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단식 24일째인 지난 23일 단식을 중단했다. 단식 명분으로 내걸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나 국정기조 전환 등 얻어낸 것은 없다는 평가가 많다. 체포동의안 표결 전날 부결을 호소하며 스스로에겐 ‘방탄 단식’이란 오명과 민주당 내부에는 극심한 내홍이란 상흔을 남겼다. 정부·여당은 국정 파트너인 제1야당 대표의 단식을 조롱하는 하류 정치의 모습을 보였다. 이 대표 단식을 계기로 한국 정치는 실종된 타협, 유례없는 극단의 대결만 남은 민낯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민주당에 따르면 이 대표는 단식투쟁 24일 차인 전날 단식을 중단했다. 강선우 대변인은 “단식을 중단하고 본격적인 회복 치료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강 대변인은 “의료진은 이 대표에게 즉각적인 단식 중단을 강력히 권고했다. 더 이상의 단식은 환자 건강을 심각히 위해 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의료진 소견”이라며 “(단식 중단은) 의료진 결정이지 대표의 의사결정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오는 26일로 예정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 대비에 돌입했다. 이 대표가 직접 출석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이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이날 이 대표 법원 출석 여부에 대해 “그건 알 수가 없다. 변호인하고 의료진하고 최종적으로 검토해서 판단할 것”이라며 “나갈 수 있는 건강 상태가 돼야 하는 게 우선이고, 그거에 기초해서 변호인들이 최종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무능폭력정권을 향해 ‘국민항쟁’을 시작하겠다”며 국회 본청 앞에서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그는 정부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대응,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 등을 비판하며 “사즉생의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그는 “윤석열 정권은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면서 민생파괴·민주주의 훼손에 대해 대통령 사과, 일본 핵 오염수 방류에 대한 정부의 반대 천명과 국제해양재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쇄신과 개각 등을 요구했다.
이 대표는 지난 11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국회 본청 앞 천막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밤에는 국회 당 대표실에 머물렀다. 지난 12일부터는 단식 장소를 당대표실로 옮겼고, 단식 19일째인 지난 18일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후부터는 병원에서 수액을 맞으며 ‘링거 단식’을 이어갔다.
이 대표의 24일 간 단식은 한국 정치사 야당 대표 단식 중 최장기로 기록됐다. 전두환 독재정권에 항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23일간 단식 기록을 경신했다. 당내 일각에선 이 대표가 단식을 통해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검찰과 여권이 “과도하다”는 여론을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친명계 의원은 이날 “(이 대표에 대한 수사를) 국민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처럼 검찰권이 정적을 제거하는 거로 그렇게 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시적인 성과물이 거의 없다는 평가가 많다. 오히려 단식의 목적이 자신의 사법리스크 방어용이란 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많다.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 표결 전날 “명백히 불법부당한 이번 체포동의안의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며 부결을 호소했다. 지난 6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선언한 불체포특권 포기를 번복한 것이자 ‘방탄 단식’을 자인한 것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이틀 만에 의료진 권고를 이유로 단식을 중단한 후 영장실질심사 대비 모드로 전환했다. 한 비명계 인사는 이날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발언이 흔들리고, 검찰의 영장청구 시간이 다가오니 단식을 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며 “부결해달라는 글, 단식 중단 시점까지 모두 이 대표 스스로 ‘방탄 단식’임을 인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체포동의안 가결로 당 내부엔 흉터를 피할 수 없는 상처가 남았다.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 가결 다음날인 22일 “국민을 믿고 굽힘 없이 정진하겠다”고 밝혔다. 대표직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 대표 측 인사들은 비명계 의원들을 겨냥해 가결은 해당 행위라며 이름을 드러내라고 압박했다. 당 관계자는 “투표 결과로 색출을 시도하고, 무기명 투표 사진을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민주당에 민주가 없다’는 비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 단식 기간 중 정치권은 유례 없는 대결의 정치를 보였다. 지난 21일 본회의는 헌정 사상 처음있는 일들로 도배됐다. 검찰의 회기 중 구속영장 청구와 이에 따른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에, 민주당은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과 안동완 검사 탄핵소추안 표결로 맞섰다.
정부·여당은 제 1야당 대표 단식에 냉소와 조롱을 보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4일 “실제 단식인지 쇼인지도 의문”이라며 “관종 DNA’만 엿보인다”고 말했고, 단식 8일 차였던 지난 7일에는 기자들에게 “(이 대표가)지금 단식하고 계신가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일 이 대표 단식 천막을 찾아가 민주당 의원들이 대정부질의 도중 자신에게 ‘쓰레기’라고 소리친 것에 항의하며 해당 의원을 제명해달라고 요구했다. 대통령실과 정부에선 이 대표를 누구도 찾아가지 않았다. “누가 단식하라고 했느냐”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비아냥이 보도됐다.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극단적인 대결로 점철된 한국정치의 현 주소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