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뉴스

문 대통령이 말한 “성과를 부정하고 비하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정대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58회 무역의날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58회 무역의날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는 만장일치로 우리나라의 지위를 선진국으로 변경했습니다. 유엔무역개발회의 설립 후 최초 사례입니다. 우리는 일본의 수출규제부터 코로나까지 연이은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무역의 힘으로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소중한 성과마저도 오로지 부정하고 비하하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국민들의 자부심과 희망을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우리 경제에 불평등과 양극화 같은 많은 과제들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잘한 성과에는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58회 무역의날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의 축사 마지막 부분입니다. 법정기념일인 무역의날은 한국이 처음 수출 1억달러를 달성한 1964년 11월30일을 기념해 지정된 수출의날의 바뀐 이름(1990년)입니다. 2011년 12월5일 한국의 세계 9번째 무역 규모 1조달러 달성을 기념해 2012년부터 12월5일로 날짜가 바뀌었습니다.

이날 행사는 “코로나19 장기화와 글로벌 공급망 병목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 수출이 가파르게 회복되고 있는 의미 있는 시점에 개최”(청와대 보도자료)됐습니다. 올해 무역과 수출 규모는 각각 1조2000억달러, 6300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모두 역대 최대치입니다. 문 대통령은 헥산(DNA·RNA) 추출시약을 통해 코로나19 검사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 제놀루션 김기옥 대표이사 등 무역유공자 10명에게 정부포상을, 삼성전자 등 10개 수출기업에 수출의탑을 직접 수여했습니다.

이런 기쁜 날, ‘부정’ ‘비하’ ‘희망을 무너뜨리는’ 같은 부정적 표현이 들어간 문 대통령의 발언은 낯설게 다가옵니다. 일견 국정운영 성과를 밝힐 때마다 자화자찬이라고 비판하는 야권과 일부 언론을 겨냥한 말로 들립니다. 문 대통령은 축사 해당 부분을 직접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국민과의 대화-일상으로’에 참석해 국민패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국민과의 대화-일상으로’에 참석해 국민패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보름 전에도 같은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달 21일 KBS에서 생중계한 ‘국민과의 대화’에서입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진행을 맡은 정세진 아나운서가 마지막에 ‘못다한 말이 있다면 마무리 발언을 해달라’고 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은 경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국방, 문화, 보건의료·방역, 외교·국제협력 모든 면에서 이제는 톱10의 나라가 됐습니다. G20 국가들이 세계적 과제를 논의하는데 G7만으로 부족하고 좀 넓힐 필요가 있다 해서 G10 정도 구성할 경우 가장 먼저 대상이 되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중략)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것은 자화자찬이다, 국민들 삶이 이리 어려운데 무슨 소리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비판들도 있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주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세계에서 하는 객관적인 평가입니다. 자부심을 왜 가져야 하는가 하면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자부심이 앞으로 우리가 미래에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성취는 우리 정부만이 이룬 성취가 아닙니다. 역대 모든 정부의 성취들이 모인 것이고, 결국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 국민들이 노력해서 이룬 성취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동안 가장 성공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이야기들을 합니다. 이런 성취들을 부정하고 폄훼한다면 그것은 우리 정부에 대한 반대나 비판 차원을 넘어서서 국민들이 이룩한 성취를 폄훼하거나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문 대통령이 대선을 불과 108일 앞둔 시점에서 정치적 논란을 무릅쓰고 국민과의 대화를 한 것도 결국 이 ‘마무리 발언’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해석입니다. 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 이틀 뒤인 지난달 23일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BTS의 2021년 AMA(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대상 수상 소식을 전하면서 ‘지난 60년간 한국보다 성공한 나라가 없는데도, 정말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들이 약하고 뒤처져 있다고 생각한다’는 석학 조지프 나이의 말을 인용해 “이제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 않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문 대통령 의중을 잘 아는 인사들은 이 같은 대통령 발언에 대해 “특정 정당·언론을 염두에 두고 정치적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다”라고 강조합니다. 문 대통령이 평소 한국의 위상이 국제적으로 높아진 것이 “정부의 성과라기보다는 국민의 성과”라는 인식이 확고하다보니, 이에 대한 공격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이 아닌 ‘국민들에 대한 비난’으로 여겨 강하게 발언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문 대통령이 ‘국민들의 자부심이 미래로 가는 원동력’이라는 철학이 확고해서 한 말이지 다른 정치적 목적은 없다는 설명입니다. 또한 정부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늘 열린 자세로 수용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지난달 15일 경남 거제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열린 한-모잠비크 FLNG선 출항 명명식에서 필리프 뉴지 모잠비크 대통령 내외와 명명 선언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지난달 15일 경남 거제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열린 한-모잠비크 FLNG선 출항 명명식에서 필리프 뉴지 모잠비크 대통령 내외와 명명 선언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문재인 정부가 만든 명백한 성과마저도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여권 인사들은 ‘이번 정부는 운이 좋았지 한 게 없다’는 평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임기 중 이룬 정책 성과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안다”면서 “(미래 권력으로 여론의 관심이 쏠리는) 임기 말로 갈수록 국정 홍보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참모회의에서 전날 자신이 참석한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한-모잠비크 FLNG선 출항 명명식’ 관련 기사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며 “내가 점심 한끼 먹으러 거제까지 갔겠습니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FLNG(Floating LNG·부유식 해양 LNG 액화플랜트)는 원거리 해양에 있는 가스전으로 이동해 해상에 떠있는 상태로 LNG 생산, 저장, 출하가 가능한 해상 이동식 복합기능 플랜트로, 전 세계 대형 FLNG 네 척은 모두 한국에서 건조됐습니다. 당시 신문에는 이 행사가 대부분 사진기사로만 실렸습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국민과의 대화 다음날인 지난달 2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대통령도 어제 마무리 말씀으로 ‘자화자찬 하냐라는 비판이 있을 것으로 안다’고 전제를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야당·언론이) ‘자화자찬’이라고 비판을 하더라”며 “자화자찬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사실을 더해서 이야기한 것인데, 문 대통령이 이야기한 내용이나 청와대·정부 브리핑 중에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을 과장해서 이야기한 부분이 있으면 근거를 가지고 반박하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언론과 야당은 성과가 있었다고 하면 자화자찬이라고, 자세를 낮추면 뒤늦게 잘못을 인정했다고 비난한다. 뭘 해도 욕 먹는다”고 더 직설적으로 말한 여권 인사도 있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향후 한국사회를 위해서라도 국내적으로는 탄핵촛불 이후, 세계적으로는 코로나19라는 대전환기에 집권한 이번 정부의 성과를 잘 정리하고 알리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정리가 제대로 안 돼 있다”고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문재인 정부 5년의 국정 성과 정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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