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산증인’ 조영건 교수, 향년 84세로 타계

이유진 기자
조영건 경남대 명예교수가 2019년 4월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조영건 경남대 명예교수가 2019년 4월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통일·노동·민주화운동에 헌신해온 조영건 경남대 명예교수가 지난 9일 타계했다. 향년 84세.

조 명예교수는 1940년 경남 영산현(현재 창년군)에서 태어났다. 경남중·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1971년 건국대 시간강사로 교단에 섰고, 1975년 청주대 전임교수에 이어 1979년 3월부터 경남대 교수로 있었다. 경남대 경제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1982년 노동복지연구소를 설립했고, 1988년에는 사월혁명회의 전신인 사월혁명연구소를 김진균 교수 등과 설립해 소장을 지냈다.

조 교수는 4·19학생혁명의 산증인으로 불렸다. 1960년 3·15 마산 의거, 4·11민주항쟁에 영향을 받아 일어났던 4·19혁명 당시, 대학교 3학년생이던 그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무대(현 청와대) 앞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진 중학생을 옮기는 데 함께했다. 이 장면을 찍은 사진은 전세계로 타전돼 민주학생혁명의 상징으로 주목 받았다.

조 교수는 진보정치 활동과 노동운동에도 헌신했다. 1997년 권영길 전 의원 등과 함께 진보정당 창당 10인 준비위원에 참여했고, 2006년 대학 정년퇴직 뒤 진보정치연구원 이사장을 맡았다.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공동대표, 6·15공동선언 학술위원회 상임공동위원장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2006년 대학에서 정년퇴직한 후 진보정당의 진보정치연구원 이사장을 지냈고, 옛 통합진보당 고문에 이어 현재까지 진보당 고문으로 있었다. 구속노동자후원회 후원회장을 맡아 양심수 석방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조 교수는 2019년 4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평생 대학교수로 살아온 나는 노동자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이제 중늙은이가 되어 구속노동자후원회 일을 하며 그 빚을 갚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6~2017년 촛불집회를 회상하며 “나는 촛불민중이 보여준 청년의 힘에서 삶의 활력을 얻고 있다. 감사하고 행복하게 생각한다”라고 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2호실에 마련됐다. 추모의밤 행사는 11일 오후 7시에 장례식장에서 열린다. 발인은 12일 오전 6시 30분, 장지는 마석모란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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