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실세, 대통령실 ‘직보’ 파문

조문희·김윤나영·심진용 기자

유병호, 이관섭 국정수석에 문자

“무식한 소리 말라는 해명 나갈 것”

서해 피살 ‘정치감사’ 논란 확산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5일 정부서울청사·세종청사 영상국무회의가 열린 서울청사 회의장에서 이관섭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수석에게 ‘서해 피격 사건’ 감사 문제를 지적한 언론 보도에 대한 대응 조치로 보이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뉴스1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5일 정부서울청사·세종청사 영상국무회의가 열린 서울청사 회의장에서 이관섭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수석에게 ‘서해 피격 사건’ 감사 문제를 지적한 언론 보도에 대한 대응 조치로 보이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뉴스1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이관섭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수석에게 보내는 “오늘 또 제대로 해명자료가 나갈 겁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입니다”라는 문자메시지가 5일 포착됐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감사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보도에 대한 해명자료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상 독립기관인 감사원의 사무총장이 윤석열 대통령 핵심 참모에게 업무보고를 한 셈이다. 유 사무총장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감사원 2인자인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정권 실세로 평가된다. 최근 감사원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서면조사를 통보한 것을 두고 야당이 정치보복이라고 반발하는 상황에서 감사원의 정치감사 논란이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감사원은 이날 오전 11시20분쯤 “서해 사건 감사에 착수하려면 사전에 감사위원회의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자료를 냈다. 자료는 한겨레가 ‘감사원법은 감사위원회의에서 주요 감사계획을 사전에 의결하도록 하고 있는데, 서해 사건 감사는 이런 절차를 무시한 상태에서 자료제출과 출석·답변 요구 등 각종 조사 권한을 행사해 직권남용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보도한 것을 반박하는 내용이다.

유 사무총장이 이 수석에게 “자료가 나갈 것”이라고 메시지를 보낸 시각은 이날 오전 8시20분이다. 해당 자료가 나가기 전 대통령실에 미리 자료 내용을 일러준 것이다. 감사원 독립성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감사원법 2조는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논란의 중심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5일 정부서울청사와 세종청사 간 영상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청사 회의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논란의 중심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5일 정부서울청사와 세종청사 간 영상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청사 회의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정권 실세에 사실상 업무보고…감사원 ‘독립성’ 또 도마에

‘서해 사건 감사 절차 무시’ 보도에 반박 자료 내기 전 알려
대통령실 “사실관계 단순 문의” 야당 “정치감사 배후 확인”

문자를 받은 이 수석은 ‘왕수석’으로 통한다. 대통령실 개편으로 지난 8월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됐고, 9월 명칭이 국정기획수석으로 변경됐다. 국정기획수석은 국정기획비서관, 국정과제비서관, 국정홍보비서관, 국정메시지비서관 등을 총괄한다. 이 때문에 이 수석은 사실상 정책실장이란 평가를 받는다.

야당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정치감사의 배후가 대통령실로 드러났다”고 반발했다.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윤석열 대통령실이 국정무능, 인사, 외교참사 등 총체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철저히 기획된 정치보복 감사를 진두지휘한 것”이라고 했다. 또 “윤 대통령의 ‘감사원은 독립적 헌법기관의 일이라 (문 전 대통령 감사에 대한) 언급조차 적절치 않다’는 말이 모두 새빨간 거짓이었다”며 “윤 대통령은 감사원을 통한 기획감사, 정치감사를 즉시 중단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민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민 앞에서는 감사원과 아무 소통이 없는 것처럼 굴더니, 뒤로는 실시간으로 긴밀한 소통을 나누고 있었다니 말문이 막힌다”며 “감사원의 존립 기반을 뒤흔드는 사건”으로 규정했다.

감사원 대변인실은 유 사무총장 문자메시지와 관련해 “해당 문자메시지는 오늘자 일부 언론에 보도된 ‘서해 감사가 절차 위반’이라는 기사에 대한 질의가 있어 사무총장이 해명자료가 나갈 것이라고 알려준 내용”이라고 밝혔다. 감사원 관계자는 ‘무식한 소리라는 말은 누굴 향한 것이냐’는 질문에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이 수석이 관련 보도의 사실관계를 문의한 데 대해 유 사무총장이 답변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감사원이 적법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보도에 대한 사실관계를 단순 문의한 걸로 알고 있다”며 “문자 내용을 보면 정치적으로 해석할 만한 그 어떤 대목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감사원이 독립성을 의심받은 건 이번 정부 들어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월 최재해 감사원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감사원은 대통령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인가”라는 야당 의원의 질문을 받고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해 논란이 일었다. 여당 소속인 김도읍 법사위원장조차 “귀를 의심케 한다”며 발언을 재확인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출근길에 감사원의 문 전 대통령 서면조사 통보와 관련한 질문에 “감사원은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대통령이 뭐라고 언급하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답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감사원은 직무상 독립기관이고 감사 활동에 대해서 대통령실에서 논평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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