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의장’의 수난…강진군의회에 무슨 일이

이효상 기자

예산 삭감 갈등…법적 근거 없이 감사받기도

김보미 강진군의회 의장이 지난 3월 임시회 폐회를 선언하고 있다. 강진군의회 제공

김보미 강진군의회 의장이 지난 3월 임시회 폐회를 선언하고 있다. 강진군의회 제공

[주간경향] 요즘 전라남도 강진군의회에서는 믿지 못할 일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다. 표면으로 드러난 건 지난해 연말부터다. 군의원들이 자신들의 의정 활동을 지원하는 의회사무과 예산을 반 토막 냈다. 이어 같은 당 소속인 의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갈등이 계속되는 와중에 전라남도 감사관실이 이 의장의 관용차량을 영장 없이 수색하기도 했다. 최근 이 의회는 의회사무과 예산을 보충하기 위해 제출된 추경안도 99% 삭감해 850만원만 남겼다. 이 기초의회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

일련의 기묘한 일들이 표적 삼은 건 단연 김보미 강진군의회 의장(34)이다. 제8회 지방선거에서 재선 의원이 된 그는 2022년 7월 ‘전국 최연소 기초의회 의장’이자 ‘강진군의회 최초 여성 의장’이 됐다.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의장에 선출되면서 당당하게 출발했지만,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경찰 수사를 받고 초법적인 차량 수색까지 당했다.

“차 번호만 봐도 누가 타고 있는지 안다”는 인구 3만2000명의 작은 고을 강진군에서 벌어진 일은 기초의회 정치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기초의회의 역할, 세대 갈등, 특정 당의 장기 독점 구조 등이 그것이다.

관행과의 충돌? 개인 감정 싸움?

최근 강진군의회는 예산 부족에 신음하고 있다. 올해 예산은 5월 20일 기준으로 의회 본회의장 등을 운영할 사무관리비가 500만원, 직원들의 출장비 등에 사용되는 여비가 450만원가량 남아 있다. 추경이 또 편성되지 않는다면 1000만원이 안 되는 운영경비로 올해 연말까지 버텨야 한다. 100만원은 줘야 하는 복합기 토너는 고사하고, A4 용지 살 돈도 없다. 한 직원은 “경리 직원이 매일매일 뭐가 없다면서 소스라치게 놀라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이미 예견됐던 문제다. 지난해 연말 군의원들은 9억7000만원으로 제출된 의회 예산안에서 절반 이상을 깎고 4억7800만원만 남겼다. 2023년 예산이 9억5500만원이었으니 당초 예산안이 방만하게 짜였다고 볼 수도 없다. 군의원들이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예산안 심의에 최선을 다한 게 아닐까. 그렇다기엔 집행부인 강진군청의 예산은 0.5%만 삭감됐다. 결과적으로 강진군의원들은 자신들이 견제해야 할 군청의 예산보다 자신들의 업무를 지원하는 의회사무과 예산을 훨씬 더 큰 폭으로 삭감한 것이다.

군의원들의 제 살을 깎는 피나는 노력으로 여기기도 어려워 보인다. 의회사무과 예산에는 의회를 운영하는 행정경비 이외에 의원들에게 지급되는 의정활동비, 의장·부의장·상임위원장에게 지급되는 업무추진비 등이 포함돼 있다. 의원들에게 지급되는 이 예산은 전년 예산과 같거나 증액됐다.

강진군의 군의원은 모두 8명이다. 7명이 더불어민주당 소속, 1명은 무소속이다. 세대별로는 30대가 2명, 40대가 1명, 50대가 2명, 60대가 3명이다. 지난 4월 의회사무과는 5억8400만원의 예산 증액을 요청했지만, 군의회는 850만원만 남기는 추경안을 통과시켰다. 김보미 의장과 노두섭 의원(38)만 반대했고, 나머지 6명의 의원은 모두 찬성했다.

6 대 2. 이 구도가 고착되다 보니 지역지에서는 30대 의원들을 ‘A팀’, 나머지 의원들을 ‘B팀’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누군가는 이 갈등을 ‘의회 주도권을 두고 벌어진 진흙탕 싸움’, ‘주류·비주류 간의 이전투구’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갈등에는 청년 정치가 당면한 현실이 반영돼 있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지난 5월 21일 전화로 만난 김보미 의장은 오는 6월 말 마무리되는 전반기 군의회를 돌아보며 소설 <데미안>의 문구를 인용했다. 그간의 갈등이 기존의 관행을 깨는 과정이었다는 얘기다. 김 의장은 스물여덟 살이던 2018년 7회 지방선거에서 비례대표로 강진군의원이 됐다. 당시 불었던 청년·여성 정치 바람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초선 때는 경험 부족으로 고생했기에 재선에 성공하고는 초선 때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했다 한다. 의장이 된 직후엔 군의회에 작금의 분열이 없었다. 강진 출신 전라남도의원 3명과 강진군의원들 모두가 참여하는 공부모임을 운영했다. 강사를 초빙해 강의를 듣기도 하고, 행정사무 감사를 앞두고는 군의원들과 의장실에 모여 질문지를 나누면서 회의를 하기도 했다.

갈등의 도화선이 된 건 2022년 연말 예산 심의 과정이다. 강진만에 있는 섬 가우도의 경관·조명 사업에 3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했다. 관광 진흥을 위한 투자였지만 문제는 국비나 도비 지원 없이 100% 군비로 예산이 편성됐다는 점이다. 강진군은 재정자립도가 7.6%에 불과해 군비가 넉넉지 않다. 김 의장과 노 의원은 유사 사업에 국비나 도비를 지원받은 전례를 들어 “한 번 더 검토해보고, 필요하면 추경을 하자”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이 사업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는 C의원의 입장은 상상 이상으로 완강했다.

갈등이 본격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해 연말 강진군의회는 강진군청이 제출한 2023년 예산안 4790억원 중 108억원을 삭감했다. 역대 최대 규모 삭감폭이었다. 당시 강진군의회는 사업 효과가 미흡한 1회성 행사나 기존 사업, 선심성·소모성 경비, 중복 예산을 삭감했다고 설명했다. 자치행정을 감시·통제한다는 점에서 기초의회의 본분을 다한 것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암묵적인 협조 관행을 깨는 전례 없는 일로 비쳤던 것 같다. 강진군의원 6명은 올해 1월 김보미 의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하며 크게 4가지 사유를 댔는데, 첫째·둘째 사유가 이때의 예산 심사와 관련 있는 내용이다. 김 의장이 당시 군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의사권을 방해했고, 김 의장이 집행부 본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삭감하고 개인 치적으로 홍보했다는 것이다. 이 불신임안은 6명 중 5명의 의원이 상정 직전 철회해 부결됐다.

원칙과 기존 관행의 충돌로만 볼 수 없는 지점이 있다. 두 개 이상의 정당이 있고 유권자의 선택을 두고 의정활동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면, 의원들이 집행부의 예산을 삭감한 것에 대놓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을까. 최소한 이를 의장 불신임 사유로는 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강진군의회는 역대로 봐도 민주당 계열 정당이 사실상 독점하는 구조였다. 가끔 나오는 무소속 의원들도 민주당 탈·복당을 반복한 인사들이었다. 의회 내부의 견제와 균형이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일단 불이 붙은 갈등은 최소한의 체면치레도 없이 전개됐다. 지난해 초에는 군의회 차원에서 유튜브 홍보 사업을 새로이 시작하려 했다. 기존의 상업 광고에 군의원들의 얼굴을 붙인 콘티 영상을 만들어 ‘이런 방식으로 촬영하겠다’라며 군의원들에게 배포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 영상 제작은 불발됐다. 이른바 B팀 소속 군의원들이 “다선 의원부터 나와야 한다”, “특정 의원 얼굴은 크게 쓰고, 내 얼굴은 작게 썼다”며 반발했다는 것이다. 이 역시 2022년 연말 예산 심의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시선이 있다. 당시 군의회는 군청의 군정 홍보 이미지 영상 제작 사업 예산 1억5000만원을 삭감했다. 강진군의 각종 행사에서도 군의회의 분열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행사마다 군수의 축사 이후 군의회 의장 축사가 이어지는데, 김 의장이 축사를 시작하면 B팀 의원들 전원이 행사장을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지역에서는 이 갈등을 사실상 군청과 군의회의 갈등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일부 군의원들이 각종 사업의 집행 권한을 가진 단체장의 편에 서서 군정을 견제하는 군의회 의장과 대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진원 강진군수는 “저와는 전혀 관련 없는 군의원 개인들의 감정싸움이다. 오랜 기간 군의회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라고 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갈등과 반목, 피해자는 누구?

또 다른 전선도 있었다. 김보미 의장과 강진의 청년 당원들은 불신임안이 제출된 이후인 지난 1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승남 의원(재선·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해 “청년 정치탄압을 중단하라”는 기자회견을 했다. 김 의장은 2023년 9월 추석을 앞두고 김승남 의원의 전통시장 방문 행사에 동행하지 않은 것이 갈등의 발단이었다고 주장한다. 이후 김승남 의원은 국회의장이 김보미 의장에게 수여한 공로장을 전달하지 않는 등 김 의장을 배척했다는 것이다. 군의원들의 의장 불신임안 제출도 이 갈등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현역 국회의원인 지역위원장의 이른바 줄 세우기가 있었다는 얘기다.

김승남 의원은 전면 부인했다. 김 의원은 지난 5월 22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불신임안 상정은 나도 모르게 진행된 일이었고, 알게 된 이후에는 군의원들을 소집해 철회하라고 설득했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렸다. 행사 불참으로 불이익을 준 바 없다. 국회의장 공로장은 갈등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전달하기 어려워 갈등이 해소될 때까지 보류했을 뿐”이라고 했다. 김승남 의원은 이 갈등이 22대 총선을 앞두고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본다. 그는 지난 3월 당내 경선에서 패해 총선에 출마하지 못했다.

김 의장은 경찰 수사와 법적 근거도 없는 감사를 받았다. 지난해 경찰은 김 의장이 의회 홍보비를 과도하게 지출하고, 군내 행사에서 참석자들에게 파프리카 상자를 나눠줬다는 첩보가 있다며 김 의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했다. 경찰은 6개월 만에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다. 지난 2월에는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전라남도 감사관실이 택배를 수령하고 있는 김보미 의장의 관용차량을 수색하면서 차량에 있는 김 의장의 소지품까지 뒤졌다. 기초의회 의원은 행정부 소속 감사기구의 암행감찰 대상이 아니다. 지방의회 감사는 원칙적으로 상호 협의로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전남도청 감사관실 관계자는 “의장이 아니라 관용차량 기사를 상대로 암행감찰을 벌인 것”이라고 해명했다.

연속된 사건들을 보면 단순한 갈등으로 치부할 수 없다. 젊은 정치인이 겪은 수난에 가깝다. 이른바 B팀에 속한 D의원은 “의원들끼리 만나야 하는데 만나는 자리가 없어졌다. 경륜, 경험은 돈 주고도 못 산다고 하지 않나. 의장이 의장이니까 다 안고 가는 포용력, 리더십이 필요한데 미숙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역시 B팀에 속한 E의원은 “뭐가 (갈등의) 발단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의견 차이가 있으면 토론해서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데 그것이 뜻대로 안 되니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은 느낀다”고 했다. 일부 의원은 여러 차례 연락에도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김 의장은 “의회사무과 직원들의 연차·휴가 사용도 1주일에 한 번씩 주간업무보고 형태로 공지하고 있다. 저 혼자 몰래 하는 것 없이 모든 걸 공개한다. 의장으로서의 책임은 통감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30대 정치인인 노두섭 의원은 “(B팀의 군의원들에게) 전화도 하고 행사장에서 말도 걸고, 나름대로 소통하려고 애를 썼지만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없었다. 지난해만 5차례 주민들, 주로 청년들과 간담회를 했다. 청년 소상공인, 청년 건설업자, 육아하는 청년들, 청년 농업인들과 각각 간담회를 진행했는데 오셔서 같이 들어주십사 이야기했지만 결국 오지 않았다”고 했다.

반목과 분열로 피해를 보는 건 이들 정치인만이 아니다. 강진군에서 나고 자란 자영업자 김호석씨(37)는 지난해 노 의원이 주최한 청년 소상공인 간담회에 참여해 몇 가지 의견을 제안했다. 그는 “의견수렴을 했으면 피드백이 있어야 하는데 왜 이뤄지지 않는지 물었다가 의회의 갈등 상황을 알게 됐다. 청년들은 갈수록 떠나고 지역소멸을 걱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뜻이 돼도 모자란데 엉뚱한 데 힘을 쓰고 있다. 다음 선거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강진을 사랑하는 청년모임 대표이기도 한 그는 군의원들이 의장 불신임안을 제출하자 ‘청년 정치 탄압을 중단하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엉망이 된 기초의회를 두고 폐지론도 나온다. 한 지역언론인은 “기초의회는 없어져야 한다. 예산 심의도 형식적이고, 집행부 뜻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의원들이 전문성도 없으면서 배우려는 노력도 안 한다. 인건비가 아깝다”고 했다.

정반대 입장도 있다. 강진군의회는 2022년 10월 7세 이하 아이를 둔 가정에 매달 60만원의 육아수당을 지원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아이를 키우는 노 의원이 군의원이 돼 처음으로 대표발의한 조례안이었다. 2022년 93명이던 강진군의 출생아 수는 2023년 154명으로 60% 이상 증가했다. 한 지역 공무원은 “그때 정치 효능감을 느꼈다. 여의도는 법안이 통과되기까지도 오래 걸리고 큰 정치를 하지 않나. 기초의회는 작은 정치라도 군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빠르게 실행할 수 있다. 갈 길이 멀지만, 인구 유출을 막고 정주민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기초의회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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