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격분하실는지 모르지만 (중략) 우리가 아무리 생각하더라도 과거 한 36년 동안 일본에 속박돼 가지고 있던 것은 사실 아닙니까.”
1950년 2월10일 제헌국회 본회의. 김봉조 의원은 법 해석과 관련해 ‘일제강점기 우리 국민들의 국적은 일본이고, 외국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주장이 나올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공무원법 개정안의 ‘외국 고등문관시험 합격 불인정’ 조항을 일제강점기 고등문관시험 합격자들이 “우리는 ‘외국’ 문관시험에 합격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곧장 “실언이오”라고 하는 이가 나왔고 장내가 소란해졌다. 김 의원은 “그러니까 아까 격분하시지 말고 들어 달라고 그러지 않았습니까”라며 의원들을 진정시켜야 했다. “제가 그렇게 해석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라며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훗날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성학 의원은 이어 연단에서 “지금 김봉조 의원의 발언에 대해서 지극히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일갈했다. 그는 “일본시대에 외국, 일본의 고등문관에 패스했다고 해서 ‘그때 했으니까 이건 국제법상으로 외국이 아니다’라는 말이면 그(말을 하는) 사람은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제거하자고 하는 것이 이 법안의 정신이올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 사람인지 조선 사람인지 모르는 그러한 사람들이 이 나라에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이 장차 어디로 가나”고 말했다.
74년 뒤인 현재 윤석열 정부 인사인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일제 치하 (우리나라 국민의) 국적은 일본”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격분할지 모른다”며 눈치를 봤던 김봉조 의원과 달리 김 장관은 지난달 26일 인사청문회에서 “상식적인 이야기를 해야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일제시대에 무슨 국적이 있나”라며 도리어 자신을 비판하는 야당 의원을 호통쳤다. 김 관장은 지난달 13일 CBS라디오에서 “우리 백성들은 원치 않지만 법적으로는 일본 국민이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상식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일제강점기 국적은 일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광복 직후인 1948년 제헌국회에서 국적법 제정 과정 등을 살펴보면 두 사람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논의가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상식으로나 법적으로나 일제강점기 국적이 일본이었다는 주장은 나오지도 않았고 나올 수도 없었다.
대표적으로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을 거부했던 법조인이자 우익 정치인이었던 이인 초대 법무부 장관은 1948년 12월1일 본회의에서 정부입법인 국적법을 제안설명하며 “헌법 전문을 보더라도 3·1독립정신을 계승하는 우리가 결국 ‘8월15일 이전에 국가가 없었느냐’하면 국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까닭에 이 법률상의 대한민국 국민은 오래전부터 정신적으로 법률적으로 국적을 가졌다고 봐서 이 법률을 제정했다”고 말했다.
이날 본회의에서 ‘일제 강점기 우리 국민의 국적이 일본이었다’고 주장하는 의원은 없었다. 독립운동가 출신인 백관수 당시 의원이 “8·15 이전에 왜정 36년 또는 군정 3년간 민족의 경로가 복잡하니 한인(韓人)이라고 쓰면 더 광범위하지 않을까”라는 제안 정도가 이견이었다.
이 장관은 “8월15일 이전에도 대한민국이라는 것이 여전히 있었다. 그러므로 (국적을) 대한민국이라고 하여야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조부이자 우익 정치인 조헌영 한국민주당 의원도 다음날 본회의에서 “한인이라고 표시한다면 이것은 설사 국적이 없는 사람을 표시한 것 같은 그러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이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지난달 20일 입장문에서 “‘나라는 있었다. 일제강점으로 국권행사를 못했을 뿐’이라는 논거는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 초대내각 전원의 일치된 생각이었다”며 “애국선열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