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반성 않는 일본이 “협력 파트너”라는 윤 대통령

유정인 기자    유설희 기자

강제동원 배상·역사 왜곡 문제 언급 않고

반성과 변화 촉구 원칙 수준 메시지도 없어

일본에 대해 일방적으로 협력 의지만 강조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3.1절 노래를 제창하고 있다. /대통령실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3.1절 노래를 제창하고 있다. /대통령실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취임 후 첫 3·1절 기념사에서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거듭 확인했다. 일본을 ‘파트너’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로 호명하며 양국 협력을 강조했다. 하지만 양국 간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배상 문제나 역사 왜곡 문제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과거사 관련 일본의 반성과 변화를 촉구하는 원칙적 수준의 메시지도 없었다.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 일본에 대해 일방적으로 협력 의지만 강조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발표한 기념사에서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됐다”고 밝혔다. 북핵 위협 등을 들어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도 했다. 북핵 해법으로 제시해 온 한·미·일 3각 공조 강화와 함께 경제와 국제 현안 등에서 한·일 협력 폭을 넓히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300여자 분량의 간결한 기념사에서 한·일관계에 네 문장을 할애했다. 모두 양국 협력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함께 공동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일본에 대한 표현은 양국의 공통점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일본을 ‘파트너’로 부르면서 “우리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고 협력해서 우리와 세계시민의 자유 확대와 공동 번영에 책임있는 기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이것은 104년 전,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외친 우리 선열들의 그 정신과 결코 다르지 않다”고 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을 공유하는 일본 등과 협력해 세계적 자유 확대에 나서는 것이 독립운동 정신에 닿아있다는 취지다. ‘가치 공유국’끼리의 협력 강화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 견제 목적에서 강조하는 외교 기조로 윤 대통령은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왔다.

이번 기념사는 윤 대통령의 한·일관계 구상을 확인할 수 있는 가늠자로 주목돼 왔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해 한·일관계를 빠르게 회복, 발전시키겠다”고 큰 기조는 밝혔다. 이후 윤 대통령이 직접 한 단계 구체화한 로드맵을 내놓거나 양국 현안에 대한 대응 원칙을 밝힌 적은 없다. 윤 대통령은 이날도 구체적 계획을 밝히는 대신 협력 의지를 재차 표명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강제동원 배상 협상이 진행 중인 데다 이와 연동된 한·일 정상회담도 조율 중이어서 예민한 시점임을 고려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광복절 경축사에 이어 3·1절 기념사에서도 양국 현안이나 과거사 언급은 빠졌다. 강제동원 배상 해법에 대한 정부의 원칙과 진행 상황, 구상 등은 담기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독도와 역사교과서 등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도 연설에 포함되지 않았다. 과거사 언급이 빠지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대통령의 직접 메시지도 전해지지 않았다. 진보·보수 정부를 가리지 않고 독립운동을 기리는 3·1절 기념사에는 일본의 과거사 반성과 올바른 역사 인식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등장해왔지만 이번에는 원칙적 수준의 언급도 없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고려해 과거사 언급이 빠진 것이냐는 질문에 “(한·일관계 개선은)윤 대통령 지론이자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 우리나라의 부족한 점은 반성하고 일본의 잘못도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도 “결국 지금 시점에 양국은 필요한 협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필수 요건인 과거사 문제 등 걸림돌 극복 방안, 문제의 당사자인 일본의 변화 필요성 등을 외면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미래만 강조하면서 관계 개선을 위한 조건을 분명히 밝히지 않음으로써 반성없는 일본 정부측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과거사 해결이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즉 과거사에 대한 반성없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3·1 정신에 부합한다는 윤 대통령의 말은 궤변에 가깝다.

3·1절 기념사에 통상 등장하는 남북 관계와 한반도 평화는 이번 기념사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다. 북한은 “북핵 위협을 비롯한 엄혹한 안보 상황” “북핵 위협 등 안보 위기 극복” 등 위기를 나열하는 부분 두 곳에만 짧게 등장했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석열 정부의 남북관계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을 제안하며 대북 메시지를 낸 것과 대비된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노동·교육·연금 등 개혁 이슈나 민생·경제 등 국정 어젠다를 강조하는 부분도 등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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