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결적 언론관’ 대놓고 밝힌 윤 대통령

유정인 기자

전용기 논란에 “헌법수호 책임”

MBC 겨냥 “악의적” 노골적 표현

특정 기자 면담엔 “개인적인 일”

‘민주주의 가치 훼손’ 비판 불가피

‘대결적 언론관’ 대놓고 밝힌 윤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18일 MBC 전용기 탑승 배제가 “대통령의 헌법수호 책임의 일환으로써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전용기에서 2개 매체 기자와 따로 면담한 것은 “개인적인 일”이라고 했다. 헌법 가치인 언론 자유 침해 비판엔 ‘헌법수호’ 행위라고 맞받고, 공적 공간에서 언론과 공적 소통 대신 선별적 소통을 했다는 비판엔 ‘사적 용무’를 들어 모르쇠로 넘어갔다. 비속어 진위 논란은 두 달간 확전을 거듭하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언론관’ 논란으로 진화했다. 윤 대통령이 적대적 언론관에 기반한 강경 일변도 대응으로 민주주의 핵심 가치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실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만나 “MBC에 대한 전용기 탑승 배제는 우리 국가안보의 핵심축인 (한·미) 동맹 관계를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아주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롭게 비판하시기 바란다. 언론과 국민의 비판을 늘 다 받고 마음이 열려 있다”면서도 MBC 보도를 두고는 ‘가짜뉴스’ ‘이간질’ ‘악의적’ 등 표현을 동원해 날을 세웠다.

윤 대통령은 지난 11~16일 4박6일 일정으로 캄보디아·인도네시아 순방을 가면서 MBC 취재진의 전용기 탑승을 막았다. 문제 삼은 것은 지난 9월 미국 뉴욕 순방 중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 보도이다. MBC가 당시 풀(공동취재) 취재 영상을 가장 먼저 기사화하면서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냐”라는 자막을 단 점을 악의적 보도로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이 같은 발언을 부인했지만 진위 논란은 진행 중이다.

윤 대통령은 “언론 자유가 중요하지만 언론의 책임이 민주주의 기둥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국민의 안전보장과 관련된 것일 때는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사법부가 사실과 다른 증거를 조작해서 판결하면 국민들께서 ‘사법부는 독립기관이니 문제 삼으면 안 된다’고 할 것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발언은 국민 안전보장이라는 헌법상 책무를 들어 언론 자유 침해 행위를 정당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언론을 입법·사법·행정과 함께 “민주주의 네 기둥”이라고 하면서도 기둥을 흔드는 행위를 ‘헌법수호’를 들어 합리화했다. 일부 보도를 문제 삼아 최고위 공적 인물의 공적 행보 취재 기회를 박탈하는 강경 대응을 한 뒤 그 책임을 다시 언론에 돌렸다. 향후 다른 언론에도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는 비판이 국내외에서 이어졌으나 이에 대한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이번 순방에서 국정 책임자의 외교 활동을 위해 세금으로 운영하는 전용기는 선별적 언론 대응의 공간이 됐다. 윤 대통령이 전용기 내에서 2개 매체 출입기자를 대통령 전용공간으로 불러 1시간가량 면담한 점도 이와 맞물려 논란이 됐다.

외교 순방이라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대통령과 참모진, 기자단이 탑승한 공적 공간에서 사적 소통을 한 점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출근길 문답에서 관련 질문에 “제 개인적 일이다. 취재 응한 것도 아니고”라며 문제가 아니라는 취지로 답하며 논점을 피해갔다. 전용기가 ‘공적 공간’이라는 지적에는 “다른 질문 없습니까”라며 답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통상 역대 대통령이 귀국길 기내에서 순방 성과를 직접 설명하는 기회로 활용한 기내간담회를 열지 않았다. 지난 9월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에 이어 두 번 연속이다. 전용기라는 공적 공간에서 언론과의 공적 소통 기회를 축소하고, 사적 소통만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거듭 전용기 탑승 배제 행위 정당화에 나서면서 대통령실의 강경 대응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출근길 문답 마무리에 MBC 기자가 ‘무엇이 악의적 보도냐’고 물은 데 대해 “이게 악의적”이라며 10가지 이유를 배포했다.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비속어 논란 보도의 자막, ‘가짜뉴스’ 보도 후 사과 요구에 무대응한 점 등이 ‘악의적’이라고 했다. “광우병 괴담 조작방송” “조국수호 집회 ‘딱 보니 100만명’ 허위 보도” 등 과거 사례도 끌고 와 비판했다. 출근길 문답이 끝난 직후 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이 MBC 기자의 계속된 질문을 제지하면서 한동안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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