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법 개정해야 지방소멸 막을 수 있다

박송이 기자

지역정당 설립 가로막는 현행 정당법

“국회의 관련 논의도 사실상 전무”

지난 6월 1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지난 6월 1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경남 진주시 시내버스 준공영제 운영조례발안 운동본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올 2월까지 3개월 동안 시민 7193명의 서명을 받았다. 주민발의 청구 요건인 4182명(전체 유권자의 70분의 1)을 훌쩍 넘는 숫자다. 서명에 동참한 시민들은 난폭운전을 비롯해 시내버스를 이용할 때의 불편한 점을 토로했다. 진주시는 2017년 시내버스 노선개편과 함께 총액표준운송원가제도를 도입해 원가만큼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표준운송 원가는 1일 버스 1대를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총비용으로 인건비, 연료비, 정비비, 보험료, 차량 감가상각비, 차고비 임차료 등을 포함한다. 운동본부는 세금이 지원되는 만큼 사실상 준공영제와 마찬가지인데도 버스업체들이 보조금에 대한 정산을 하지 않는 등 운영의 투명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다른 지역에 비해 버스기사의 월급이 100만원 가까이 차이가 나고 버스업체만 이득을 보고 있다며 준공영제 운영조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 조례안은 지난 3월 시의회 도시환경위원회에 상정됐지만, 공청회를 통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져 ‘보류’ 결정이 났다. 성종남 전주시 시내버스개혁 범시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다수당인 국민의힘은 반대할 것이 뻔하고 민주당 의원들은 조금씩 입장이 달라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상임위에서 부결될 것으로 예상한다. 부결되더라도 공청회라도 열어 시민들이 이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당장 처리하지 말고 보류해줄 것을 시의원을 통해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번 서명운동에는 진주에서 지역정당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는 ‘진주같이’도 참여했다. 전국정당이 아닌 지역정당은 그 지역 고유의 정책과제에만 집중하는 당이다. 백인식 ‘진주같이’ 대표는 “지역의 양당 정치인들이 공천 때문에 중앙정치 눈치만 보고 있고 지역 문제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라며 “진주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2013년 ‘진주같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양당의 시의원들이 지역의 이슈를 외면하는 사이, ‘진주같이’는 시내버스 문제를 비롯해 남강댐 치수 능력 증대사업의 문제점 등 지역 현안을 중심에 두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역정당 가로막는 정당법

‘진주같이’는 2014년 지방선거에 후보를 냈다. ‘진주같이’의 이름이 아닌 무소속으로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현행 정당법상 수도에 중앙당을 둬야 한다는 제3조, 정당은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 한다는 제17조, 시·도당은 관할구역 안에 주소를 둔 1000명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한다는 제18조 등이 사실상 지역정당의 설립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의 눈치를 보고 지방분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현실에서 지역정당이 출현하려면 정당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방소멸이라는 지역의 절박한 숙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도 지역정당은 필요하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6월 14일 무등일보 칼럼 ‘‘지방소멸’을 막을 최후 카드는 ‘지역정당’이다’에서 “지방은 서울의 식민지다. 지방에서의 정치란 서울에서의 지역 간 패권경쟁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서울 권력의 힘을 빌려 보다 많은 자원을 지역으로 가져오겠다는 게 최대의 발전 전략일 뿐 지역 내부에서 스스로 발전과 혁신을 꾀하는 일엔 관심이 없다”면서 “기존 시스템으로는 지방소멸을 막을 수 없다는 건 충분히 입증됐다. 이제 생각해볼 수 있는 마지막 카드는 기존 식민지 체제에 굴종하지 않는 ‘지역정당’의 출현과 활성화뿐이다”라고 말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도 지난 4월 5일 경향신문 칼럼 ‘동네정당을 기다리며’에서 “지난 대선에서 청년 문제가 중심 의제인 것처럼 다뤄졌지만, 그 어느 후보도 정말 심각한 문제는 지방의 청년 문제라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인구절벽 문제가 우리의 눈앞에 다가온 심각한 문제라는 점은 여야 없이 동의하는 바였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방의 저출생 문제, 아니 지방소멸이라는 사실을 어느 후보도 말하지 않았다”라며 현행 정당법에 막혀 “도시 빈곤 노인 돌봄 정당이나 경북 의성군의 인구절벽을 우려하는 정당, 경기 안산시 시화호 생태환경 조성 정당이나 고시촌 부활을 꿈꾸는 관악청년당 같은 조직은 애초 존재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사실상 비수도권이나 농촌 지역을 제대로 대변하는 국회의원은 극소수인 상황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필요하고 거기에 더해 지방선거에서 진짜 지역의 정책을 갖고 경쟁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지역정당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로 간 정당법

지난해 10월 지역정당을 표방하며 창당한 직접행동영등포당의 이용희 대표는 정당법이 지역정당의 출현을 막고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이용희 대표는 헌법소원심판청구서에서 “거대 양당의 당리당략에 따른 단기적 목적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역정치가 이용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에 청구인 이용희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힘으로 지역의 변화를 만들고, 그 힘을 강화해 피부에 와닿는 삶의 정치를 만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지역정치의 새로운 방향을 만드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참다운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지역정당을 창당하기에 이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5개 이상의 시·도당 요건과 각 시·도당에 1000인 이상의 당원을 요구한 현행 정당법의 입법 목적이 ‘의회 내 안정적인 다수세력의 확보’를 위해 지역정당을 배제하려는 것에 두고 있다”며 해당 법률조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정당법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 1962년에 후보와 정당의 난립을 금지한다는 의도로 제정됐고, 지역정당을 배제하는 조항 또한 여기에 근원을 두고 있어 오늘날의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4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의견서에서 “자치분권 강화가 중요한 시대적 과제임을 고려할 때, 헌법재판소는 지역정치의 활성화와 주민참여의 고도화를 위해 지역정당을 설립할 수 있도록 위헌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며 “위헌성을 고려해 이 부분에 대한 선례를 파기하고 해당 법률조항을 위헌으로 선언해 지방분권의 시대에 어울리는 지방정치의 굳건한 디딤돌을 마련해달라”고 헌재에 요청했다.

국회는 지난 8월 새로이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했다. 법사위 체계·자구심사 권한 폐지 검토, 국회의장단(후반기) 선출규정 정비, 예산·결산 관련 심사기능 강화, 상임위원장 배분 방식, 상임위원회 권한·정수 조정, 교육감 선출방법 개선, 연동형 비례대표제 개선, 지역당(지구당) 부활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지방소멸이라는 절박한 과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지역정당 문제는 논의의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했다. 민선영 참여연대 간사는 “국회에서는 지역정당과 관련한 논의가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고 관심을 두고 있는 의원도 없다”고 말했다. 박원호 교수는 “거대 양당은 지역정당이 출현하면 자신들의 존재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지난 지방선거에서 양당은 기초의회 2인 선거구에서 각각 한명씩만 공천해 무투표 당선을 시키는 담합 아닌 담합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정당이 출현하게 되면 지역에서부터 자신들의 지지기반이 깎여나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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