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권, 이제 국회에서(2)

장혜영 의원 "탈시설, 돌봄에 종속된 삶 구조 바꾸는 것"

김윤나영 기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장애인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돌봄에 종속된 삶을 살아야 하는 구조를 바꾸는 게 탈시설”이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지난 8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탈시설이란 시설에 사는 장애인을 몇 월 며칠 몇 시까지 다 시설 밖으로 쫓아내는 게 아니라, 아무도 시설에 들어가지 않아도 그 사회에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장 의원은 21대 국회에 입성하기 전까진 ‘생각 많은 둘째 언니’였다. 2017년 6월 시설에 살던 발달장애인 동생을 집으로 데려왔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내 인생을, 내가 원했던 삶의 방식들을 다 내려놓을 각오”를 해야 했다. 동생과 함께 사는 6개월간 탈시설 좌충우돌 적응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을 만들었다.

장 의원은 탈시설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 “탈시설 정책을 향한 더딘 변화 속에 충분히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기에” 정치인이 되기로 했다. 최근에는 국회가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해 초당적으로 협력하자고 다짐하는 서명운동을 주도했다. 국민의힘 의원 두 명을 비롯해 여야 국회의원 84명이 참여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지하철 시위’ 저격 발언이 계기가 됐다.

장 의원은 “정치인의 역할은 시민들의 출근길 불편이 만들어진 원인,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얘기하고 그걸 중재하는 것”이라며 “윤석열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의지를 공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을 향해서는 “탈시설지원법과 장애인권리보장법을 4월 임시국회 안에 통과시키는 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인권 보장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탈시설지원법’을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지난 8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장 의원은 장애인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탈시설지원법’을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지난 8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장 의원은 장애인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 여야 의원들의 초당적 서명운동을 주도한 계기는.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전장연 시위 현장을 찾아가서 사과하면서 장애인 인권 논의 국면이 달라졌다. 이준석 대표가 ‘장애인의 인권은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가’라는 문제를 ‘장애인들의 시위 방식은 정당한가’로 변질시켰다면, 김 의원은 원래 우리 정치가 논의해야 하는 주제로 되돌리는 변화의 출발점을 만들었다. 정치인으로서 장애인 기본권을 보장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초당적인 협력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장애인 이동권 현실이 어떤가.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 인구는 전체의 5%이고, 전체 장애인 인구는 10% 정도로 추정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장애인이 5% 수준으로 있나? 출근 시간대에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눈총받는 게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이다. 장애인을 배제함으로써 얻어내는 속도를 중심으로 비장애인들이 살아가고 있다.”

- 탈시설을 법제화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스스로 소개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가족은 동생이 시설에 가기 전까지는 거의 동생의 그림자처럼 살았다. 어머니가 학교에 오지 못하는 날에는 내 수업을 못 듣고 동생을 돌보면서 학교에 다녔다. 왜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한 삶을 강요당해야 하고, 장애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돌봄에 종속된 삶을 살아야만 하는가에 문제의식이 컸다. 동생이 시설에 가고 처음으로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됐는데, 자유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속박이더라. 24시간 동생의 그림자로 살아가겠다는 각오로 동생의 탈시설을 지원했다.”

- 이준석 대표는 일부 장애인 부모들이 탈시설에 반대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탈시설에 반대하는 부모와 찬성하는 부모 모두 지역사회 지원이 부족하다는 똑같은 얘기를 한다. 사회의 지원이 충분하다면 누가 자기 자식을 시설에 보내고 싶겠나. 시설 신규 입소 연령을 보면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이 많다. 바꿔 말하면 학령기까지는 학교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데 그 다음 단계가 없다. 누군가 대학에 갈 때 누군가는 시설에 들어가는 사회가 됐다. 시설로 가지 않아도 충분히 스스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 한국의 탈시설 정책의 현주소를 평가하자면.

“선진국이라고 얘기하기 부끄러운 수준이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19조는 모두가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한국의 장애인 예산을 보면 5500억원 정도가 시설 지원에 쓰이는데, 탈시설 자립 지원 관련 예산은 2억6000만원에 그친다. 시설에 들어가는 문은 신작로인데 나오는 길은 개구멍이다.”

- 중증 장애인에게 24시간 활동 지원이 안 될 것 같다.

“제가 21대 국회에 들어와 활동 지원 24시간 보장법을 발의했는데 통과되지 못했다. 발달장애의 핵심은 사회적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것인데, 지원 조사 문항에는 ‘전기밥솥으로 밥을 해먹을 수 있나요?’ ‘혼자서 버스를 탈 수 있나요?’ 이런 걸 가지고 장애 정도를 평가해 월 120시간을 정해주는 식이다. 명확하게 24시간까지를 지원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명문화하고, 그 사람의 필요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활동 지원 시간을 산정해야 한다. 제 동생은 충분한 활동 지원 시간을 보장받기에는 ‘장애가 너무 모자라서’ 하루에 4~5시간밖에 지원되지 않더라. ”

- 장애인 문제가 보편적인 문제인 이유는.

“누구나 장애를 겪는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장애인 정책의 기준이 돼야 한다. 교통약자에는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유아차를 끌고 다니는 부모도 있다. 한국 사회뿐 아니라 어떤 사회든 그 사회의 약자들이 가장 심하게 사회 문제를 겪는다. 약자를 시민으로 인정하는 사회는 약자를 지원해서 문제를 빨리 해결한다. 약자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이 문제를 방치해서 모두의 문제가 되도록 만든다. 우리가 약자들의 권리를 주장하면 ‘왜 약자의 권리만 주장하느냐 강자의 권리도 보장하라’라는 굉장히 이상한 논리로 가곤 하는데, 약자 권리 보장은 결국 모두의 권리와 연결돼 있다.”

- 장애인권리보장법과 탈시설지원법을 발의했다.

“시설 정책은 장애 당사자의 관점이 아니라 정책 공급자의 관점에서 이 사람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분리할 것인가 하는 담론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래서 ‘장애인복지법’을 ‘장애인 권리보장법’으로 바꾸고, 탈시설도 명확하게 장애인의 권리로 규정했다. 탈시설지원법은 탈시설을 세부적으로 지원할 로드맵을 담은 법이다. 무쟁점 법안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포괄적인 법인데도, 일각에서 지나치게 시설 유지 중심적인 접근을 하면서 이 법에 제동을 걸고 있다.”

- 민주당 의원들이 최근 휠체어를 타고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는 ‘휠체어 챌린지’를 했다.

“과반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은 그렇게 체험을 하셨으면 이제는 입법을 하실 때다. 탈시설지원법과 장애인권리보장법을 4월 임시국회 안에 최대한 빨리 통과시키는 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장애 인권 보장을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법안인 차별금지법도 이제는 민주당이 결자해지할 때가 됐다.”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국민의힘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전장연은 지하철 시위를 통해 장애인 이동권 예산을 반영을 요구했다. 작년 말에 개정됐던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에서 장애인 콜택시를 운영하는 이동지원센터의 예산을 지원할 수 있다는 조항을 만들었기 때문에, 기재부에서 시행령 별표에 예산 항목을 반영하면 풀릴 문제다. 윤 당선인과 인수위가 문제 해결 의지를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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