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임금’이라는데···적폐몰이 수단된 ‘타워크레인 월례비’읽음

류인하 기자

월례비 반환 소송, 건설사 패소 판결

입찰 때부터 포함된 항목 ‘임금 성격’

원희룡, ‘노조 강요로 지급’ 주장 고수

건설노조 겨냥 ‘합동수사단’도 출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21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건설현장 불편부당행위 근절 대책 발표 브리핑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21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건설현장 불편부당행위 근절 대책 발표 브리핑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1일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을 발표하면서 ‘타워크레인 월례비는 임금성격이 있다’고 본 법원의 판단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법원의 판단대로) 월례비가 건설현장에서 관행적으로 지급돼 임금과 유사한 성격을 갖게 됐다고 하더라도 노조의 강요 또는 협박 때문에 지급된 돈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임금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건설사 하청업자와 타워크레인 조종사 간에는 갑(甲)-을(乙) 관계가 있다는 법원의 판단에 대해서도 원희룡 장관의 국토부는 여전히 노조가 ‘갑’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건설노조를 겨냥한 ‘정부합동수사단’을 출범했다.

22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광주고법은 지난 16일 종합건설사의 철근·콘크리트 하도급업무를 수행하는 A건설사가 “받아간 월례비를 내놓으라”며 타워크레인 조종사 16명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동일하게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원희룡 국토부에서 일관되게 ‘불법’이라고 지목한 타워크레인 월례비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임금의 성격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에 증거로 제출된 자료 및 증언에 따르면 이들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시간 외 근무수당(OT비) 및 월례비 명목으로 월 약 300만원을 받아왔다. 이들의 월례비는 당초 공사입찰 참여시점부터 입찰액에 포함된 항목이었다. 원청사가 입찰참가업체에 교부한 시방서에는 ‘해당 지역의 T/C설치 운영에 따른 월례비, OT비용’이 명시돼 있다. 즉 하청공사가 입찰가를 써낼 때 처음부터 월례비 지급예정액을 포함해 써내도록 했다는 얘기다.

월례비는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업무 외 작업을 하는 수당으로도 활용됐다. 1심 증인으로 나온 조종사는 “월례비를 지급받지 않는다면 철근 선 조립 작업 자체를 할 이유가 없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실제 현장에서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월례비를 주는 관행은 ‘공기단축’을 위한 목적이 크다는 것이 건설업계의 중론이다. 월례비를 주면 공사를 빨리 진행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장소장이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안전수칙상 해서는 안 될 지시를 내리며 수고비 차원에서 지급하는 돈이 ‘월례비’라는 설명이다.

통상 건설현장에서 타설 후 거푸집 1개층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최소 4~5일에서 최대 일주일 이상의 양생기간(콘크리트가 굳는 기간)이 필요하지만 현장에서는 공기 단축을 위해 타워크레인으로 외벽 갱폼을 2일만에 해체할 것을 요구하는 등 안전작업 원칙을 어긴 대가로 ‘월례비’가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A건설현장 관리소장은 전화통화에서 “처음에는 수고비 차원에서 몇 십 만원씩 쥐어주던 게 어느새 당연히 지급해야 하는 돈처럼 바뀐 건 맞다”면서 “그런데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하루종일 일을 하는 게 아니니까 월례비를 주는 대신 조종일 외에 다른 일을 시키기도 하고, 좀 무리한 부탁을 하는 등 서로 윈윈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러나 ‘타워크레인 월례비’지급 관행을 건설노조를 적폐로 모는 수단으로 활용 중이다. 건설현장 내 모든 병폐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월례비 관행이 생긴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조종사 1인당 최대 몇 억을 받아갔는지 등을 알리는 데 열을 올리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건설노조는 “타워크레인 월례비 근절은 우리가 먼저 요구했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타워크레인분과위원회는 지난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금품수수행위 전면근절을 결정하고, 공문을 보내 현장의 협조를 구했지만 개별 현장에서 이뤄지는 관행을 뿌리뽑지 못했다. 즉 ‘타워크레인 월례비’에 대한 건설노조와 정부 간의 입장에는 차이가 없는 셈이다. 결국 건설사가 공기를 앞당기기 위해 행하는 각종 위법, 탈법행위부터 근절해야 타워크레인 월례비 지급 관행 등도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건설노조는 “월례비는 원청이 해야 할 사용자로서의 관리책임을 회피하는 가운데 현장에서 발생한 관행”이라며 “월례비를 불법행위로 엄정하게 처벌한다고 쉽게 사라질 일이 아니라 안전작업을 현실화하는 것이 월례비 관행을 뿌리뽑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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