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파업, 정부 초강경 대응에 깔린 윤 대통령의 노동관

유정인 기자

타협과 조정보단 법과 원칙 앞세운 ‘노사 법치주의’

‘민주노총 = 귀족강성노조 = 야당 핵심지지층’ 인식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화물연대) 총파업에 따른 정부 대응이 29일 업무개시명령 발동으로 정점을 찍었다. 정부의 강경 일변도 기조에는 ‘법치주의’를 내세운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관이 작용하고 있다. 법과 원칙을 지켜야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노사관계가 확립된다는 취지다. 밑바탕에는 ‘민주노총 = 귀족강성노조 = 야당 핵심지지층’이라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노동 문제의 무게중심을 대화·조정보다 법적 대처에 두면서 노·정간 강 대 강 대치는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시멘트 분야 운수 노동자들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의결한 국무회의에서 ‘법과 원칙’ ‘노사 법치주의’를 거듭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불법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임기 중 ‘노사 법치주의’를 세우겠다고 말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취임 당시부터 노동문제 원칙으로 강조해 온 지점이다. 그는 지난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우리가 이미 합의된 방식(노동법 체계)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그 방식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다만 화물연대 총파업 사태를 기점으로 윤 대통령의 대응은 한층 강경한 쪽으로 기운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100일 기자회견에선 “법에 위반되는 일이 발생했다고 즉각적인 공권력 투입으로 진압하는 것보다 일단 먼저 대화와 타협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좀 주고” 풀어가는 게 적절하다고 했다. 정부가 법에 규정된 조치들에 착수하기 전에 대화와 타협의 시간이 보장돼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엔 엿새간의 강경대응 속도전으로 대화와 타협 공간을 줄였다.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돌입한 지난 24일 곧바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시사했다. 전날 대통령실은 국토교통부와 화물연대의 공식 협상을 3시간30분 앞두고 업무개시명령 국무회의 심의 계획을 밝혔고, 이날 바로 의결해 발동에 들어갔다.

이 같은 대응에는 민주노총을 적대시하는 시각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민주노총을 강성귀족노조 집단으로 규정하고 더불어민주당 핵심지지층으로 등치시켜 싸잡아 비판해왔다. “왜 이 정권(문재인 정부)은 재벌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만, 그들만 챙기는 민노총(민주노총)과만 손잡는 것인가”(지난 2월18일), “정치 권력과 유착된 강성 귀족노조의 노동만 노동이 아니지 않는가”(지난 2월19일) 등 발언에서도 이런 인식이 드러난다.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문제에도 역시 민주노총에 대한 문제의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는 진영을 떠나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다만 윤 대통령은 이중구조 심화의 원인과 책임을 ‘강성 노조’로 규정한 민주노총에 집중적으로 돌리는 점이 특징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연대 파업을 예고한 민주노총 산하 철도·지하철 노조를 향해 “산업 현장의 진정한 약자들, 절대 다수의 임금 근로자들에 비하면 더 높은 소득과 더 나은 근로 여건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선 “결국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이들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시달리는 저임금 노동자”라고 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말하는 동안 제도를 만들고 운영할 주체들인 행정부와 입법부, 사용자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국정 최고운영자가 노동자들을 갈라치기하고 노·노 갈등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노동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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