는 않아 언제든지 (상대 후보의 지지가) 복구될 수 있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심상정, 김동연 후보 다섯 분이 끝까지 간다고 했을 때 42~45%를 득표하면 승리할 것으로 본다”며 “지지율이 42%를 넘어서면 당선권에 들어간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맞는 분석이다. 이런 구도에서는 (전화면접 조사에서) 43%를 돌파하면 당선이 유력하다.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는 35%·37%·40%·43%의 벽을 차례로 돌파해야 한다.

이재명은 35% 박스권을 돌파하고 37% 돌파를 시도 중이다. 35%는 당내 분열을 해결했다는 것이고 37%는 ‘정권유지(재창출)’ 여론을 거의 흡수했다는 의미다. 37%를 돌파했다는 일부 조사도 있다. 40% 돌파는 2030세대가 돌아오기 전에는 쉽지 않다. (한쪽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43%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나 가능할 것이다. 윤석열이 컨벤션 효과를 누리던 지난해 11월 3주 갤럽 조사는 이재명 31%, 윤석열 42%로 윤석열의 11%포인트 우세였는데 12월30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는 이재명 39%, 윤석열 28%로 이재명의 11%포인트 우세로 뒤집어졌다. 만약 이재명이 40%를 넘고 윤석열이 25% 밑으로 떨어지면 ‘후보 교체’와 ‘선대위 해체’ 주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이다.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네 가지 전선, 즉 기득권 대 변화, 낡음 대 새로움, 과거 대 미래, 분열 대 통합에서 윤석열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기득권·낡음·과거·분열의 자리를 차지했다. 윤석열은 2002년 이회창과 2020년 황교안의 미래통합당과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정권 교체에 성공하려면 두 가지 질문에서 55% 동의를 받아야 한다. ①정권 교체에 동의하는가? ②윤석열이 대안인가? ①에 동의하는 여론이 55%를 넘고, 동의하지 않는 여론이 35% 밑이라면 정권 교체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②에 동의하는 여론마저 50%를 넘으면 정권 교체는 거의 확실하다.

이회창

이회창

4·7 재·보궐 선거 때는 ‘정권 교체’ 여론이 55%를 넘고 ‘정권 재창출’ 여론은 35% 밑이었다. 선거 결과는 뻔했다. 지금은 정권 교체 여론은 갈수록 낮아지고 정권 재창출 여론은 높아지고 있다. (정권 교체 여론이 아직은 다소 높지만) 심각한 문제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대안으로 보지 않는다는 여론이 계속 높아지는 현실이다.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있다.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신년 조사에서 여야 대선 후보와 정당에 대한 호감을 물었더니 이재명은 ‘느낌이 좋아지고 있다’ 27.4%, ‘나빠지고 있다’ 33.8%였는 데 반해 윤석열은 ‘좋아지고 있다’ 19.9%, ‘나빠지고 있다’ 50.4%였다. 민주당에 대해서는 ‘좋아지고 있다’ 20.9%, ‘나빠지고 있다’ 36.0%였는데 국민의힘은 ‘좋아지고 있다’ 19.1%, ‘나빠지고 있다’ 40.4%였다. 윤석열과 국민의힘 이미지가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①이재명을 싫어하면서 윤석열이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이 잡아도 25%를 넘지 않는다. ②윤석열을 더 좋은 대안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재명이 싫어서 윤석열을 지지하는 사람은 10% 정도 될 것이다. ①과 ②를 합쳐도 35%를 넘을 수 없다. 이번 대선은 ‘묻지마 1번’ 35%, ‘묻지마 2번’ 35%를 뺀 나머지 30% 중 먼저 15%를 얻는 게임이다. 이재명이 35%+α에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윤석열의 전략적 실수는 “상대가 싫어서” 찍는 표에만 의존한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권 심판’과 이재명의 ‘도덕성’을 공격하는 것은 유용한 공격 수단이 아니다. ‘한국일보·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도덕성’에서 이재명은 ‘충분’ 27.9%, ‘부족’ 70.4%였는데 윤석열은 ‘충분’ 37.1%, ‘부족’ 60.6%로 약간 우세했을 뿐이다. 그러나 국정능력은 이재명이 ‘충분’ 50.3%, ‘부족’ 47.5%인 데 반해 윤석열은 ‘충분’ 27.4%, ‘부족’ 69.8%로 절대 열세였다.

윤석열은 ‘선택적 잣대’로 ‘공정과 상식’의 상징 자산이 훼손되어 도덕성에서 절대적 우위를 잃은 반면 국정능력에서는 절대 열세인 상태에서 낡고 거친 메시지를 쏟아내기 때문에 중도와 2030세대가 등을 돌렸다. 메시지는 ‘신뢰할 수 있는 메신저’(에토스)가 ‘믿을 수 있는 논리’(로고스)를 ‘감동적으로’(파토스) 전달할 때 설득의 힘을 갖는다. 지금 윤석열은 ‘메신저 거부 현상’ 위기에 빠졌다.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 잘할 사람’을 뽑는 것이다. ‘더 좋은 대한민국’과 ‘더 좋은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주지 못하면 (높은 정권 교체 여론) ‘구도’의 우위가 있어도 승리할 수 없다. 4·7 재·보궐 선거에서는 오세훈과 박형준이 ‘인물 경쟁력’에서 밀리지 않았거나 오히려 앞섰기 때문에 ‘정권 심판’ 구도 우위가 작동한 것이다. 윤석열의 위기는 비전과 리더십에서 이재명보다 ‘더 나은 선택’이라는 확신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5년 단임의 한국에서는 현직 대통령과 같은 당 후보라도 차별화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어느 정도 정권 교체 성격이 있다. 대중은 항상 ‘변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 모두 그런 경우다. 2002년과 2012년 대선은 높은 정권 교체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이재명도 문재인과 차별화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문재인이 박근혜 대통령이 부족했던 ‘국민과 소통을 잘할 것 같은’ 이미지로 대통령이 됐듯이 다음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의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는 사람이 선택받을 가능성이 크다. (내 생각에는)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네 가지가 부족했다. ①국민통합 ②‘총사령관’ 역할 ③‘연금 개혁’ 등 사회 구조 개혁 ④최고의 인재 등용. 이 때문에 다음 대통령은 개혁을 위한 ‘강한 추진력’과 국민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리더십’을 갖고 있는 후보가 유리하다. 대중은 대통령을 선택할 때 좋아해서, 필요해서, 상대가 싫어서 찍는다. 필요해서 찍는 경우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은 ①강한가? ②신뢰할 수 있는가? ③돌봐줄 수 있는가? 세 가지다.

‘강한가’는 국민의 생명과 국가 안보를 믿고 맡길 수 있는가에 대한 평가다. ‘신뢰할 수 있는가’는 경제정책을 포함하여 정부가 제시하는 방향과 정책대로 가면 대한민국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다는 믿음에 대한 평가다. ‘돌봐줄 수 있는가’는 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얼마나 잘 들어주느냐에 대한 평가다. 문재인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장 부족했던 ‘돌봐줄 것 같은’ 이미지로 대통령이 됐다.

내가 이재명의 전략가라면 “앞으로 제대로, ‘나를 위해’ 이재명”보다는 “이재명은 합니다”로 정면 승부했을 것이다. 대장동 이슈로 이재명의 최대 강점인 ‘강한 추진력’이 치명적 리스크로 보일까 우려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슬로건이 강한 개혁 정부를 이끌 적임자라는 이미지를 희석시킨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과 더 어울리는 슬로건인 “나를 위해 이재명”은 자칫하면 이재명 이미지를 ‘개혁가’가 아니라 ‘포퓰리스트’로 가둘 수도 있다.

내가 만약 윤석열의 전략가라면 검찰총장 시절 문재인 대통령이 ‘뒤로 숨어’ 보이지 않았을 때 ‘대통령처럼 보인’ 이미지로 승부했을 것이다. 국민이 윤석열을 ‘불러낸’ 이유는 그 때문이다. 정치 경험이 없고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윤석열은 전략적 판단과 정치적 언어의 한계로 인해 빠른 속도로 ‘대통령다운’ 이미지를 잃었다. 2030을 잡겠다고 어설프게 접근했다가 오히려 지지를 잃었다. 이제라도 “대통령다운 대통령”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좋다. 아직 지지율 40% 벽을 넘지 못한 이재명은 선거를 지배하는 ‘구도’의 힘을 무시하면 안 된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존 케리는 정책이나 대통령 자질 등 인물 경쟁력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압도하고 ‘총사령관’ 이미지에서만 뒤졌는데 이것이 치명적이었다. 이라크 전쟁 중 치러진 대선에서 “이번 대선은 테러와 싸울 것인가, 테러에 굴복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거”라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프레임에 갇혀 패했다.

이재명의 분석대로 안철수와 부동층으로 옮겨간 ‘정권 교체’ 지지자들은 언제든 다시 윤석열 지지로 돌아올 수 있다. 정권 교체 여론이 55%를 넘고 정권 재창출 여론이 35%를 밑돌면 인물 경쟁력과 상관없이 구도의 힘이 선거를 지배할 것이다.

윤석열은 2020년 황교안의 미래통합당처럼 ‘혁신 없는 통합’의 길로 패배할 것인가, 아니면 2030의 지지를 얻어 압승했던 2021년 4·7 재·보궐 선거의 길로 승리할 것인가 결단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결단하지 않으면 마지막 기회의 문이 닫힐 것이다.

■박성민

[박성민의 정치 인사이드]김대중·노무현 역전의 길, 이재명이 갈까…보수 후보 최초 재역전 길 윤석열이 갈까

1991년 설립한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대표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컨설턴트다. 30년 이상 선거를 치르면서 익힌 감각과 예리하고 독창적인 시각을 평가받고 있다.

정치게임에서 승리하는 법칙을 담은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 <정치의 몰락> 등을 썼다.



<박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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