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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서울 종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던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가 지난 17일 통의동 선거사무소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장애여성인권활동가 출신인 배 부대표는 “시민의 연대는 촛불보다 더 강한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서울 종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던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가 지난 17일 통의동 선거사무소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장애여성인권활동가 출신인 배 부대표는 “시민의 연대는 촛불보다 더 강한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세 살 때 소아마비로 잘 걷지 못하게 된 여자아이는 고민이 많았다. 나는 왜 장애인이 됐을까. 우리 집은 어쩌다 가난할까. 왜 나는 공부를 못할까. 게다가 이름마저 ‘복주’라니. 세상에 없는 듯 조용하게 살고 싶었는데, 선생님들은 걸핏하면 이 특이한 이름을 불렀다. 아이들은 절름거리는 그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놀려댔다. 학교가 싫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공장에 취직할 계획이었다.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50)는 그때만 해도 자신이 장애인 인권운동가이자 성폭력 상담가로 20년 이상 경력을 쌓고, 약자를 위한 목소리를 내겠다며 거대 양당정치 구도에 도전하게 될 줄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선일 함께 실시된 서울 종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진보4당 단일 후보로 처음 출마해 선거비 전액을 보전받는 15.32%의 득표율을 거둔 그를 지난 17일 서울 통의동 선거사무소에서 만났다. 그는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들이 연결되면 정말 큰 파도가 된다”며 “시민들을 갈라치고 2등 시민으로 얕잡는 나쁜 정치는 역풍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정치 1번지’로 꼽히는 종로에서 첫 출마로 15% 넘게 득표했습니다. “진보정치의 공간을 그만큼 열었다”고 스스로 평가했어요.

“종로 지역구는 주민 성향이 보수적인 곳이에요. 이곳에서 첫 출마로 이 정도 득표를 거두다니 저희로선 ‘종로의 기적’이죠. 국민의힘에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나왔고,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종로구청장을 3차례 지낸 김영종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유리한 상황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이곳이 지역구이던 이낙연 전 의원도 대선 출마를 위해 사퇴했잖아요. 대통령 3명을 배출한 이력이 있다지만 정치인들이 이곳을 청와대로 가는 발판 정도로 여기는 모습에 주민들이 아쉬워하더라고요. 종로구 혜화동에 오래 살아온 제가 책임정치를 하겠다며 호소하자 유권자들께서 귀 기울여주신 듯합니다.”

- 선거운동 표어가 ‘복주는 정치 배복주’였어요. 이름이 특이합니다.

“태어났을 때 볼살이 매우 통통한 우량아였다고 해요. 출생지인 대구에서 제일 유명한 술 ‘금복주’ 상표(뚱뚱한 몸집에 웃는 얼굴의 복영감)를 닮았다고 집안에서 작명 전에 복주라고 불렀다는데, 출생신고 하러 간 할아버지께서 등록하려던 이름은 잊어버리고 ‘복주 이름이 뭐더라…’ 하셔서(웃음).”

배복주 정의당 종로구 보궐선거 후보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서 제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배복주 정의당 종로구 보궐선거 후보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서 제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어릴 적 매우 내성적이었다면서요.

“초등학교에 남들보다 1년 늦은 1979년 입학했어요. 하루는 운동장 아침조회 때 국민체조 시간에 저는 뛰지를 못하니까 아이들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었거든요. 그런데 엄마가 저를 와락 부둥켜안고 우시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걷는다는 건 알았는데, 못한다는 건 그때 처음 알았어요. 학교라는 공간에서 위축됐어요. 다른 애들보다 몸집은 크고, 받아쓰기 20점 맞을 정도로 공부는 못하고, 이름은 배복주고, 장애까지 4중고였죠. 아, 5중고네요. 집도 가난해서요.”

-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나 보네요.

“하루는 담임선생님이 엄마 오시라는 거예요. 촌지가 ‘성의 표시’던 시절, 가난한 엄마는 빨간 내복을 선물로 드렸는데 선생님이 몹시 기분나빠했대요. 초등학교 때 사진 보면 움츠린 채 찍은 게 대부분이에요. 나는 크게 성공할 수 없겠구나, 체념했죠.”

- 성격이 언제 바뀐 건가요.

“여자중학교로 진학해서 따뜻한 친구들을 만나면서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공부가 재밌어졌어요. 연합고사 필기 180점 만점에 2개밖에 안 틀렸어요. 하지만 숙제 발표는 늘 짝꿍이 대신 했어요. 제 느린 걸음으로는 자리에서 교탁까지 그렇게 멀 수가 없더라고요. 고등학교 때는 수학 말곤 흥미가 없어서 야간자율학습은 땡땡이 치고 쉬는 시간엔 매점 떡볶이 먹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죠. 공부는 할 만큼 했으니 공장에 취직하려 했거든요.”

- 어쩌다 대학에 가게 됐나요.

“학력고사 3개월 앞두고 바짝 공부해서 10 대 1 경쟁률을 뚫고 1991년 계명대 회계학과에 진학했어요. 평소 별말 없던 아버지께서 진지하게 대학 가라고, 너는 장애가 있으니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자식에게만은 못 배운 설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으셨던 거예요. 하지만 주변에서 ‘그 몸으로 공부해서 뭐하냐’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는 대학 장애인 동아리에서 자신과 같은 이들을 만나 “경험을 공유하는 해방감”을 처음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소아마비로 약해진 다리를 교정하는 수술을 포기하고 그 돈으로 자가용을 사서 기동범위를 넓혔다. 동아리 첫 여성 회장이 되면서 자신에게 리더십이 있다는 것도 발견했고, 친목단체였던 동아리의 지향점을 인권운동으로 확대시켰다. 졸업연도에 어머니는 공무원 임용시험을 권했다. 그는 장애인·노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대구지하철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를 촉구하는 시민운동 간사를 맡았다. 이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활동하면서 장애여성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시작점임을 깨달았다. 그는 1998년 ‘장애여성공감’을 창립해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홈리스 등과 연대했다. 에세이집 <어쩌면 이상한 몸>에 이렇게 적었다.


“남성 중심/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내가 가진 위치에서 차별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해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했다. (…) 하지만 장애여성운동을 시작하고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 그런 생각을 하도록 한 것은 정상적/일반적/주류적인 것을 나누는 사회적 인식과 문화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차이에 기반을 둔 다양성이 존중된다면 사회적 소수자들이 동정의 대상, 복지의 대상, 혐오의 대상으로만 분류되지는 않을 것이다.”


“소수자·약자의 연결은 큰 파도가 된다”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가 말하는 연대의 힘[플랫]

- ‘장애여성공감’에서는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도 운영했습니다.

“‘도가니 사건’으로 알려진 광주인화학교 교장·교사 등의 학생 대상 성폭력 사건 해결 등에 참여했습니다. 지적장애여성들을 만나면서 ‘물리적 장벽’ ‘관계의 장벽’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면서 자연스럽게 반성폭력운동도 시작하게 됐습니다.”

- 2018년에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전성협) 상임대표를 맡았는데, ‘미투운동’이 시작된 바로 그해죠.

“저한테 임기 2년 대표를 맡아달라고 요청이 왔을 때 거절하고 싶었어요. 학교 때의 그 위축감이 스멀거리더라고요. 오랫동안 장애여성들과 감수성이 공유되는 곳에서 일하다가 비장애인들과 부딪치는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사회적 소수자의 감각을 전성협에 알려주고, 성폭력 피해자를 피보호 대상이 아닌 시민 주체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설득에 맡게 됐어요. 취임 직후 서지현 검사가 검찰 간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어요. 국내 ‘미투운동’의 시작이었죠. 흐름이 심상치 않았어요.”

- 그리고 3월에 김지은씨의 폭로가 이어졌죠.

“어느 변호사님이 ‘심장이 터질 거 같다’며 긴급회동을 요청했어요. 성폭력 사건인데 가해자가 유력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던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라는 거예요. 그의 정무비서였던 피해자 김지은씨의 JTBC 인터뷰 방송 전날 한잠도 못 잤어요. 저는 겁이 많아요. 내가 이걸 맡아야 하나, 어떻게 싸우나 고민이었죠. 지원 여부는 김지은씨를 만난 뒤에 결정했어요. 대형 사건이라 백래시가 심할 테니 130개 상담소가 연합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하자고 결정했죠.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기까지 554일간의 투쟁이었어요.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때 경험을 계기로 정치를 하는 이들이 누구를 대변해야 하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 ‘싸우는 사람’의 이미지가 강한데요.

“저는 평화주의자예요. 다만 차별받는 약자들에게 문제의 책임을 돌리는 사람들한테는 정말 화가 납니다.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구조의 불합리가 가장 큰 문제예요. 권력형 성범죄도 마찬가지예요. 안희정씨가 악마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권력을 악용할 수 있는 구조에 문제가 있는 거죠. 성별, 나이, 인종 등 권력에서 높은 위치를 이용해서 사적인 일을 지시하거나 성적인 침해를 친밀함의 표현이라며 강요하는데, 피해자들은 이런 갑질과 폭력을 당하면서도 그만둘 각오 없인 항의하지 못해요. 안희정씨는 처음에는 김지은씨에 대해 ‘다 내 잘못이다’라더니 재판 막판에는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강변했어요. 그런 태도 변화가 가능한 건 그런 남성들의 주장이 수용되고 허용되는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플랫]<김지은입니다 -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 시민운동을 오래 하면서 번아웃이 온 적은 없습니까.

“2010년이었는데, 장애여성공감 창립 12년째였어요. 장애여성들이 하고 싶은 것 다 해보자 싶어서 장애여성학교와 극단 ‘춤추는 허리’, 합창단 ‘일곱빛깔 무지개’ 등을 잇따라 만들었어요. ‘춤추는 베이커리’는 쫄딱 망했네요. 빚이 점점 늘고 활동가들의 갈등도 많아졌어요. 안 되겠다 싶어 돌파구로 사무실 이전을 계획했는데 휠체어 탄 활동가들하고 같이 갔더니 임대를 거부하는 거예요. 옆에 학원이 있는데 우리가 장애인이라서 안 된대요. 내가 이만큼 사회운동을 해왔는데 여전히 차별의 벽은 높고도 견고하구나 싶었어요.”

- 그 시기를 버티게 한 힘은 뭔가요.

“함께해준 동료와 친구들, 사람이죠. 저는 사람들하고 아주 친하게 지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멀리서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정치에 입문한 이후 늘 느끼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일했던 이는 이렇게 말한다. “즐겁고, 씩씩하고, 목소리도 큰, 이 언니가 함께하는 자리라면 고생은 해도 후회하지는 않을 거라는 신뢰감 같은 것이 있었다. 무겁고 심각할 수 있는 자리에선 사람들 마음을 무장해제하는 능력도 있었는데, 이건 복주 특유의 쾌활한 웃음소리 때문인지, 아무거나 많이 잘 먹는 밥심으로 후천적으로 취득한 것인지, 선천적인 능력인지는 잘 모르겠다.”

- 정당정치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요.

“2020년 장애여성공감 대표 임기를 마친 후 누군가에게 요구하는 활동보다 내가 권한을 갖고 책임지고 결정하는 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마침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총선 출마를 권하며 영입 제의를 해왔습니다. 일주일 고민 끝에 그래 해보자 했는데 떨어졌어요(웃음). 사실 아쉽지 않아요. 지나고보니 제가 부족해서 채워야 할 게 많더라고요. 차별금지법, 비동의강간죄, 장애인권리보장법, 낙태죄 폐지 이후 대체법안, 2차 가해 방지법이 비례대표 때 제 공약이었는데, 정의당 부대표로서 입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어요.”

- 최근에 청년정의당 대표 갑질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정의당에서 크고 작은 풍파가 계속되는 이유는 어디 있을까요.

“정당정치 3년차인 초보 입장에서 볼 때는, 정의당에 대한 애정이 커서 당에 타격이 갈까봐 참다가 급작스럽게 표출되는 것일 수도 있고, 시스템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뢰가 없어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 발생 시 원활한 내부소통을 통해 공정하게 해결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당 차원의 조속한 진상조사 이후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청년정치에 대한 기대가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새 정부가 들어서면 약자 정치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반대로 약자, 소수자들이 얼마나 단단하게 연대할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도 생각합니다.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민주당이 소수당 정치 하면 180석 정의당 될 것’이라고 발언해 논란이었는데,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2등 시민으로 보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얘기죠. 타 정당에 대한 존중의 감각도 없는 것 같고요. 이번 대선에서도 막판에 2030세대가 결집하면서 큰 표차가 날 것이라는 기존 전망이 깨진 바 있습니다. 연결된 소수자들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돼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검사 출신인데, 검찰은 우리 사회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한 조직이죠. 그걸 상기시키기 위한 시민의 연대는 촛불보다도 더 강한 힘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 정의당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갈라치기 대상이 된 시민들이 연대할 수 있도록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정의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은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치가 나아갈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면서 시민과 따뜻하게 동행하는 정당이기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치는 폭력을 추동해서는 안 됩니다.”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

1971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났고, 3세 때 소아마비로 지체장애인이 됐다. 1998년 여성장애인 인권운동단체 ‘장애여성공감’을 창립해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지원해왔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이 됐고, 2018년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에서 활동했다. 2020년 정의당에 영입돼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공약하며 21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후 정의당 당직선거에서 부대표로 선출됐으며, 2021년 정의당 성추행 사건 당시 원칙에 입각한 문제 해결 과정을 주도했다. 지난 9일 치러진 서울 종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진보4당 단일 후보로 출마해 15%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최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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