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 주제 ‘좋아요’ 동반 상승···어뷰징은 초반 5일간 집중됐다읽음

한번 누른 ‘좋아요’ 취소·철회 불가능한데

투표 기간·종료 이후 ‘두 차례’ 감소 확인도

기술적인 오류·해킹·대통령실 개입 가능성

‘국민제안’은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과 함께 윤석열 정부의 소통을 상징하는 두 축이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국민청원’ 제도가 “이념이나 여론에 왜곡돼 편항되게 한 쪽 의견이 가중반영될 소지가 있다”며 이를 폐기하고 대안으로 국민제안을 진행해왔다. 시민들이 제안한 1만2000여건의 민원·제안·청원 중 10가지 주제를 추렸고, ‘국민 제안을 정책에 반영한다’는 취지에 따라 ‘좋아요’ 투표를 거쳐 상위 3개 주제를 우수 국민제안으로 선정할 계획이었다. 이에 지난달 21~31일 열흘간 톱(TOP)10 투표가 진행돼 총 567만7628개의 ‘좋아요’가 모였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9900원 K-교통패스(가칭) 도입, 휴대전화 모바일 데이터 잔량 이월 허용 등 3개 주제가 1~3위를 차지했다.

[윤석열 정부 100일-국민제안 무산 전말] [단독]10개 주제 ‘좋아요’ 동반 상승···어뷰징은 초반 5일간 집중됐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지난 1일 ‘어뷰징’ ‘해외 IP 유입’ ‘방해세력이 있는 느낌’ 등을 이유로 투표 결과를 무효 처리한다고 밝혔다. “어뷰징(중복·편법 투표)이 끊이지 않아 변별력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첫 국민제안 선정부터 무효 처리되는 촌극이 빚어지자 ‘중복투표를 막지 못했다’ ‘변별력이 없다’는 형식에 대한 문제 제기부터, ‘제안설명이 부실했다’ ‘편 가르기로 사회갈등을 부추겼다’는 내용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비판이 쏟아졌다.

그렇다면 국민제안 투표에 대한 어뷰징은 과연 어떤 형태로 이뤄졌을까.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는 지난달 25일부터 국민제안 좋아요 증가 추세를 추적·기록했다. 대규모 어뷰징은 초반 5일 동안 집중적으로 나타난 후 자취를 감췄다. 57만7415표로 1위인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와 56만784표로 10위인 외국인 가사도우미 취업비자 허용의 득표율 차이가 0.27%포인트에 그쳤다. 비정상적 움직임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어뷰징’ 한 단어에 가려진 국민제안 좋아요의 ‘수상한 행보’를 하나씩 짚어봤다.



[국민제안 무산 전말] 국민제안 어뷰징, 이렇게 추적했다 ▶기사 링크 :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208170600011




‘좋아요’는 두 번 줄었다 늘었다

국민제안 전체 좋아요 수는 지난달 26일 오전 11시 566만5747표를 기록했다. 21일 0시 좋아요 투표를 시작한 후 5일11시간 만에 566만표를 넘겼다. 이후 국민제안은 이달 1일 0시 567만7628표로 마무리됐다. 후반부 5일13시간 동안 1만1881표 늘었다. 어뷰징이 초반 5일에 집중됐다고 볼 수 있는 근거다.

[윤석열 정부 100일-국민제안 무산 전말] [단독]10개 주제 ‘좋아요’ 동반 상승···어뷰징은 초반 5일간 집중됐다

다이브가 좋아요 수를 집계하기 시작한 25일 오전 11시 이후, 좋아요 수는 두 차례 감소했다가 다시 증가했다. 첫번째는 투표 진행 중, 두번째는 투표 종료 후에 발생했다.

첫번째 감소는 좋아요 수가 566만표를 넘어서는 시점에 발생했다. 지난달 26일 오전 9시 552만5889표, 오전 10시 562만8027표로 늘던 좋아요 수는 오전 10시30분 566만7240건표를 기록했다. 이후 한 시간 동안 좋아요 수는 줄었다. 오전 11시 566만5747표, 오전 11시30분 566만5448표로, 한 시간 전보다 1792표 적은 수였다. 이후 좋아요 수는 조금씩 늘어 오후 6시(566만7282표)에서야 오전 10시30분 기록을 회복했다.

[윤석열 정부 100일-국민제안 무산 전말] [단독]10개 주제 ‘좋아요’ 동반 상승···어뷰징은 초반 5일간 집중됐다

두번째 감소는 국민제안이 끝난 후 나타났다. 8월1일 0시 567만7628표로 국민제안은 종료됐다. 끝난 투표는 변동이 없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국민제안 좋아요 수는 2일 9시45분 567만7632건으로 4건 증가했다가 같은날 오후 1시45분에 다시 567만7628건으로 줄어들었다.

한 번 누른 좋아요는 취소하거나 철회할 수 없다. 투표 수 감소를 비정상적 움직임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투표가 끝나 더 이상의 투표가 가능하지 않은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상향이어야 할 국민제안 좋아요 그래프는 두 차례 하향했다.

전문가들은 좋아요 수 감소를 두고 크게 세 가지 정도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첫번째 가능성은 일시적인 기술적 오류로 인한 감소다. 대규모 어뷰징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서버의 코드를 수정하는 등 추가 작업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실수가 발생해 좋아요 집계가 감소했을 수 있다. 시스템 자체의 불안정성이 높아 집계 오류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언급한 전문가도 있었다.

두 번째 가능성은 국민제안 홈페이지의 취약한 보안을 뚫고 외부자가 임의로 투표 수를 조정한 경우다. 이는 단순히 클릭 수를 늘려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어뷰징과 달리, 외부자가 국민제안 홈페이지 관리자 또는 그에 준하는 권한을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해킹’이다.

세번째 가능성은 홈페이지 관리자인 대통령실이 인위적으로 투표 수를 조정했을 가능성이다. 일시적 기술 오류가 실수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는 어뷰징에 따른 의도적 대응에 해당한다. 관리자가 중복 IP로부터 반복적인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중복투표를 보정하는 과정에서 좋아요 수가 감소된 것이다.

어느 경우든 문제는 간단치 않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최저임금 차등적용 등 이해관계가 첨예한 주제를 다루면서 외부의 공격을 안일하게 대비했다는 비판은 취재에 응한 전문가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내부 조정 가능성은 투표의 핵심인 투명성·공정성·신뢰성과 연결된다. 내부에서 좋아요 수를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은 사전에 알려진 바도 없으며, 이후에도 공개된 바 없다. 곽진 아주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는 “어뷰징 사례가 발견돼 중복투표를 보정한 경우일 수 있으나, 어뷰징을 파악했다면 투표 수를 조정·보정할 게 아니라 어뷰징 자체가 발생하지 않게 조치했어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투명한 관리절차를 마련하고, 데이터에서 조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객관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며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검증할 수 있는 절차는 필수”라고 했다.

대통령비서실은 시간대별 투표 수 집계현황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하자 “시간대별 집계 현황은 별도로 하지 않아 제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어뷰징이 의심되는 접근을 보정한 적은 있다. 구체적인 경위는 데이터가 모두 지워져 확인할 수가 없다”고 답했다.

대형마트·최저임금·백내장·콘택트렌즈, 다 같이 올랐다

국민제안에 오른 10개 주제는 사안의 성격과 대상이 상이하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최저임금 차등적용은 사용자나 노동자, 업종·지역별 적용대상에 따라 누군가는 득을 보고 누군가는 피해를 입는다. 이와 달리 9900원 K-교통카드나 휴대폰 데이터 잔량 이월은 시민 대다수가 혜택을 본다. 또 백내장 수술보험금 지급기준 표준화·콘택트렌즈 온라인 구매 허용 등은 특정 집단 또는 대상이 호응하는 주제다.

그러나 10개 제안은 조사기간 내내 동일한 추세로 움직였다. 10개 주제가 56만~57만여표의 고른 좋아요를 얻었다는 최종 득표 수는, 10개 주제가 시간대별로 그린 그래프에서 한 몸처럼 움직인 결과였다.

[윤석열 정부 100일-국민제안 무산 전말] [단독]10개 주제 ‘좋아요’ 동반 상승···어뷰징은 초반 5일간 집중됐다

25일 오전 11시부터 같은날 오후 11시까지 12시간 동안 늘어난 전체 좋아요 수는 40만4120표(10.30% 증가)였다. 반면 26일 오전 0시부터 오전 7시까지 7시간 동안 늘어난 전체 좋아요 수는 85만698표(19.18% 증가)였다. 낮 시간보다 자정을 넘긴 심야에 증가세가 두 배 이상 컸다.

이런 비정상적 움직임은 10개 주제에서도 되풀이 됐다. 25일 낮 동안 가장 증가폭이 큰 것은 ‘전세계약 시 임대인 세금완납증명 첨부 의무화’로 10.69% 증가했다. 가장 증가폭이 작았던 ‘외국인 가사도우미 취업비자 허용’(9.99% 증가)과는 증가폭이 0.7%포인트밖에 나지 않았다. 26일 밤 사이에도 두 개 항목이 증가폭이 가장 높거나 낮았고 그 차이는 0.54%포인트에 불과했다.

26일 이후 증가세가 급감하는 추세까지도 10개 주제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다. 조사기간 동안 10개 주제의 상관계수는 모두 0.999 이상을 기록했다. 상관계수(두 변수의 상관관계를 측정하는 값. 1, -1에 가까울수록 두 변수의 연관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함)가 가장 낮은 것은 9900원 K-교통패스와 외국인 가사도우미 취업비자 허용(0.999689436)이었고, 가장 높은 것은 소액 건강보험료 체납 압류 제한과 외국인 가사도우미 취업비자 허용(0.999998177)이었다. 어뷰징이 있었다면, 이해관계가 다른 다양한 주체들이 개별 주제에 경쟁적으로 클릭해 좋아요 수를 올렸다기보다, 소수의 특정 주체가 전체 주제를 동시에 클릭해 좋아요 수를 한꺼번에 끌어올렸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박기웅 세종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비정상적 통계 수치가 잡혔다는 것은 자동화된 툴의 개입이 있었다는 뜻”이라며 “인위적 매크로 엔진이 개입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50만건 이상 동의… 국민제안 100%, 국민청원 0.006%

문재인 정부가 실시했던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5년 동안 45만9635건의 청원이 올라왔다. 이 중 5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건은 28건(0.006%)이었다. 을왕리 음주운전 역주행 가해자 처벌, 구급차 막은 택시기사 처벌,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 촉구, 조두순 출소 반대 등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현안이나 쟁점 사안이 주로 상위권에 올랐다.

국민제안에서 1위를 기록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는 지난 5년간 국민청원에서는 어떤 이슈였을까. 청원 제목과 내용에 ‘대형마트’가 담긴 청원 중 대형마트 의무휴업과 관련된 청원은 총 106건이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늘리거나 다른 업종에 확장해달라는 청원(60건)이 의무휴업을 폐지해달라는 청원(43건)보다 많았다. 최다 동의 수도 ‘대형마트 내 소상공인들도 사람 움직이는 시간에 움직이게 해주세요(의무휴업 확대)’가 3079건,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부탁드립니다(의무휴업 폐지)’ 596건이었다.

국민제안 3위인 휴대전화 모바일 데이터 잔량 이월 허용은 지난 5년간 관심이 더 적었다. 데이터 잔량 이월과 관련된 내용의 청원은 총 13건으로 이 중 가장 많은 동의를 얻은 것은 ‘휴대폰 데이터~ 쓰고남은 건 소멸되고, 초과사용한 건 돈내야 하는 법 고칩시다!’로 19건의 동의를 얻었다.

5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대중적 관심사가 달라질 수는 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올리는 청와대 국민청원과 대통령실에서 추려내는 TOP 10 제안은 의제가 형성되는 과정도, 여론의 집중도도 다르다. 그러나 적어도 국민제안에 오른 10개 주제가 지난 5년간 여론의 집중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반대 시위, 최소 5일간은 안 해도 되는거였다

국민제안이 진행됐던 열흘간 대형마트 종사자와 노동조합, 소상공인 단체, 전통시장 자영업자들은 연일 거리로, 대통령실 앞으로 나왔다. 전국 동시다발로 기자회견이 열리는가 하면 노동자 1인시위가 이어졌다. 국민제안 TOP 10 투표를 중단하라는 요구였다.

민주노총, 참여연대,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관계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부근에서 국민제안 TOP10 투표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민주노총, 참여연대,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관계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부근에서 국민제안 TOP10 투표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국민제안은 26일 오전 10시에 최종 좋아요 수(567만7628표)의 99.13%를 달성했다. 전반부 5일 동안 99%가, 나머지 5일 동안 1%가 올랐다. 대규모 어뷰징이 발생했고, 이를 걸러낼 수단은 없었다. 대통령실이 국민제안 무산 발표를 고민하던 5일 동안 노동자·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무의미한 투표 중단 시위를 하고 있던 셈이다.

좋아요 추세에서 나타난 조직적·획일적 움직임은 의도를 가진 주체의 인위적 개입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언급한 “제안 제도를 방해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은 단순히 느낌이 아니라 사실임이 시간대별 좋아요 추이에서 나타난 것이다.

대통령실은 “생활밀착형·국민공감형·시급성 세 가지 심사기준으로, 전 국민이 함께 경제난을 돌파할 수 있는 국민제안 TOP 10”이라며 이들 10개 주제를 선정했고, 이 중 상위 3개 우수제안은 정책에 적극 반영하려 했었다. 이 방침대로면, 이번 국민제안 무산에서 나타난 대규모 어뷰징은 공적 업무를 마비시킨 중대한 업무방해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제도를 남용해 특정 의견을 많이 내려는 것을 수사 대상으로 보긴 어렵다”며 추가 조치에는 신중한 입장이다.

익명성과 공정성을 동시에 갖춰야 하는 투표의 성격을 감안하면, 정책 결정에 인기투표 형식을 도입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곽 교수는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절차를 이벤트성으로 진행하는 것, 그리고 어뷰징 결과라고 하지만, 570만표는 시민들의 실제 참여도 반영된 결과일텐데 단순 무효화하는 과정도 고민해봐야 한다”며 “유사한 득표 결과, 투표 과정 중의 득표 수 추이, 득표 수 감소의 공식적 점검 내용, 어뷰징 검증 결과 등을 정확히 파악해야 향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티비 배너
Today`s HOT
젖소 복장으로 시위하는 동물보호단체 회원 독일 고속도로에서 전복된 버스 아르헨티나 성모 기리는 종교 행렬 크로아티아에 전시된 초대형 부활절 달걀
훈련 지시하는 황선홍 임시 감독 불덩이 터지는 가자지구 라파
라마단 성월에 죽 나눠주는 봉사자들 코코넛 따는 원숭이 노동 착취 반대 시위
선박 충돌로 무너진 미국 볼티모어 다리 이스라엘 인질 석방 촉구하는 사람들 이강인·손흥민 합작골로 태국 3-0 완승 모스크바 테러 희생자 애도하는 시민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