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불발된 한미·한일 정상회담…언제쯤 가능할까

글래스고|정대연 기자

한·미 간 종전선언 입장 차 여전

미, 대중국 압박에 우선순위 둬

일 ‘과거사 해법’ 기존 입장 고수

문재인 정부에선 관계 개선 ‘난망’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누볼라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기념촬영전 정상 라운지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누볼라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기념촬영전 정상 라운지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시작한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 순방을 계기로 기대됐던 미·일 정상과의 회담이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미·일 정상 모두 당장 문 대통령을 만나기에는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프란치스코 교황 면담, 주요20개국(G20)·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바티칸·이탈리아·영국을 순방했다. 청와대는 G20·COP26 정상회의에 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함께 참석하는 것을 계기로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2일 헝가리 국빈방문을 위해 영국을 떠날 때까지 한·미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G20 정상회의가 열린 이탈리아 로마 누볼라 컨벤션센터에서 선 채로 2~3분 간 대화한 것과 이튿날 바이든 대통령이 주재한 공급망 회복력 관련 정상회의 등에서 몇 차례 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다. 30일 대화에서 두 정상은 전날 각각 교황을 면담한 일을 소재로 교황 방북, 한반도 평화 등에 대해 말을 주고받았지만, 심도있는 논의는 이뤄지지는 않았다. 한·미 정상회담은 지난 5월 워싱턴에서 열린 것이 마지막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참여하는 한반도 종전선언을 재차 제안한 이후 한국과 미국은 각 급에서 종전선언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종전선언을 바라보는 양국 입장에는 차이가 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26일 브리핑에서 ‘종전선언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느냐’는 질문에 “우리(한·미)는 각각의 조치를 위한 정확한 순서, 시기, 조건에 관해 다소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을 수 있다”고 답했다.

정부는 종전선언이 신뢰 구축을 위한 정치적·상징적 조치로서 정전체제의 법적·구조적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은 종전선언이 미칠 파급효과를 우려하며 법률적 검토에 착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와대는 정상 간 대화를 통해 종전선언 추진에 힘이 실리기를 바랐다. 반면 미국은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 차가 여전한 상황이라 정상끼리 이를 논의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번 다자외교무대에서 한반도 문제보다는 대중국 견제에 우선순위를 둔 측면도 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1일 라디오에 출연해 “정상회담은 열매를 따서 국민에게 보고드리는 자리”라며 “지금은 실무적인 대화가 오가는 중이기 때문에 양국 정상이 굳이 만날 타이밍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회담했다. 교도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회담했다. 교도연합뉴스

문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 간에는 짧은 조우조차 없었다. 두 정상의 일정이 엇갈린 게 표면적인 이유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부터 2일 점심 무렵까지 영국 글래스고에서 COP26 정상회의 일정을 수행한 반면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31일 중의원 선거를 마친 뒤 2일 오전에야 글래스고에 도착했다. 문 대통령의 마지막 영국 일정이었던 국제메탄서약 출범식에서 잠시 조우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지만 기시다 총리가 출범식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일 정상의 대면 회담은 2019년 12월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중국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와 한 것이 마지막이다.

기시다 총리는 2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팜 민 찐 베트남 총리 등과 양자 회담을 했다. 바이든 대통령과는 “단시간 회담”을 했다. 애초 문 대통령과 만날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정부는 투트랙 기조에 따라 양국 간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한 대화를 강조하고 있으나 일본은 한국이 강제징용·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수용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전까지는 대화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아베 내각 외무상으로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주도한 인물로, 한국이 합의를 파기했다며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다. 문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15일 기시다 총리 취임 후 첫 전화 통화에서부터 과거사 문제 해법을 두고 논쟁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 벌어진 일본과의 관계 악화 문제에 대해 퇴임 전 해결 실마리라도 마련하고자 여러 차례 정상 간 대화를 추진해 왔다. 청와대는 지난 6월 영국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와 지난 7월 도쿄올림픽 때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했으나 일본의 소극적인 태도로 끝내 무산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화상으로 개최된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모두발언에서 기시다 총리만 콕 집어 “환영한다”고 인사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 임기가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임기 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더 어려워졌다. 문재인 정부로부터는 자신들이 원하는 과거사 해법을 얻어내기 어렵다고 보는 일본이 기존 입장을 고수한 채 차기 한국 정부와 협상을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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