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개혁 연속 기고 (1)

하상응 교수 “국민들 비례대표 의석 비율 늘리기를 원했다”

하상응 서강대학교 교수(경실련 정치개혁위원장)

경향신문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선거제도개혁운동본부 전문가들의 기고를 5회에 걸쳐 릴레이 게재한다. 선거제 개혁 방향, 지역구 의원 선출 방식과 규모, 비례대표 의원 선출 방식과 규모, 의원 정수 확대 논쟁, 후보 공천 방식 등 핵심 쟁점을 다룬다.

하상응 서강대학교 교수. 경실련 제공

하상응 서강대학교 교수. 경실련 제공

국민 500명 선거제 개편 공론조사
비례 의석 비율 높여야 27%→70%

지난 5월 6일과 5월 13일에 일반 국민 500여 명이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을 주제로 한 공론조사에 참여하였다. 선거제도 개편이라는 중요한 제도적 변화에 앞서 일반 유권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역사상 처음으로 마련된 것이다. 지난 2019년에 비례성 강화를 명분으로 채택한 준연동형 제도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은 채 시행되어 실패했다는 반성의 산물이다. 응답자들이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되는 대부분의 여론조사와 달리, 숙의형 공론조사에서는 학습과 토의를 통해 현안에 대한 인지도를 높인 후 시민들의 의견을 확인한다. 다시 말해 일반 유권자의 ‘질 좋은’ 의견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공론조사의 이점이다.

선거제도 공론조사에 참여한 일반 유권자들은 숙의를 시작하기 전 간단한 설문조사에 응한 후 연구진이 마련한 자료집과 동영상을 통해 선거제도의 이모저모에 대해 학습을 하였다. 그리고 5월 6일과 5월 13일 이틀 간 현장에서 전문가의 발제와 토론을 듣고 질문 시간을 가졌다. 이후 분임을 나누어 소규모 토의를 진행한 후 전문가와의 질의응답 시간을 재차 진행하여 다양한 선거제도의 장단점을 숙지하였다. 해결되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기 위해 온라인 게시판도 운영하여 시민들의 학습을 돕기도 하였다. 5월 13일 일정을 마치기 직전에 진행된 설문조사에 기반하여 숙의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선거제도 공론화 500인 회의 여론조사 결과. KBS 유튜브 갈무리.

선거제도 공론화 500인 회의 여론조사 결과. KBS 유튜브 갈무리.

결과는 놀라왔다. 숙의 후 선거제도에 대한 시민참여단의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 구체적으로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숙의 전 77%에서 숙의 후 84%로 늘었고, 지역구 선거를 소선구제로 치러야 한다는 의견은 43%에서 56%로 늘었으며, 비례대표 의석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27%에서 70%로 대폭 늘어났고, 국회의원 숫자를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13%에서 33%로 늘었다. 시민참여단의 숙의 전후 의견 변화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지역구는 소선거구제로 운영하되 그 비율을 줄여서라도 비례대표 의석은 확대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는 것도 용인할 수 있다. 특히 기존의 여론조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었던,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자는 목소리와 비례대표제에 대한 불신이 누그러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역구 소선거제로 운영하되 비율 낮추더라도
비례대표 의석 확대에 의원수 늘리는 것도 용인

이번 공론조사 결과는 기존의 여론조사와는 다른 결과를 낳았다. 도대체 어떤 결과를 신뢰해야 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공론조사 결과가 일반 여론조사 결과보다 신뢰할만 하다. 선거제도는 일반 유권자들이 이해하기에 지나칠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중대선거구제, 도농복합형 선거구제, 폐쇄형-개방형 명부제, 병립형-연동형 제도, 초과의석-보정의석 등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면서 전화 혹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설문조사에 응하는 유권자의 수는 극히 적을 것이다. 단편적이고 편협한 정보만을 활용해 설문조사에 응답할 가능성이 크다. 국회의원의 탈법-불법 행위 보도를 보고 국회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고 답할 것이고, 도농복합 선거제도가 지역 대표성을 높일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농산어촌 중심으로 지지 의견이 나올 것이며, 순전히 어감이 좋아서 폐쇄형 명부제 보다는 개방형 명부제를 선호한다고 응답하는 유권자도 있을 것이다. 제도의 내용을 알지 못하고 대답한 내용을 신뢰할만한 여론이라고 보긴 어렵다.

일각에서 이번 공론조사에 참여한 500여 명이 일반 국민을 대표하는지에 의구심을 표한다. 일면 타당한 주장이다. 시민참여단은 조사회사의 요청을 받고 자발적으로 참가 의사를 밝힌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 유권자의 평균적인 특징과는 다를 수 있다. 시민참여단은 일반 유권자보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더 많고, 두 번의 토요일을 온전히 숙의에 집중할 시간적 여유를 갖은 사람들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연령, 지역, 성별 기준으로 할당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문제는 분명히 있다. 그런데 일반 여론조사는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로운가? 잘 알려진 기존 여론조사의 문제점은 지나칠 정도로 낮은 접촉률과 응답률이다. 전화 혹은 온라인으로 정치 관련 설문조사에 참여 요청을 하면, 정치에 대한 관심이 없거나 시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응답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즉, 공론조사와 마찬가지로 일반 여론조사에서도 정치를 잘 알고 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의견이 과대대표될 가능성이 있다.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 공론조사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수행된, 의미 있는 시도였다. 숙의를 통해 국민의 여론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시민 교육과 정치 교육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공론조사의 결과는 심도 깊은 토론을 통해 산출되었기 때문에 제도 개편 과정에 민주적 정당성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론조사에 대한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은 놀라울 정도로 낮다. 아마도 국회의원들이 여전히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향으로 선거제도 개편을 구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학습과 숙의를 거친 양질의 여론에 애써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왜 공론조사를 했는지 되묻고 싶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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