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육방송공사법(EBS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하면서 ‘방송 4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방송통신위원회법 개정안)’이 모두 국회를 통과했다. 5박6일간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법안 통과를 막았던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고, 대통령실도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야당은 이날 본회의에서 여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재석 189명 전원 찬성으로 EBS 개정안을 처리했다. 방송4법은 KBS, MBC, EBS 등 공영방송 이사 수를 늘리고 이사 추천권을 언론 관련 학회, 직능단체 등 외부로 확대하는 방안과 방통위 의결 정족수를 현행 상임위원 2인에서 4인으로 늘리는 방안 등을 담고 있다.
국민의힘이 지난 25일부터 시작한 5박6일간 필리버스터도 종료됐다. 야당은 24시간이 지나면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토론을 종료할 수 있는 규정을 이용해 필리버스터를 종결하고 법안을 처리했다. 이번 필리버스터는 111시간을 훌쩍 넘기며 2016년 민주당이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며 진행한 필리버스터(192시간)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최장 기록을 세웠다.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은 13시간 이상 발언하며 역대 최장 기록(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 12시간47분)을 갈아치웠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법안 통과 후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자제를 요청했다. 우 의장은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이 야당과 대화, 타협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삼권분립된 대한민국 입법부의 오랜 토론을 통한 주요 결정 사항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에 대해 신중히 해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회 로텐더홀에서 방송 4법 강행 처리 규탄대회를 열고 “문재인 정권이 민주노총 언론노조와 한편이 돼 장악했던 공영방송을 영구적으로 민주당 손아귀에 쥐겠다는 악법 중의 악법”이라며 “국민의힘은 집권 여당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대통령께 재의요구권을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도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회적 합의 및 여야 간 합의 없는 야당 단독 결의로 인한 법안에 우려를 표한다”며 “공영방송 지배구조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상황인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앞서 윤 대통령은 21대 국회에서 방송 3법(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고 법안은 재표결에 실패해 결국 폐기됐다.
여당에서 다수의 이탈표가 나오지 않는 한 ‘야당의 법안 상정→여당의 필리버스터→야당 단독 처리→대통령 거부권 행사→재의결 실패로 폐기’라는 여야 대치 정국이 또다시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필리버스터 정국은 방송4법 이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르면 다음달 1일 다시 본회의를 열고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과 ‘전국민 25만원 지원법(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조치법)’ 등 당 주력 법안 처리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의원총회 뒤 기자들과 만나 “7월 국회에서 필리버스터가 5일간 진행됐는데 오늘까지 1차 전선이 마무리됐다”며 “국회 상황이 이대로 종료되는 것은 아니고 8월초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기간 내에 쟁점법안 처리를 다시 시도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국민의힘은 두 법안에 대해서도 필리버스터를 예고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