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의 연속, 선거제도 변천사…이번엔 다를까?읽음

조문희 기자
남인순 국회 정개특위 위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 위촉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크게보기

남인순 국회 정개특위 위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 위촉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선거제도 개편은 2023년 새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다. 국가 의전서열 1·2위인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이 나란히 언급하면서 논의 대상으로 급부상했지만 해법을 두고 이견이 분출한다. 여당과 야당도 입장이 갈리지만,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촌 등 자신이 속한 지역에 따라 개별 의원들의 셈도 복잡하다. 여기에 무엇이 가장 바람직한 선거제도인지 이론적·실천적으로도 따져봐야 하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대표성이 좀 더 강화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지난 2일 신년인터뷰)며 중대선거구제를 콕 집어 검토 대상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과거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해 본 경험이 있다. 그에 대한 비판이 커져 변경한 것이 소선거구제였다. 다시 중대선거구제로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할까.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최근 선거제 논의를 위해 초청한 전문가들은 “중대선거구제가 해법인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중대선거구제가 ‘오답’이란 뜻은 아니다. 선거제 개편은 학계에서도 ‘백가쟁명’하는 논의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최근 ‘국민투표’를 통한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정치인의 선출 과정인 만큼, 국민의 공론과 그에 따른 결정이 필요하다는 취지이다. 더 많이 알수록 더 꼼꼼하게 선거제도를 살펴볼 수 있다. 경향신문은 21일 설 연휴를 맞아 한국의 선거제도 개편 역사를 살펴봤다.

※ 아래 내용은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논의와 대안의 모색>(2020, 국회입법조사처), <선거제도 변화의 전략적 의도와 결과>(2002, 한국정치학회보)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1948년 소선거구제 시작…첫 비례대표제 도입한 1963년

광복 후 대한민국의 첫 국회인 제헌국회의 선거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로 실시됐다.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는 작은 지역구 단위에서 1위 득표자를 선출하는 제도다. 1948년 3월17일 미군정의 군정법령 ‘국회의원선거법’에 의거한 것이었다. 이때 채택된 선거 방식은 제4대 총선(1958년)까지 이어진다.

제5대 총선(1960년)은 독특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부가 물러나면서 양원제와 의원내각제가 처음으로 도입됐다. 의원내각제는 영국처럼 다수당이 총리를 내고, 정부 내각을 구성하는 제도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을 국회와 별도로 선출하는 현행 한국의 제도와 딴판이다.

양원제는 미국처럼 국회를 상원과 하원 둘로 나눠 선출하는 제도다. 한국에선 상원을 참의원, 하원을 민의원이라고 불렀다. 당시 참의원 선거에는 2~8인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된 반면, 민의원은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로 시행됐다.

5·16 군사 쿠데타 직후 치러진 제6대 총선(1963년)은 일종의 비례대표제인 ‘전국선거구’를 처음으로 도입한 선거였다. 전국구 의석은 의원정수의 1/3이었다. 지역구 선거는 1구 1인 최다득표제를 유지했고, 전국구 의석은 지역구 선거 투표율에 따라 배분했다. 최다 득표한 제1당에 유리한 방식이었다. 제1당이 전체 50% 이상을 득표한 경우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고, 50% 미만 득표시에도 전국구 의석 절반을 줬다. 제2당은 제3당 이하 정당 득표 총합의 2배 이하일 때 잔여 의석의 2/3을 얻었다.

1948년 제헌국회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1948년 제헌국회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정희가 도입한 중선거구제…군부 ‘1당 독주’에 기여

제9대 총선(1973년)엔 지역구 선거 방식이 다시 변했다.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도한 10월 유신 이후 도입된 개정 선거법은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를 1구 2인의 중선거구제 단기비이양식으로 바꾸는 내용이었다. 단기비이양식이란 복수 후보의 당선 여부를 상위 득표자 순으로 정하는 방식을 뜻한다. 전국구 제도는 폐지됐다. 대신 전체 의석의 1/3을 통일주체국민회의가 간선으로 선출했다. 말은 간선이지만, 대통령이 추천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추인하는 형식이라 사실상 임명제였다. 이 제도 덕에 여권은 전체 의석의 1/3을 자동 확보할 수 있었다.

중선거구제로의 변경도 여당의 의석 확보를 위한 ‘꼼수’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야당인 신민당이 전체 204석 중 89석을 차지해 개헌 저지선(전체 1/3)을 훌쩍 넘겼다. 1969년 개헌으로 3선 연임이 가능해진 박 대통령 입장에서 앞으로의 정치 행보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이에 박 대통령이 위헌적으로 국회를 해산하고 제3공화국 헌법을 정지한 사태가 10월 유신이었다. 중선거구 도입은 집권 여당의 안정적 의석 확보를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됐다.

제11대 총선(1981년) 때는 전국구 제도가 부활했다. 1979년 12월12일 이른바 12·12 사태로 전 대통령 전두환씨가 이끈 신군부집단이 집권한 이후였다. 신군부는 지역구 선거에선 중선거구 단기비이양식을 유지하고, 전국구 의석은 지역구 의석의 절반이 되도록 정했다. 역시 제1당에 유리한 ‘꼼수’가 작동했다. 지역구 의석수 1위 정당은 전국구 의원 정수의 2/3를 얻었고, 나머지 의석은 제2당이 받았다.

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표를 행사하는 전두환 부부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표를 행사하는 전두환 부부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소선거구제로의 회귀…‘위성정당’ 꼼수 등장

제13대(1988년) 총선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처음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였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그해 3월 국회의원선거법을 개정해 지역구 선거 방식을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로 다시 돌렸다. 유신 시대와 신군부 집권 기간인 9∼12대 총선 때 중선거구제가 유지된 것과 다른 행보였다.

이후 지역구 선거 방식은 현재까지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전국구 의석 배분 방식은 조금씩 변화했다. 제16대 총선(2000년)부터는 전국구 의석을 ‘비례대표’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이 명칭이 현재도 통용된다.

제17대 총선(2004년)부터는 1인 2표가 도입됐다. 1표는 지역구 선거 후보를 대상으로, 1표는 비례대표 선출을 위해 정당을 대상으로 행사된다. 정당투표를 통해 산출된 정당득표율을 지역구 선거와 무관하게 비례 의석에만 적용해 이때의 선거 방식을 ‘병립형’이라고 불렀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2019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다. 기본적으로 연동형 비례제는 정당이 얻은 비례 득표에 전체 의석수를 연동하는 제도를 뜻한다. 국회의원 정수가 300명이라면, 10%를 득표한 정당이 30석을 갖는 식이다. 만약 이 정당이 지역구에서 27석을 얻었다면 3석을 비례대표로 줘서 30석을 맞춘다. 지역구에서 많은 의석을 얻을수록 비례대표 의석은 얻기 어려운 방식이다. 때문에 1등이 당선되는 지역구 선거에서 당선자를 내기 어려운 소수 정당의 의회 진출이 용이한 반면, 지역구 당선자가 많은 거대 정당에는 불리한 제도로 평가된다.

준연동형 비례제는 이 방식의 변형이다. 비례대표 의석에서 손해를 보기 싫은 거대 양당이 꼼수를 부렸다는 평가가 많다. 정당 득표율과 지역구 선거 결과를 연동하되, 연동률을 조정한다. 21대 총선(2020년)에선 연동률 50%를 적용했다. 의석도 제한했다. 비례대표 총 47석 중 30석만 준연동형을 적용해 정당 득표 비율과 지역구 선거에서 확보한 의석수를 함께 고려하도록 했고, 나머지 17석은 이전처럼 병립형으로 나눴다.

거대 양당은 여기에 또다른 꼼수를 더했다.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들자 더불어민주당도 더불어시민당을 만들며 맞불을 놨다. 이들 정당은 아예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았다. 양당이 지역구에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한 전략이었다.

시민사회단체 소속 대표자들이 2020년 3월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위헌적 비례위성정당 해산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시민사회단체 소속 대표자들이 2020년 3월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위헌적 비례위성정당 해산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정치적 유불리’ 계산에 바쁜 양당, 이번엔 다를까

선거구제 개편 관련 여야 논의는 현재진행형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의원 정수를 늘리는 등 방안을 내놨다. 반면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장제원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은 병립형으로 회귀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다수 내놓은 바 있다.

윤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 도입 검토를 시사한 이후 국민의힘 의원들은 속내가 복잡한 모습이다. 지역구가 수도권인지, 국민의힘 전통 지지 지역인 영남에 속하는지에 따라 셈법이 다르다. 수도권 당선자 배출엔 용이하지만, 영남 의석은 민주당에 일부 내줄 수 있다. 지역구 병합에 따라 현역의 당선 여부가 갈릴 수 있어, 인구수와 도·농촌 지역 여부를 두고도 의원 간 입장차가 나타난다.

선거제도 개편에 앞서 당의 유불리를 먼저 계산하는 모습이다. 민주당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김두관 의원이 내놓은 ‘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할 경우 21대 총선과 같은 지지도에서는 정의당 등 군소정당의 비례대표 의석이 0석에 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다만 향후 선거제 개편 논의 과정에서 정치적 셈법 이외 다른 논의가 등장할 가능성은 있다. 민주당 정개특위 간사인 김 의원은 지난 19일 전문가 공청회 후 기자들과 만나 “비례성, 대표성, 다당제, 지역균형 중 우선순위 논의가 있었다”고 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주 1회 이상 회의를 열고 관련 논의를 진행해, 선거제 개편 시한인 오는 4월10일까지 개편안을 도출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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