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종전선언 언급 없는 문 대통령…배경은?

정대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전 강원 고성군 제진역에서 열린 동해선 강릉-제진 철도건설 착공식에 참석해 강원도 지역주민들과 서명을 마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전 강원 고성군 제진역에서 열린 동해선 강릉-제진 철도건설 착공식에 참석해 강원도 지역주민들과 서명을 마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들어 종전선언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남북 및 북·미 관계 교착을 해소할 카드로 종전선언을 재차 제안한 뒤 여러 차례 종전선언을 강조해 왔다. 북한의 미호응과 미·중 대립 심화, 임박한 대선이 종전선언 언급이 잦아든 배경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일 신년사에서 종전선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대신 “아직 미완의 상태인 평화를 지속 가능한 평화로 제도화하는 노력을 임기 끝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일 남한 최북단 역인 강원 고성군 제진역에서 열린 ‘동해선 강릉-제진 철도건설 착공식’에 참석해서도 종전선언 언급 없이 동아시아 철도공동체와 강원 평화특별자치도 구상만 말했다.

이는 지난해와는 다른 기류다. 지난달까지도 문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종전선언을 입에 올렸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2일 청와대에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을 접견하면서 “차기 정부에 북·미 대화와 남북 대화가 진행 중인 상황을 물려주기 위해 한반도 종전선언을 제안했다”면서 미국의 지지를 당부했다.

같은달 13일 호주 캔버라에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 후 진행한 공동기자회견에서는 종전선언 전망을 묻는 기자 질문에 종전선언 성격에 대해 추가로 부연하기도 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은 7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전쟁을 종식시킨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한편으로는 남북 간에, 또 북·미 간에 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중요한 대화 모멘텀이 되고, 앞으로 비핵화 협상과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는 중요한 과정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달 7일 화상으로 열린 ‘2021 서울 유엔 평화유지 장관회의’ 개회식 영상 축사와 같은달 17일 ‘제20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전체회의’ 영상 개회사에서도 종전선언을 강조했다.

이러한 변화에는 새해 들어서도 남북 및 북·미 관계 교착 상황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한·미 간에 종전선언 문안은 사실상 합의가 돼 있는 상태지만, 북한은 상황을 계속 관망한 채 종전선언 제안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31일 끝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의 대남·대미 정책 방향 논의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 5일에는 극초음속 미사일이라고 주장하는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미국 등 국제사회에 존재감을 과시하는 동시에 당분간 현 상황 관리에 치중하겠다는 태도로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계속되는 코로나19 확산도 보건의료체계가 취약한 북한이 국제무대로 나오기 어렵게 한다.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 언급을 피하는 데는 이러한 북한의 사정을 고려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다음달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을 기대한 것과는 달리 올림픽이 오히려 남북과 함께 종전선언 당사자인 미국과 중국의 갈등 격화의 계기가 된 상황도 있다. 미국이 베이징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에 나서면서 악화된 미·중 관계는 당분간 해소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종전선언 실현 가능성은 떨어지는 반면 불필요한 정쟁에 휘말릴 가능성은 커지는 점도 고려됐다. 진전된 남북 관계를 물려주려고 제안한 종전선언이 되려 차기 정부에 부담을 주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서다.

다만 청와대는 종전선언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며 임기 마지막까지 대화 시도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신년사와 동해선 착공식에서 각각 “기회가 된다면 마지막까지 남북관계 정상화와 되돌릴 수 없는 평화의 길을 모색할 것” “이러한 상황을 근원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대화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기조를 반영한 것이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4일 YTN에 출연해 “종전선언은 2007년 10·4 선언이나 2018년 판문점 선언에서 이미 합의가 됐기 때문에 언제든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고 실현 가능한 일”이라며 “북한이 (미국에) 기대하는 조건만 충족된다면 언제든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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