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리스크’ 여권 최대 약점으로 확인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간 갈등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이틀 만인 23일 봉합 국면에 들어섰지만, 갈등 원인이 된 김건희 여사에 대한 성역화는 여권 내에서 더 강화되는 모습이다. 이번 사태로 김 여사에 대한 비판이 윤 대통령 역린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되면서, 국민의힘에선 김 여사 관련 언급을 피하려는 분위기다. 하지만 야당의 관련 공세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돼 총선에서 ‘김건희 리스크’의 파급력은 더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처음 김건희 리스크가 불거진 계기는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관련 특검법안을 들고나오고 국민 다수가 법안에 찬성하자, 국민의힘 안에선 이를 수용해야 하느냐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야권이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을 통과시킨 지 8일 만인 지난 5일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민주당의 총선용 악법”이란 당 공식 입장에 반하는 특검법안 수용 주장은 여당 내에서 사라졌다.
이후 주가조작 의혹이 차지하던 자리를 대체한 사안이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이다. 국민의힘 안에선 이 사건이 “명백한 몰카(불법촬영) 공작”이라는 데 무게를 둔 주장과 그럼에도 “국민 눈높이”를 고려해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특히 당선이 상대적으로 쉬운 영남보다 수도권에서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인사들 중에 사과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후배”라는 한 위원장을 내치려 할 만큼 김 여사에 관한 언급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김 여사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마저 국민의힘에서 작아지는 분위기다. 한 위원장이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해 한 말은 “국민들께서 걱정하실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김 여사가 주변에 ‘사과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진 점도 여당 의원들의 침묵을 깊어지게 만들었다. 당 주류가 아닌 인사들조차 이날은 “이 시점에서는 더 이상 사과가 무의미하다”(이용호 의원)며 발을 뺐다. 당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김건희는 절대 못 건든다’는 걸 보여줬다”며 “역대급 성역”이라고 해석했다.
윤 대통령과 여당이 의도했는지 여부와 상관 없이, 자연스레 국민의힘 내 논의 초점은 특검법 수용→명품 가방 수수 사과→윤 대통령·한 위원장 갈등 수습으로 축소됐다. 이 때문에 여당 내에서도 명품 가방 수수 사과 논란은 주가조작 특검 이슈를 덮으려는 작전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명품 가방 문제는 도이치모터스 문제를 희석하기 위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다만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어정쩡하게 화해하는 모습이 4월 총선에선 도리어 악재로 작용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김건희 리스크가 여권의 가장 큰 약점이란 사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국민의힘 의원은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의 아바타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인식시키는 계기로 삼았어야 했는데, (윤석열 정부에서) 김 여사가 제일 세다는 점만 입증시켰다”며 “이제 한 위원장도 여당도 김 여사 얘기는 꺼낼 수가 없게 됐다. 그럴수록 야당의 김 여사 공세는 강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