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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 로스쿨 졸업생은 어쩌다 극우 민병대 대장이 됐나?…스튜어트 로즈 이야기

김재중 기자

‘1·6 폭동’ 관련 ‘정부전복음모’ 혐의로 기소

공수부대원 출신으로 예일대 로스쿨 졸업

정부를 억압으로 보는 ‘자유지상주의’ 신봉

2009년 음모론 지지 ‘오스 키퍼스’ 창설

미국의 극우 민병대 ‘오스 키퍼스’ 창립자 스튜어트 로즈가 2017년 6월 워싱턴 백악관 인근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미국의 극우 민병대 ‘오스 키퍼스’ 창립자 스튜어트 로즈가 2017년 6월 워싱턴 백악관 인근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미국 워싱턴 연방지방법원은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의 지난해 1월6일 연방의사당 습격 사건과 관련해 정부 전복 음모 혐의 등으로 기소된 극우 민병대 ‘오스 키퍼스’ 창립자 스튜어트 로즈에 대한 공판을 마무리했다. 그는 사건 발생 1년여 뒤인 지난 1월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돼 기소됐으며, 공판은 약 두 달 동안 진행됐다. 로즈는 조 바이든 정부 법무부가 1·6 폭동 당시 의사당에 직접 난입한 사람뿐 아니라 이를 모의하고 선동한 이들에게도 책임을 묻겠다며 재판에 부친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뉴욕타임스는 21일(현지시간) 검찰과 피고의 주장을 모두 청취한 배심원단이 그의 유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심의에 돌입했다고 보도하면서 미국 최고 명문대인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그가 어쩌다 극우 음모론을 표방하는 민병대 대장이 됐는지를 되짚었다.

현재 57세인 로즈는 캘리포니아주에서 해병대원인 아버지와 농장 일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라스베이거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입대해 육군 공수부대에서 근무했다. 로즈는 야간 낙하 도중 부상을 입어 1980년대 중반 명예 제대했다. 이후 네바다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1994년 로즈와 결혼해 2018년 이혼 소송을 제기한 타샤 애덤스는 젊은 시절 그가 박식하고 역사학과 정치학에 매료돼 있었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자유지상주의 성향의 론 폴 공화당 하원의원에게 채용돼 워싱턴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현실 정치에 처음 발을 담갔다.

이후 로즈는 역사 교사가 될까 고민하다가 로스쿨로 진로를 변경해 2001년 예일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예일대 로스쿨은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시카고대 등 명문 로스쿨 중에서도 최고로 평가받는다. 이 학교 졸업생은 법조계뿐 아니라 정치·사회적으로 엘리트 그룹에 쉽게 진출한다. 로즈의 로스쿨 동기로서 현재 캘리포니아주 변호사인 개브리엘 로웬크론은 “우리는 흔히 ‘누가 대통령이 될까?’라든지 ‘누가 대법관 재판연구원이 될까?’라는 농담은 했지만 ‘누가 폭동 선동가가 될까’라는 질문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결혼해 아이 둘을 뒀고, 총기를 열렬히 사랑하는 전직 공수부대원인 그는 진보 성향의 젊은 학생들로 가득한 예일대 캠퍼스에서 동료들과 깊이 있게 교류하지는 않았다. 학창 시절 로즈는 현재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염소 수염을 기르거나 검은 안대로 한쪽 눈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는 과거에 자신이 일으킨 총기 사고로 왼쪽 눈을 실명했다.

오스 키퍼스의 창설자 스튜어트 로즈가 지난 7일(현지시간) 워싱턴 연방지방 법원에 출석해 자신의 받고 있는 정부 전복 음모 혐의를 부인하며 진술하는 모습을 스케치한 그림. 워싱턴|AP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오스 키퍼스의 창설자 스튜어트 로즈가 지난 7일(현지시간) 워싱턴 연방지방 법원에 출석해 자신의 받고 있는 정부 전복 음모 혐의를 부인하며 진술하는 모습을 스케치한 그림. 워싱턴|AP연합뉴스

로즈의 동급생들은 그가 총기 소유 권리에 이례적으로 집착하기는 했지만 진보 성향 학생들과도 차분하게 토론하는 등 무리 없이 지냈다고 기억했다. 반면 부인인 애덤스는 로즈가 예일대에 다닐 때 이미 정부의 개입을 개인의 권리를 억압하는 악으로 보는 극단적 자유지상주의에 매몰돼 있었지만 숨겼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판에서 자신의 정치적 이념이 형성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예일대에 입학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발생한 2001년 9·11 테러였다고 밝혔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9·11 테러 이후 테러 예방을 명목으로 시민에 대한 감시와 구금을 확대하는 각종 조치를 취했는데 정부의 개입과 지배를 거부하는 로즈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스티븐 블라덱 텍사스대 로스쿨 교수는 “그는 별로 흥분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부류였는데 가끔 정부가 미국인의 권리를 너무 심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우려에 관한 발표를 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부시 정부의 시민 권리 침해 비판에 관해서는 좌파 성향 동료들과 의견을 같이했다.

2004년 로스쿨을 졸업한 로즈는 네바다주 대법원 재판연구원으로 갔다가 2009년 마침내 오스 키퍼스를 창립한다. ‘서약 수호자’라는 뜻인 오스 키퍼스는 연방정부가 시민의 권리를 빼앗으려 하고 있다면서 연방정부의 반헌법적 명령에 불복종할 것을 다짐한다. 로즈는 전직 군인과 경찰 등 3만명이 오스 키퍼스 회원이라고 주장하지만 과장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로즈가 2008년 초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면 그는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한 폴 의원을 위해 자원봉사를 했다. 하지만 폴 의원은 극우주의 및 백인 우월주의 집단과 연계돼 있다는 비판을 받았고 낙선했다. 로즈는 폴 의원을 비판한 세력에 대한 맹렬한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선거에서 제도 정치권의 벽을 경험하고 정부의 자유 침해 행위를 저지하기 위한 조직을 직접 결성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로즈와 오스 키퍼스는 티파티, 프라우드 보이스, 스리 퍼센터 같은 극우단체, 극단주의 음모론을 유포하는 라디오 진행자 알렉스 존스 등과 교류하면서 세력을 키워갔다. 오스 키퍼스는 2014년 연방정부의 토지 수용에 저항한 번디 가족을 지원하는 반정부 투쟁을 벌이고, 2015년엔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반한다는 이유로 동성 커플의 결혼증명서 발급을 거부해 논란을 일으킨 켄터키주 로완 카운티 서기 킴 데이비스 지원 활동을 벌이면서 주목을 받았다.

부동산 재벌 출신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자 로즈와 오스 키퍼스는 트럼프 지킴이를 자처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11월 4일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패했지만 거대한 사기가 있었다면 패배를 시인하지 않았다. 검찰에 따르면 로즈는 11월 9일 조직원들과의 인터넷 채팅에서 “우리는 싸워야 한다”면서 “피를 흘리는 처절한 싸움이 될 것이며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12월 21일에도 “우리는 그들을 상대로 피를 많이 흘리는 싸움을 해야 할 것”이라면서 “이것이 앞으로 벌어질 일”이라고 주장하는 등 조직원들에게 ‘내전’을 준비하라고 여러 차례 선동했다.

검찰은 그가 1·6 폭동 당시 의사당에 바깥에 있었지만 워싱턴 인근 호텔에 다수의 무기를 비축해 두었고, 폭동이 일어난 밤 조직원들과 이를 축하하고 다음 행동 계획을 논의한 것으로 밝혀지는 등 폭동을 계획하고 선동한 실질적인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의회가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인증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물리적으로 막으려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로즈는 자신이 워싱턴에 간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비선참모 로저 스톤 등 고위급 인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면서 자신은 의사당 습격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반박해 왔다.

남북전쟁 당시 도입된 정부 전복 음모죄는 유죄가 인정되면 최고 20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이 죄목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마지막 사례는 1993년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폭파 미수 사건으로 기소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마지막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오스 키퍼스가 세계가 비밀 엘리트 집단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음모론에 깊이 물들어 있지만 로즈 자신은 예일대 졸업장을 무척 소중하게 여긴다고 꼬집었다. 오스 키퍼스 창설 초기 그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면 자신의 주장에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자신이 예일대를 나왔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는 의사당 폭동 당일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보낸 계속 투쟁하라고 촉구하는 글에서도 자신을 “오스 키퍼스 창설자이자 육군 공수부대 재향 군인, 예일대 졸업자”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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