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가해자’ 빠진 강제징용 해법에 “미래 위한 결단”

유정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57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57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6일 정부의 강제동원(징용) 배상안 공식 발표와 관련해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강제징용 판결 문제 해법을 발표한 것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말했다. 현재 일본 정부가 명시적 표현 없이 과거 정부의 역사 인식을 재확인한 것을 두고는 미래지향적 양국 관계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국내 비판 여론이 비등하면서 강제징용 이슈가 ‘끝나지 않은 문제’로 지속적 리스크가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한·일관계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기 위해선 미래세대 중심으로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밝혔다.

정부는 이날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피고 기업이 아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이 ‘판결금’을 지급하는 형식의 해법을 밝혔다. 2018년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배상책임을 확인한 데 대해 한국 정부가 기금을 마련해 피해자들에게 주는 ‘간접 배상’을 공식화했다. 일본 정부의 반성이나 사죄도 요구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이번 발표를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한 초석으로 평가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브리핑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고 한 데 대해 “일본 정부가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미래 지향적인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을 평가한다”고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윤석열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을 한·일관계 정상화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인식하고, 해결 방안을 찾고자 했다”면서 “양국이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강제징용 해법을 내놓은 데는 일본이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양국 협상 교착 상태가 장기화한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6개월간의 양국 정부 공식 라인의 협의는 종료됐다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결국 이 시점에서 일본 정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한계치에 도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양국 정부가 각자 입장을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협의의 핵심이었던 일본 측의 배상 참여와 사과 문제에서 한국 정부 성과는 사실상 전무했다. 결국 일본 정부가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상황에서 책임 인정과 배상 참여을 주장하며 현 상태를 방치하기 보다는 정치적 부담을 안더라도 자체적으로 해법을 내놓고 한·일관계 개선을 추구하겠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은 2018년 대법원 판결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뒤집는 국제법 위반 성격이 있다는 일본 측 입장을 인정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우리가 대법원 판결을 부정할 이유는 없지만 국제법적으로 1965년 양국 정부 약속(한·일 청구권 협정)에 비춰보면 일본으로서는 한국이 합의를 어겼다는 결론이 된 것”이라며 “(오늘 발표는) 65년 합의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해결 방안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상황에서 일본 측 입장을 사실상 대변하는 발언에 치중한 셈이다. 이 관계자는 한·일 ‘위안부’ 피해자 관련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이 논란 끝에 해산된 점을 들어 한국 측의 추가 노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오늘 발표된 내용도 앞으로 어떤 정부에 의해 뒤집힐지 일본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우리의 이행 과정, 피해 당사자들의 반응, 정치권의 대처에 따라서 일본을 계속 설득하고 끌고 갈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정부는 일단 일본 정부와 피고 기업의 ‘법적 책임’을 털어내고 피해자 배상 등에 전향적인 참여를 압박한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이 글로벌 복합위기 해법으로 한·일, 한·미·일 공조에 방점을 두는 만큼 조속한 관계개선을 꾀한다는 뜻이 담겼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악화된 한·일관계를 ‘방치’했다는 인식도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대통령은 이런 문제에 국내적으로 과하게 대응하는 면이 있으면 미래를 위해 담대하게 뚫고 돌파하겠다는 생각이 있다”면서 “노조와 시민사회 문제에서 그 기조로 대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일본 기업과 정부의 ‘전향적’ 배상 참여를 기대한다고 했지만 실제 이행 여부는 미지수다. 일본 정부와 피고 기업의 명시적 참여가 조기에 확인되지 않으면 윤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이 연대와 협력의 기반인 보편적 가치로 내세운 ‘자유·인권·법치’를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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