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100일

공간은 의식을 바꿨나···용산 시대 100일의 명암

유정인 기자

윤석열 정부의 지난 100일은 곧 ‘용산 시대’ 100일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국정 콘트롤타워의 위치를 기존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기며 70여년의 ‘청와대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사유였던 권위주의 탈피, 제왕적 대통령제와의 결별은 현재진행형이다. 용산 시대의 상징이 된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은 가장 획기적인 변화이자 상시 리스크로 자리잡았다. 양적으로 늘어난 소통의 질을 높이고 제왕적 대통령제 탈피를 현실화하는 게 용산 시대 정착의 과제로 꼽힌다.

윤 대통령은 당선 10일째인 지난 3월20일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며 대통령실 용산 이전 계획을 밝혔다. 대선 후보 당시 광화문으로의 이전을 공약했다가 용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급선회에 신·구 권력 충돌과 사회적 갈등이 일었지만 용산 이전 계획은 고수했다. 윤 대통령 취임 당일 청와대는 일반에 개방됐고, 용산 집무실이 명실상부한 국정의 중심이 됐다.

출근길 문답, 예견된 리스크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둔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둔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초반 혼선에 비해 용산 시대 전환의 잡음이 장기화하진 않았다. 헌정 사상 최초로 집무실에 ‘출퇴근’하며 청사 도착 즉시 취재진과 문답을 나누는 모습은 용산 시대의 상징적 장면이 됐다. 취임 다음날(5월 11일)부터 시작된 출근길 문답은 탈권위 행보, 국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행보의 일환으로 풀이됐다. 형식과 횟수의 제한을 뒀던 전임 정부들에 비해 소통의 벽을 대번에 낮춘 획기적 변화다.

의미있는 행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리스크는 일상이 됐다. 출퇴근 문답에서 윤 대통령 발언이 수차례 논란을 부르면서 대통령 스스로 갈등을 촉발하는 사례가 누적됐다.

검찰 편중 인사 지적에 “과거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들이 아주 뭐 도배를 하지 않았나”(6월8일),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 훌륭한 사람 봤나”(7월5일) 등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갈등으로 이어졌다.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에 반발한 경찰 집단행동에 “중대한 국가의 국기문란”(7월26일)이라고 답하는 등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날 것의 입장이 즉각적으로 전해지며 혼란을 불러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안팎에서 출근길 문답 축소 건의가 잇따르자 대통령실은 답변을 줄이고 모두발언을 하는 방식으로 형식을 바꿨다. 정제되지 않은 발언을 줄이고 모두발언으로 윤 대통령 자신의 어젠다를 명확히 전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용산 이전으로 헌정 사상 최초의 ‘출퇴근’ 대통령이라는 기록도 남기게 됐다.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한 부지에 있는 청와대와 달리 용산 집무실과 서초동 자택으로 대통령 동선이 분리됐다. ‘구중궁궐’을 떠나겠다는 데 근거를 뒀지만 이 역시 역시 리스크를 노출했다. 최근 수도권 집중호우 당시 윤 대통령의 ‘자택 전화 지시’ 논란이 불거진 게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조만간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을 개조한 새 관저로 입주할 예정이라 ‘출퇴근’ 리스크는 상당부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제왕적 대통령제’ 탈피

용산 시대 성패의 관건은 결국 이전 근거인 제왕적 대통령제 탈피를 어느 정도 실현하는가에 달렸다. 윤 대통령은 청와대 해체를 공약할 당시 제왕적 대통령제 탈피의 두 축으로 ‘공간’ 이전과 ‘시스템’ 구축을 들었다. 청와대에서 벗어나는 것과 동시에 공무원과 민간 인재들이 뒤섞여 일하는 ‘민관합동위원회’를 만들어 국정 의사결정의 시스템도 바꾸겠다는 게 골자였다. 이 같은 계획이 현실화하지 못하면서 민관합동위원회 공약은 표류하고 있다.

‘책임 장관’ ‘스타 장관’ 등 대통령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려는 시도는 이뤄지고 있다. 다만 박순애 전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학제개편안 논란으로 사퇴하거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2·12 쿠데타’ 발언으로 사과하는 등 정책 추진 과정에서 ‘스타 장관’보다는 혼선이 두드러진 100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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