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쌍피 스토리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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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과 공공재의 사유화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서울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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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후반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상도동계 가신과 차를 마셨을 때다. 그는 “YS시절 외환위기를 막지 못한 것은 매우 유감이지만 한국경제를 망쳤다는데는 동의할 수 없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청산의 업적을 반드시 기억해 달라”면서 “이 둘은 장기적으로 보면 한국사회와 한국경제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금융체계를 투명하게 바꿔 놓은 금융실명제를 단행한 것이야 인정하지만, 하나회 청산이 그렇게 평가 받을 일인 지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우뚱했다.

이같은 의문은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서 풀렸다. 김성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12.12 군사 쿠데타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141분의 러닝타임을 지나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면 저도 몰래 이런 말이 나올 지 모른다. “하나회 청산, 정말 잘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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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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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26일 밤 국무위원들과 군 지휘 책임자들이 육군본부에 긴급 소집된다. 최한규 국무총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를 공식발표한다. 잠시후 제주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된다. 계엄법에 따라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으로, 국군보안사령관 전두광 소장이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된다. 대통령 시해에 연루되며 대통령경호실과 중앙정보부가 동시에 무력화된 상황. 모든 정보가 보안사에 집중되고 전두광 소장은 온갖 월권을 자행한다.

전두광 소장은 믿는 구석이 있다. 육사출신 사조직 하나회다. 이미 군부의 곳곳에 위치한 이들은 주요 보직으로 진출을 꾀한다. 정상호 총장은 전두광 소장을 동해경비사령부로 좌천시키려 하지만 그의 계획은 곧바로 새나간다. 자칫 옷을 벗게될 위기에 처한 전두광 소장은 상관인 정상호 총장에게 누명씌워 체포하기로 한다. 대통령 재가 없이 계엄사령관을 체포하는 것은 명백한 군사반란. 하지만 전두광은 말한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어쩌면 같이 옷을 벗게될지도 모를 하나회 멤버들은 전두광과 함께 ‘거사’를 하기로 한다. 시점은 새 내각이 출범하기 전인 12월12일이다.

영화 <서울의 봄>의 배경은 1979년 10월26일부터 12월12일까지다. 그중에서도 12일 저녁부터 13일 새벽까지 9시간을 집중 비춘다. 팩션의 탈을 쓰고 있지만 영화적 상상력은 매우 제한적이다.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수준으로 실제 사건들을 재현했다는 평을 받는다. 예컨대 12일 저녁 수도경비사령관, 육군특수전사령관, 육군 헌병감의 발을 묶이 위해 연희동 요정에 모았던 작전명 ‘생일잔치’도 팩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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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쉽게 정상호 총장을 연행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반란군들은 그러나 대통령의 재가 거부와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친다. “탱크를 몰고 밀고 들어가 니들 대가리를 뭉개버리겠다”고 분노하는 이태신 수경사령관에 접한 전두광은 결단을 내린다. 전방 2개 연대와 2공수여단을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북한의 남침을 우려하는 하나회 장군들에게 전두광은 자신한다.

“김일성이 때려죽여도 오늘 밤 안 내려옵니다. 오늘 밤은 여기가 최전방이야.”

경제학으로 볼때 전방의 군부대는 공공재로 분류된다. 공공재란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상품 혹은 서비스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나 서비스는 대가를 지불해야 사용할 수 있지만, 공공재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다. 통상 누군가가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면 다른 사람은 사용할 수 없지만 공공재는 이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 즉 공공재는 소비의 배제성이 없고 경합성도 없다.

공공재는 또 시장가격이 존재하지 않고, 수익자 부담 원칙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같은 성질을 가진 공공재로는 국방, 경찰, 소방, 공원, 도로 등이 있다. 공공재는 특정인이 아닌 정치기구에 의해 규모와 활용방안이 결정된다.

전방 2개 연대와 2공수 여단은 대한민국의 국방을 책임지는 공공재다. 전방부대를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은 대한민국 정부에 있다. 군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육군참모총장의 재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반란세력은 권력을 잡기 위해 전방부대를 사적으로 움직였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지 모르는 장병들은 신군부의 사유재로 전락했다. 이른바 ‘공공재의 사유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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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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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재의 사유화의 대표적 사례는 민영화다. 국방, 경찰, 소방, 공원, 도로를 특정인이나 특정기업에 매각해 소유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는 치안과 안보, 소방, 공원과 도로 이용을 위해 비용을 치러야 한다. 공공재를 소유하게 된 특정인은 엄청난 불로소득을 얻게 된다. 많은 이권이 붙을 수록 검은거래가 이뤄지기 쉽다. 검은 거래에는 뒷돈이 오가고 그 돈은 비자금이 된다. 쿠데타의 속성이 딱 이렇다. 전두광은 자신과 행동을 같이한 하나회 장성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저 안에 있는 인간들,떡고물이라도 떨어질까봐 그거 묵을라고 있는 기거든. 그 떡고물 주딩이에 이빠이 처넣어줄끼야.”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정보기관, 감찰기관 심지어 예술문화계와 스포츠단체장까지 거의 모든 권력을 독점했다. 그 뒤로는 막대한 비자금도 챙겼다. 이는 5공비리로 이어졌다. 현실의 전두환은 뇌물수수 등으로 쌓은 재산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2200억원의 추징금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29만원 밖에 없다’고 버텼다.

최근 전두환의 손자인 전우원은 “연희동 자택에는 방한개 규모의 비밀금고가 있고 그안에는 현금이 가득했다고 어머니가 말하셨다”며 “항상 비서들이 보스턴백에 현금을 몇억씩 바꿔왔고, 비서들에게는 다 목동의 아파트 한채씩 사줬다고 했다”고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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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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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재의 사유화는 때로 사회적 고통을 야기한다. 이를 ‘사유화의 비극’이라고 한다. 신군부가 자행한 공공재의 사유화는 10·26으로 18년 장기집권이 끝나고 찾아오려던 ‘서울의 봄’을 후퇴시켰다. 그중에서도 유혈진압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사유화의 비극의 결정판이었다.

신군부는 12·12 군사반란에 대해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항변한다. 혼란스러운 시기, 강한 리더십을 원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폴 콜리어 옥스퍼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서 <전쟁, 총, 투표>에서 ”쿠데타는 정치폭력의 한 기술”이라며 “나쁜 통치를 대체하려는 방편보다 군부의 기회주의적욕심이 쿠데타를 유발한다”고 반박한다. 어떻게 포장을 하듯 쿠데타의 본질은 권력욕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쿠데타는 경제에 해를 가하는 부정적 외부효과도 있다. 쿠데타는 필시 비용을 동반한다. 폴 콜리어 교수에 따르면 쿠데타가 일어난 해 소득은 3.5% 하락하고, 쿠데타의 휴유증까지 고려하면 쿠데타 비용은 연간 7%에 이른다. 실제 1980년 한국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 1.6%로 추락했다. 제2차 오일쇼크에 따른 대외충격이 컸지만, 쿠데타에 따른 혼란한 국내 정치상황도 영향이 없었다고 보기 힘들다.

쿠데타 자체에 드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쿠데타에 의한 두려움은 더 비용을 낳을 수 있다고 콜리어 교수는 지적한다. 쿠데타 가능성이 큰 국가는 불확실성이 커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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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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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회는 5공을 거쳐 노태우 대통령이 권력을 잡은 6공때도 등등한 기세를 이어갔다. YS가 3당합당을 통해 정권을 잡으면서 하나회는 새로운 동거가 시작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93년 YS는 취임11일만에 하나회 소속 군장성들을 전격해임했다. 고려시대 무신정권 운운하며 저항하던 하나회에 YS는 이같은 말을 남겼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하나회 청산은 건국이후 두번의 군사반란을 겪은 대한민국에서 쿠데타의 싹을 잘라버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한국사회는 선거를 통해 여야를 바꾸는 제도가 정착됐고, 정치가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쿠데타 걱정없이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됐다. 하나회 청산이 경제성장에 기여했다는 YS 측근의 주장을 반박하기 어려운 이유다.

12·12에 대한 현 국방부의 생각은 어떨까?

지난 12일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국방부는 12·12 군사반란에 대한 대법원판결을 존중하고 과거와 같은 군사 반란은 절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군은 정치적 중립을 유지한 가운데 국민의 힘으로 지켜 온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며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위한 소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이태신 수경사령관이 지키고 싶어했던 ‘공공재’로서의 군의 가치,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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