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국민제안 선정 ‘중복·편법 투표’로 무효···‘예견된 촌극’ 비판

심진용 기자

10개 중 3개 선정하려던 계획

전부 56만~57만표 변별력 상실

대통령실 “방해 세력 개입한 듯”

실명인증커녕 로그인 없이 투표

애초에 ‘어뷰징 방지책’ 안 세워

국민제안 안건 투표 결과. 국민제안 홈페이지 캡처

국민제안 안건 투표 결과. 국민제안 홈페이지 캡처

윤석열 정부 ‘국민제안’ 제도가 어뷰징(중복·편법 투표) 사태로 첫 투표부터 무효 처리됐다. 대국민 온라인 투표를 통해 우수제안 3건을 선정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대규모 어뷰징으로 투표 변별력을 갖추는 데 실패했다. 준비 부실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투표 어뷰징 사태가 있어 우수제안 3건을 이번에는 선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대통령실은 지난달 22일부터 전날까지 열흘 동안 국민제안 10개 안건을 두고 온라인 투표를 진행했다. 10개 안건은 온라인과 우편으로 접수된 1만3000여건 중 민관 합동심사위원들이 심사해 선정했다.

대통령실은 득표가 많은 순으로 우수제안 3건을 선정해 시상하고, 10개 안건은 국정에도 반영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실제 투표는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전날로 마감된 투표 결과를 보면 10개 안건 모두 56만~57만표를 얻었다. 최다 득표를 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안건(57만7415표)와 최저 득표를 한 ‘외국인 가사도우미 취업비자 허용’ 안건(56만784표)의 표차는 1만6631표에 불과하다. 투표 변별력을 찾을 수 없는, 인위적인 개입에 의해 조작된 결과가 나온 셈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어뷰징으로 저희가 하려는 국민제안 제도를 방해하려는 세력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 IP의 유입도 거론했다. 다만 ‘업무방해 등으로 수사 의뢰 계획이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는 “어떤 근거로 수사대상을 정하겠나. 이건 해킹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이번 ‘무효 처리’ 촌극은 예견된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당초 대통령실은 국민제안 신설을 알리면서 “매크로를 통해서 여론을 만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00% 실명제로 운영된다”고 밝혔다. 그 말처럼 국민제안 중 민원/제안과 청원 코너는 금융인증서 등을 통한 본인 인증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우수제안 투표는 실명인증은커녕 홈페이지 로그인 없어도 투표가 가능하도록 했다. 우수제안 투표까지 실명제로 처리하면 참여율이 낮아지고, 참여율이 낮아지면 제도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게 대통령실 입장이다.

국민제안 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민관 합동으로 심사위원단을 꾸려 투표에 부칠 우수제안을 선정하겠다는 구상은 발표 당시부터 논란이었다. 정부 입맛에 맞는 안건만 고를 수 있다는 우려였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최저임금 차등적용’ 등 민감한 이슈가 10개 안건에 포함되면서 비판은 한층 더 거세졌다. 안건 설명은 전혀 없이, 제목만 올라와있는 구성을 두고 의견 수렴 기능을 포기한 단순 인기투표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민주노총·참여연대 등은 회견을 열고 투표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국민제안은 지난 정부의 ‘국민청원’ 제도를 폐기하고 신설한 제도다. 지난 6월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은 “국민제안은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한 대국민 소통 창구”라고 소개했다. 전임 정부의 국민청원에 대해서는 “민원 및 청원법을 근거로 하지 않아 처리 기한에 법적 근거가 없었고, 또한 답변도 20만건 이상의 동의 건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답하면서 대다수 민원은 답변을 받지 못한 채 사장된다는 지적도 있었다”며 폐기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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