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초’ ‘이 XX들’…논란이 덮은 윤 대통령 뉴욕 한·미 정상 ‘환담’

뉴욕 | 유정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홈페이지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홈페이지

한국 정상외교의 가장 중요한 축으로 꼽히는 한·미 정상의 만남이 숱한 논란 속에 지난 2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렸다. 양국 정상이 짧은 환담들을 통해 실무진 협의를 확인하는 형식으로 당초 계획한 정식 정상회담을 대체했다. 윤 대통령은 48초에 그친 글로벌펀드 회의장 환담을 성사하려고 예정된 경제 관련 행사 참석을 줄줄이 연기하거나 취소했다. 환담을 마치고 회의장을 떠나는 과정에서 윤 대통령 비속어 논란도 불거졌다. 정상간 만남보다 이를 둘러싼 논란이 전면에 부각되며 한·미 정상외교는 일그러진 모습으로 마무리됐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런던에서 개최된 찰스 3세 영국 국왕 주최 리셉션과 뉴욕에서 개최된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 바이든 대통령 내외 주최 리셉션에 참석했을 때 바이든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다.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환담 결과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북미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두고 두 정상의 의견교환이 이뤄졌다. 한국 정부가 그간 다각도로 전해 온 우려의 뜻을 윤 대통령이 직접 바이든 대통령에게 전하고 “우려를 잘 이해하고 있다. 논의를 이어가자”는 취지의 답변을 들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22일 뉴욕 한 호텔에 마련된 한국 프레스룸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상간 인식을 공유하고 상대방 정상이 이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데다 미국 측은 회담 결과 공지에서 IRA를 직접 언급하지 않아 바이든 대통령의 ‘인식’이 실제 변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두 정상은 또 금융 안정화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필요한 경우 한·미가 금융 안정을 위한 유동성 공급 장치(liquidity facilities) 실행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최 수석은 “양국 외환 당국간 협의로 구체화될 것”이라며 “통화스와프도 외환 당국 간에 협의 대상이 되는 유동성 공급 장치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양국간 통화스와프 논의에 좀 더 적극적 의지를 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미 관계의 핵심 화두인 북핵 문제 대응을 두고는 “확장억제와 관련해 한·미간 협의가 이뤄지는 점을 평가하고 공동대응 방안 마련 위해 양국 공조를 강화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재확인했다.

전체적인 한·미 정상 환담 결과는 가시적 성과를 내는 데는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두 정상이 마주앉아 의견을 주고받으며 현안을 논의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정상간 논의로 돌파구를 찾거나 극적 타결을 이루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뉴욕 일정을 하루 단축하면서 정식 정상회담이 불발돼 불가피하게 연쇄 환담을 이어가야 했다는 것이 대통령실 설명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를 “비상수단” “일종의 플랜비(B)”라고 표현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 일정 변화로 돌발변수가 생겨 효과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뭐냐 (찾다가) 환담을 통해서라도 합의를 끌어내자고 의기투합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일찌감치 정식 정상회담 확정을 알리고, 막판까지 회담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회담 형식과 내용의 사전 기대치가 높아진 점도 최종 평가의 허들로 작용한 면이 있다.

환담에서 도출된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뒤따른 논란으로 묻혔다.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이 이날 바이든 대통령과 환담을 마치고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장을 떠나면서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건넨 말이 문제가 됐다. 윤 대통령이 “(미)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취재진 카메라에 담겼다. 대통령실은 이에 “공적 발언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고 선을 그었다. 정상외교의 현장을 완전히 떠나지 않은 상황에서 외교적 부담을 부를 수 있는 발언을 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야당은 ‘외교 참사’라고 비판하고 있어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글로벌펀드 회의 연설에서 밝힌 한국의 획기적 공여 발표도 이 논란이 불거지며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대통령실은 새로운 내용의 반박을 내놨다. 윤 대통령 발언 자체가 언론에서 잘못 전달했다는 주장이다. 김은혜 홍보수석비서관은 22일(현지시간) 오전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은 ‘바이든이’라는 말을 아예 하지 않았고, ‘이 XX’라는 표현은 미국 의회가 아닌 야당(더불어민주당)을 향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의 외교활동을 왜곡하고 거짓으로 동맹을 이간하는 것이야말로 국익 자해 행위”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수석의 해명대로라고 해도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야당을 ‘이 XX’라는 비속어로 지칭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과의 48초 환담 성사를 위해 미리 예정했던 행사 참석을 줄줄이 미루거나 취소한 것은 또다른 논란을 불렀다. 윤 대통령의 글로벌펀드 회의 참석 일정이 길어지면서 뒤이은 디지털 비전 포럼과 재미 한인 과학자 간담회는 한 시간쯤 연기돼 열렸다. 윤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했던 한·미 스타트업서밋과 K-브랜드 엑스포 등은 행사 당일 참석이 아예 취소됐다. 한·미 스타트업서밋은 한국 스타트업과 미국의 대기업, 벤처캐피탈이 참여하는 행사로 윤 대통령이 양국 기업인을 격려할 예정이었다. K-브랜드 엑스포는 한국 중소기업 소비재의 해외시장 진출과 관련된 행사다. 모두 대통령실이 순방을 떠나기 전부터 경제외교의 주요 일정으로 소개한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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