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새해 시작부터 중대선거구제를 띄웠다. 그런데 집권여당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다른 사안에서는 윤 대통령의 방침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국민의힘 지도부와 친윤(석열)계 의원들도 신중한 도입을 강조한다. 당 차원의 공식 논평도 이틀째 나오지 않았다. 여당 핵심 지지 지역인 영남권 일부를 더불어민주당에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3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공직)선거법상 선거(총선) 1년 전인 올해 4월까지 선거구제가 확정돼야 하는데, 지금부터 논의해도 시간이 많이 빠듯하다”며 “모든 선거구제가 일장일단이 다 있다. 소선거구제 폐단도 있지만 장점도 있고, 중대선거구제도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지고지순한 제도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선거구제의 승자독식 폐단을 강조한 윤 대통령과는 온도 차가 있는 발언이다.
‘윤심(윤 대통령 의중) 마케팅’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당권주자인 김기현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선거구제 개편 문제가 갑자기 불거져 나와서 당 내부에서 의견 수렴이 아직 된 게 없다”며 “당대표가 되면 당 내부 의견을 잘 수렴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에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인 권성동 의원은 전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 사정이 다르다”며 “여야 간의 이해관계가 일치돼야 확정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여당 지도부와 친윤계 의원들의 유보적 태도는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했을 때 자당이 불리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현재 보수정당이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영남권에서 상당수 의석을 민주당에 내줄 수 있다는 우려가 국민의힘 안에서 제기된다. 주 원내대표와 김 의원은 모두 영남이 지역구다.
하태경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호남은 (한 선거구에서) 3·4인을 뽑아도 우리 당이 안 되고 정의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대구·경북은 민주당이 약 30%가 나오고 부산은 40% 이상 나온다. 부산은 많으면 절반을 민주당이 가져간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시 국민의힘이 호남에서 얻는 의석보다 민주당이 영남에서 얻는 의석이 훨씬 많을 것이란 예상이다.
당에서는 이 같은 친윤계 태도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김웅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쓴 글에서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대해 언급하자 양당의 텃밭이자 기득권 지역에서 반발한다고 한다”며 “‘우리는 모두 친윤’이라고 외치던 그 신종선서는 어디로 간 것이냐. 자기에게 유리할 때만 친윤이냐”고 말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현역 의원들이 선거구가 줄어드는 것을 결사반대하기 때문에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성공하기는 굉장히 힘들 것”이라며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