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검찰공화국으로…좋아! 빠르게 가?읽음

정용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국회에서 취임식을 마친 후 이동하며 연도를 메운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국회에서 취임식을 마친 후 이동하며 연도를 메운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5월 11일 기자와 통화한 박래군 4·16재단 상임이사는 “기시감(旣視感)이 든다”고 말했다. 이건 MB(이명박) 정부 초기 때일까, 아니면 1988년 상황일까. “1988년은 87년 6월 항쟁에도 불구하고 노태우가 됐고, 대통령은 노태우지만 여소야대 상황이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지금 국회도 여소야대로 바뀌었는데 대통령은 딱히 그걸 의식하지도 않는 것 같고….”

‘나는 갈 테니 알아서 하라’는 식은 안 되는데 윤석열 정부는 그 길로 가고 있다는 우려다. 기자는 이날 발표된 김규현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의 국정원장 인선에 관해 물었다. 세월호 사건 당시 대통령 보고 시각을 조작한 혐의로 인터폴 적색수배까지 내려져 인천공항에서 체포됐던 인사다. 그후 딱히 처벌을 받지도 않았다. 당장 세월호 관련 단체들이 반발하지 않을까.

단체들의 비판 성명은 다음날 나왔다. 4·16연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등은 김규현 국정원장 지명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에서 “대통령은 지난주 세월호참사 문건 파쇄를 지시한 권영호를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장에 임명한 데 이어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정권의 안위를 위해 세월호참사 최초 보고시간 조작이라는 범죄에 가담했던 범죄자를 또다시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수장인 국정원장에 지명했다”며 “새 정부의 인선에서 세월호참사 책임자들한테 면죄부를 주는 재기용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빠르게 진용 갖춘 ‘검찰공화국’ 인사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5월 12일 언론들은 윤 대통령이 이상민 행정부 장관, 박진 외교부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고 보도했다. 취임 당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등 7명의 장관을 임명한 데 이어 청문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한 5명 중 2명을 국회의 보고서 채택 여부와 상관없이 임명했다. 국정원장의 경우 대북·국가기밀사항을 제외한 개인 자질 문제 등은 국회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대통령실 비서·행정관 인사는 인사청문 대상이 아니다.

“검찰공화국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말이 나온 것은 대통령실 요직 인사를 발표한 5월 5일과 6일이다. 5일 1차 인사에서 대통령 총무비서관에 윤재순 전 대검찰청 운영지원과장, 법률비서관에는 주진우 전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 공직기강비서관에 이시원 전 수원지검 형사2부장을 내정했다. 이시원 공직기강 비서관은 2014년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담당 검사로 근무하며 국정원 기록 위조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은 인물로, 당시 법무부가 증거 검증 소홀의 책임을 물어 정직 1개월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이튿날 발표한 인사기획관실 인사도 이른바 ‘윤석열 사단’으로 채웠다. 차관급인 인사수석 대신 신설한 인사기획관(차관보급)에는 복두규 전 대검찰청 사무국장을 기용했다. 복 내정자는 9급 수사관에서 출발해 대검 일반직에서는 최고위직인 대검 사무국장을 지낸 인사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때까지 같이 근무했다. 인사기획관실 인사비서관으로는 이원모 전 대검연구관을 내정했고, 인사제도비서관에는 이인호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원회 상임위원을 낙점했다.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에는 문재인 정부까지 청와대 권력의 핵심부로 통한 민정수석이 없다. 민정의 인사 검증 기능을 법무부로 이관했다. 그런 법무부 장관 후보에 윤 대통령과 검사 시절부터 오랫동안 선후배 사이로 손발을 맞춰와 ‘소통령’ 소리까지 듣고 있는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지명했다.

이미 검찰총장 시절부터 이른바 ‘윤석열 사단 리스트’가 공공연하게 여의도 정가를 중심으로 나돌았다. 이번 대통령실에 기용된 인사? 당연히 윤석열 사단 리스트에 이미 오른 사람들이다. 심지어 신임 검찰총장 후보자로 거론되는 사람들, 이두봉·박찬호·이원석 검사장 및 조상준 전 서울고검 차장검사 등도 이미 수년 전부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인사들이다.

윤석열 사단의 검찰 내 요직 독식에 대한 불만과 우려는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불화가 불거지기 전부터 나왔던 사안이다. 그리고 이제 그 사단이 검찰을 넘어 법무부, 대통령실까지 장악해가고 있는 형국이다. 대통령실 인사기획관이 다루는 인사는 정부 주요 부처만이 아니다. 공기업까지 포함해 대통령이 ‘컨트롤’하는 자리가 무려 1만8000여개에 이른다. 고위직으로 승진과 발탁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들의 시야 범위 내에 머무르려 안간힘을 쓰게 마련이다.

“그래도 같은 정부면 인수위로 불러 늘공·어공 상관없이 진짜 인수인계를 하는데 정권이 바뀌어버리면 진짜로 없다. MB 때 당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인사 A씨의 말이다. 어공(일반공무원 출신을 뜻하는 ‘늘공’의 반대말로 정무직·별정직으로 외부에서 들어온 공무원을 지칭한다. ‘어쩌다 공무원’의 줄임말이다) 출신은 전례에 따라 6월 30일자로 면직 처리될 예정이다. A씨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면직처리 때까지 뭘 하고 싶어도 공무원으로서 걸릴 만한 건 다 걸리기 때문에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공무원 신분이 유지되다 보니 김영란법 적용을 받고 돈벌이 투자도 할 수 없다. A씨는 “새 정부하에서 민간 영역의 취업 심사는 특히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며 “공무원 신분이 면직되면 창업을 할까 생각 중”이라고 덧붙였다.

역시 문재인 청와대 인사인 B씨는 “윤석열 취임사 중 ‘반지성주의’라는 표현이 눈에 밟힌다”고 말했다. “자기들의 판단과 결정을 국민의 뜻이라며 정치권 야당과 다르다고 각을 세우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국민을 상대로 반지성주의라는 말을 쓰는 저의가 상당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우려 무시한 ‘일방통행’ 인사

문재인 정부에서 김상곤 교육부총리의 정책보좌관을 지낸 송현석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정권 초기 인사에서 드러나는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결국 자기 사람들 내세워 친정체제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전문성이나 비전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선 때 절반은 지지했지만, 그 나머지 절반은 과연 잘할 것인지 물음표를 찍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과반을 간신히 넘겼다고 하지만 인수위 때부터 자기들의 시간이었다. 집권을 시작하면 메시지를 내야 하는데 아무런 설득과정이 없고 설득에 동반할 비전과 담론, 주장도 안 보인다. 검찰을 키워 덤비는 놈들 다 때려잡겠다는 메시지밖에 안 보인다.”

“좋아 빠르게 가!”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대선 후보시절 찍은 59초짜리 쇼츠 공약 마지막에 사용한 구호와 제스쳐다. /유튜브 캡처

“좋아 빠르게 가!”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대선 후보시절 찍은 59초짜리 쇼츠 공약 마지막에 사용한 구호와 제스쳐다. /유튜브 캡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대선을 치르면서 스스로 개발한 밈(meme)이 있다. 하나는 이준석 당대표, 원희룡 국토부 장관 후보와 함께 인터넷 소츠(shorts) 영상을 통해 선보인 ‘좋아! 빠르게 가!’라는 구호와 제스처다. 지방유세를 돌면서 선보인 어퍼컷 세리머니도 윤 대통령이 대선과정에서 깜짝 선보인 몸동작이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지난 5월 1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긴 곳에 가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는 건 정치파트너인 상대방을 약 올리는 것”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대통령은 야당을 생각할 때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대해야 한다.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만의 대통령이 아니다. 역대 모든 대통령이 했던 다짐이다. 윤 대통령이라고 다를까.”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인사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과 관련해 “인사청문회 대상의 자질은 그나마 국회의원들의 능력으로 검증할 수 있지만, 차관급이나 청와대 비서실 인사에 대한 문제 제기는 그냥 묵살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라며 “한마디로 말해 왜 그 사람인가에 대한 설명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그 과정에서 업적 수월성이나 발탁 과정의 민주성을 다 구할 수 있으면 괜찮은데 과연 그럴 것인가 의문이 나온다는 점에서 새 정부의 인사정책에 동의하기 어렵다”라며 “인사 검증 부실이라기보다 대통령이 보편적인 시민사회의 인사 세평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스타일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소통 아닌 일방통행 인사에서 위험신호가 켜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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